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데 순서 없다는 말이 있다. 정해진 운명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불행한가 행복한가. 그것은 삶을 어떻게 보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이방인과 같이 언급하는 리뷰들을 종종 본 것 같다. 무덤덤한 주인공이 갈수록 부조리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게 비슷해서 그런듯하다. 뫼르소는 진실을 거짓으로 포장하려는 유혹(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에 저항했다. 윤재는 관찰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학습하며 살아갈 준비를 했다. 초반에는 비슷하다 느꼈지만 윤재는 윤재다.
공부는 늘 부족한 법이다. 갑자기 닥쳐오는 상황 앞에서는 늘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시간을 넉넉히 가질 수는 없는 게 인생이다. 윤재도 그에 맞게 성장한다. 책에서 직접 언급하는 데미안 같은 경우는 윤 교수가 꺼낸 책이지만 그를 상징하진 않는 것 같다. 데미안은 경제적 안정만을 준다고 해서 상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를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게 이끌어주고 목표 자체가 되는 게 데미안이다. 거칠게 살아온 탓에 야성적이지만 감정이 풍부하고 투명한 곤이가 그에 걸맞다.
신은 이상한 곳에 천사의 얼굴을 주셨다고 묘사되는 철사의 외면처럼. 그는 윤재와 곤이가 맞이하는 부조리의 화신이다. 나를 죽이지 못한 그 시련 덕에 윤재와 곤이는 각자의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런 식으로 꽤나 친절한 은유나 상징 덕에 읽기가 수월한 편이다. 문장 또한 간결해서 더욱 그렇다. 너무 직접적이라 읽기는 편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문장보단 이야기에 힘을 실은 책이다.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잘 읽히고 공감이 가고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