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취향을 훔쳤다.
음악 검색으로 노래 몇 곡 가져온 걸 누구도 탓하지는 않겠지만, 그냥 좋은 노래여서 담아온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 사람의 온갖 취향을 담아오고(사실은 닮고) 싶었어서. 누군가의 개성을 탐낸 것 같아 가슴 한편에서 부끄러움과 설움이 요동쳤다.
'장발장이 빵을 훔친 건 살고 싶어서였는데..!'
나는?
나도 살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지.
***
정오가 가까워 오는 시간을 집에서 견디기에는 한낮의 기온이 너무 짓궂었다. 숨이 턱 막힐 땐 역시 카페가 최고지. 마침 얼마 전부터 가봐야겠다 싶었던 동네 카페가 있어, 책을 한 권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실제로 가 본 그 카페는 꽤나 낡았고, 트렌디하지도 않았다. (나라고 뭐 트렌드를 알기나 하냐마는, 뭘 좇아가려 애쓴 흔적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특이한 점은 그 공간을 사람으로 만든다면 사장님, 사장님을 공간으로 구현한다면 그 가게가 될 것 같았다는 점이었다. '저 사람은 모든 게 저 사람이다.' 순간 마음을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최소 4개 지역의 원두가 블렌딩 된 커피 음료 선택지들. 그 옆에는 고르기 쉽도록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핸드드립과 일반 머신 커피를 선택하면, 머신도 두 종류. 라떼 류를 위한 우유도 선택지가 있고요, 말해서 뭐하나 당연하게 로스팅도 직접 하신다. 이 긴 여정은 종이를 통한다. 검은 종이에 흰 펜으로 체크.
졌다. 디테일에서도 져버렸어.
더위를 피해 꽤 오래 앉았다 갈 심산이었으므로 쿠키도 주문했다.
"오래 계실 거면 조금 있다가 오늘 만드는 걸로 드릴까요..? 이건 어제 만든 거라..."
아니야. 아니야! 장삿속이라도 있어야 내가 덜 패배감이 든다고요. 솔직하지 마!
짐짓 쿨한 손님인 척 미소를 지으며 '아니요. 그냥 먹을게요(미소)' 했다.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루 지난 쿠키임에도 자신이 있어요!'는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불친절함도 아니고, 고마움도 아니고... 뭐지? 그는 선반에 놓여있던 쿠키를 그대로 접시에 담아내어 주었을 뿐이다. 별다른 말도, 잡다한 부가 행동도 없었다. 모든 게 간결했다. 깔끔하고 새 것 같은 곳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간결하고 정돈된. 그래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허둥대지 않는다.'
나는, 특히 요즘의 나는 매일 허둥대고 있다. 내가 누군지도, 약 30년의 시간을 무얼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뭘 하든 누군가의 아류 같기만 하고, 진짜 나는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매일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거창한 의미를 찾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라는 사람과 내 인생이 식별 가능한 성질을 가졌기를 바란다. 30년을 살고도 아직 '특별한 나'를 포기 못했느냐고 묻는다면, 네. 그런가 봅니다.
텅 빈 나를 마주하니, 단단히 자기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얘는 뭐 게시물을 하나 올려도 꼭 지 같냐. 뭔 하는 행동도 꼭 자기 같은 일만 벌이냐. 와 얘는 어떻게 이렇게 좋아하는 게 한결같냐... 얘는 자기를 쌓아가고 있구나...
나도, 가만히 있어도 '나'로 드러나길 바랐다. '드러나는 걸' 원하는데 드러나지 않으니 짜증이 났다. '드러내는 사람'은 정말 싫지만, 나는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라 자기 최면을 걸며 드러낼 것들의 목록을 쌓아갔다. 갑자기 LP와 턴테이블을 소유하며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도배했던 것처럼.
솔직히 고백하면 LP 특유의 거친 소리 질감이 좋긴 했지만 마음속으로 따봉을 날리게 되는 건 유튜브였다. '뭐야, 별로 차이 없잖아... 요새 유튜브가 진짜 좋구나...' 하면서. 그냥 LP나 턴테이블 같은 것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생각, 행동들이 나에게서 풍기길 바랐던 거다.
다들 엇비슷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 믿으므로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지는 않다. 원래 사람은 나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저것 접하며 타인의 취향을 탐내고, 빌려 보면서 내가 진짜 사랑하게 될만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 오늘 나는 그 사장님에게서 새로운 음악 취향을 배우고, '나'를 차곡차곡 쌓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아, 물론 '드러내려 애쓰는 것'은 아주 멋이 없으니 정말 하지 말아야지.
금붙이를 모으는 까마귀처럼 사람들의 빛나는 취향을 많이도 가져왔다. 이제 감정사처럼 고르고 골라야 할 때가 왔음을 실감한다. 집집마다 김장을 하지만 우리 집 김치 냉장고에는 우리 김치가 들어가야지! (물론 저는 김장을 하지 않습니다.)
의식하지 않고 구입한 물건들, 그리고 안 멋있어 보일까 봐 쉽사리 드러내지 못했던, 혼자서 눈물이 날만큼 좋았던 것들도 조심스레 선별 후보군에 올려본다.
오늘은 취향을 담아 왔지만, 언젠간 나누어 줄 수도 있을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