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상처는 회복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는다. 가혹하고 야박한 말이지만 안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상처를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전보다는 강해진 사람이다. 상처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직시하게 됐다는 뜻이니까.
작품은 치치림의 뜻을 설명하며 시작하고 치치림이 그냥 말장난임을 깨달으며 끝난다. 환상으로 도피하려 했던 지난날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그것에 대해 웃으며 끝이 난다. 상처로 가득한 지난날을, 환상으로 도피하려고까지 할 정도로 힘들었던 지난날을 웃으며 털어낸다.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며 진행되는 이 소설은 인과가 없고 시간선이 뒤틀린 '듯' 보인다. 아무리 전보다 강해졌다고 해도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상처를 입었어요.' 한마디 툭 뱉고 끝날 일이 아니다. 잠깐 옛날 얘기도 하고 뒷얘기도 하고 앞 얘기도 하고 숨을 좀 고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점진적으로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어떤 말은 하기 좀 어려워서 바로 하지 못했지만 끝내 하고 마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소설이자 고백이다. 어디까진 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소설은 어느 정도 자전적인 것 같다. 사실 어떤 소설이든 글이든 그렇다.
그보다는 이런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의 마음을 더 생각하게 된다.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올곧고 튼튼한 마음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그런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표지와 제목만 보고 예상한 느낌과 너무 달랐지만 참 좋게 읽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