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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감

이승우, 『그곳이 어디든』

by 김감감무

그곳이 어디든···다음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책을 집어 든 순간부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가 어떻든 어떻다는 걸까.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들. 소설은 그곳이 어디든 다음에 올 말을 말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

이승우는 한결같은 작가다. 몸은 치욕이고 이곳은 혼란과 죄악이 범람하고 그로 인한 상처가 가득한 곳이다. 이곳을 외면하지 않지만 저곳을 향한 믿음을 지닌 글을 쓰는 작가다. 그래서 나는 제목으로 내건 '그것이 어디든'이라는 표현에서 짙은 회의 혹은 허무와 함께, 그 틈 사이의 한줄기 빛을 예상했다. 그리 틀린 예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간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이다."라는 에밀 아자르의 인용구로 소설은 시작한다. '유는' 서리라는 장소에 더해진다. '어딘가'는 그저 장소만을 지명하지 않는다. 무엇이 앞서지도 않고 나눌 수도 없다. 시공간이다. 시공간은 상황으로 표현된다. 유의 상황은 강산종합리조트의 직원이다. '서리' 지사로 발령받았고 아내는 그를 따라오기는커녕 다른 남자, 도박 중독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남자의 곁을 지키겠다고 자신을 떠났다. 헤매는 와중에 지갑을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데 실패하고 그 지갑을 잃어버린 것 하나 때문에 이곳에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곳의 사람이라는 신분의 증명이 얼마나 부실한가. 이곳은 얼마나 부실한가.

이것이 유가 '노아'를 만나기까지의 상황이다. 그가 이곳이자 현실이자 홍수 이전의 벌받기 전의 인간 세상의 축소판인 서리에서 성경 속 노아와 이름이 같은, 이름만 같지 않은 노아를 만남으로써 본격적인 소설이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길게 쓰는 걸 싫어하고 줄거리 쓰는 것도 싫어해서 좀 급하게 줄인다. 이는 어쩌면 다시 쓴 노아의 이야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 한 일』을 창세기의 패러프레이징이었다고 말했던 작가는 그것의 동기가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노아의 이야기 또한 이해하기 힘들건 매한가지다. 노아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이 소설 탄생의 동기였지 않을까, 라는 말로 오랜만의 독후감을 마친다.이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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