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는 것.

마음을 가득 담아, 단단하게, 용기 내서 좋아한다고 말하기.

by 김하비



능소화가 피면 여름인 걸 안다. 계절의 뜨거움을 한 데 모아 물 흐르듯 피어난 주황색 꽃과 진녹색 이파리에는 습도 높은 여름의 빛깔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 끈적함과 열기가 좋아서, 나는 능소화가 좋다. 좋아한다고 마음을 가득 담아 얘기할 수 있는 드문 것들 중 하나이다.




내게 '좋아한다'는 말은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대상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기 전까지, 나는 그것을 안전한 기분으로 좋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자라다'라고 말하면 그 누구보다 먼저 발을 빼야 속이 편했다.

아니지. 내가 발을 넣었었다는 사실 조차 남들이 모르도록 하기 위해 늘 기민하게 빠져나와 딴청을 피웠다.

한발 늦어, '하자 있는 대상을 좋아하는 나'를 들켰다고 느낀 날엔 온 머릿속이 수치심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수치의 순간엔 도돌이표가 찍혀, 아주 오래도록 내 속에 생채기를 냈다.




들킨다는 건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또, 숨겨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내 마음 안에는 '하자 있는 대상을 좋아하는 나'가 형형한 눈빛으로 버티고 있고, 일상의 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결국 내게 '진짜'는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하자 있는 대상을 좋아하는 나'



의식 저변의 '나는 항상 어딘가 부족한 애야'가 '나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없어'로 이어졌다가, 결국 '나는 안목이 없어', '내가 고르는 건 다 별로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언제나 내 속으로 들어와 '하자 있는 것'으로 변한다. 사랑해마지 않는 일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가치를 빼앗으며, 나는 하루 종일 천자문을 외듯 자신의 부족함을 왼다. 바보, 멍청이, 똥개라고 온종일 자신을 조롱한다.


능소화를 바라보다가 파도처럼 밀려온 생각들.

나에게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


'문신을 한다면 꼭 능소화를 그려야지' 생각한 적이 있다.

몸에 능소화 하나를 지니는 것으로 나도 영원히 뜨거운 열기를 간직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계절과 관계없이 내 팔이나 어깨 위에서 능소화가 늘 만개해 있을 수 있도록 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 더 단단하게 좋아해 보겠다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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