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혼자구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의 상식이 부정당했을 때, 전부였던 연인이 떠날 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을 때 등 고독이 대기가 되어 어깨를 짓누르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 그런 순간들을 과정으로 밟으며 살아간다. 처음부터 나의 세상이란 그릇에 스스로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은 부모가 첫 내 세상이다. 그러나 그에겐 담아낼 부모가 없었다. 아버지란 개념조차 무엇인지 한 가닥 실마리도 잡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를 볼 때마다 자책감을 느끼며 눈물짓는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 가장 절실할 유년 시절 그것의 결핍은 그의 평생에 영향을 준다.
작품 내에서 종종 언급되는 데미안의 에바 부인처럼 그에겐 세상을 밝혀줄 빛이 필요했다. 어둠에 익숙하고 편하다 해서 빛이 싫을 순 없다. 뼈가 시릴 정도의 외로움에 그는 갈수록 침잠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그녀와의 이야기다.
화자가 주인공 박부길과의 인터뷰와 작품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한 글을 쓴다는 상당히 특이한 형식이다. 소설은 결국 자전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작품 내에 나왔던 것 같다. 어쩌면 셀프 인터뷰라고 할 수 있을 외로움과의 사투, 사춘기 소년의 춘정부터 욕망과 결핍의 쳇바퀴, 지독한 나락의 경험들을 풀어낸 자기 고백적인 책이다.
천재의 재능은 범재들을 절망케 한다. 소설을 한번 써볼까 했던 생각을 사그라들게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