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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감

이승우,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by 김감감무

작가는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그라들거나 찡그려"지는 창세기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으로 이 책보다 한참 나중의 책인 『사랑이 한 일』을 썼다고 했다. 이 책도 그 책처럼 창세기를 다시 쓴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도 창세기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으로 쓴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분명 다른 점은 있다. 『사랑이 한 일』이 소돔과 고모라부터 아브라함 가족을 다룬,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인간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이해해 보려고 쓴 책이라면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는 창세기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넘어 "신을 의중을 헤아려보"려는 젊은 소설가의 패기와 "태초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마음에서 쓰였다.

인간이 신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고 태초의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인간은 인간을 벗어나서 무언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신은 흉내일 뿐이다. 신은 인간을 벗어난 것이다. 태초의 시간 또한 인간의 시간을 벗어난 시간이다. 인간은 인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도 시도를 할 수는 있다. 그 시도는 자기 문학의 원형으로 향하는 것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첫 작품부터 창세기에 빚졌다고 고백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최초를 지향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행해보는 경험이자 작가의 문학 원형에 닿아보는 경험이다. 모든 것이 최초를 지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초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걸 읽어보는 경험은 독자이자 팬으로서 귀중하게 느껴졌다.

절판이라 삼만 원 주고 산 책인데 삼만 원 줄만한 책이었다. 『사랑이 한 일』과 함께 읽어보며 젊은 날의 이승우 작가님과 최근의 작가님을 비교해 보면 더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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