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병, 소중한 방황.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버린 이놈의 서른병

by 김하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마당과 텃밭이 있는 한옥에서 자랐다. 그 집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호미로 밭을 다듬고, 지렁이를 잡고, 부추를 수확하고 앵두를 따먹는 일이었다. 마당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분꽃에 귀여운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꼬물거릴 때에는 그것들의 성장을 관찰하는 것으로 온 시간을 다 썼다. 그렇게 동네 서점에서 산 문제집을 힘겹게 다섯 문제 정도 풀고는 바로 마당으로 뛰쳐나오는 것이 나의 유년시절이었다.




한 때는 그 집과 그 시간들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도 한옥의 푸세식 화장실과 요강을 쓰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자못 괜찮은 척 '우리 집엔 뒤주도 있다! 느그 집엔 이거 없지?'를 시전 하기도 했지만 자격지심에서 나온 큰소리 임이 자명했다.




그렇게 그 집과 그 집에서의 기억은 마음이 편하지만 부끄럽고, 지속하고 싶었지만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나의 진심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 사이에서 생겨난 양가감정. 30대가 되었음에도 아직 모든 일에서 같은 방식으로 방황하는 걸 보면 이게 나라는 사람이 가진 기질인가 싶기도 하다. 혹은 하나는 나의 기질, 하나는 포기 못한 이상향의 부작용일까.




마음이 편하고, 그대로 지속하고 싶은 것이 물론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타인의 시선을 제발 좀 신경 쓰지 않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늘 무의식 중에 '어떻게 보일까?'가 행동의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사람들과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편하게 말하지 못한다. 내 의사를 깊이 바라볼 시간도 없이 후루룩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도 버겁다. 요즘은 사람들과 있으면 똑바로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가 흔들린다고 느낀다. 그래서 사람 속에 있는 것이 싫다.




20대에는 대쪽 같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주변에서 하는 말에 대부분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만났을 때는 거의 전쟁도 감수할 만큼 호전적으로 자신을 지키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런 모습이 부끄러웠고, 어느 날 문득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그래서 문득 전쟁을 그만하고 싶어 졌다. 나를 조금 내려놓으면 내 세상에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다. 미움받는 독불장군에서 사랑받는 현인이 되고 싶었다.




정답을 찾고 싶다. 둘 중 하나만 가지고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어디쯤이 적당한 것인지 그 답을 찾고 싶다. 보편의 정답이 아닌 나의 답을 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디쯤이 편하겠니?'라고, 언젠가부터 어디론가 숨어버린 나에게 부드럽게 묻기를 지속해야 한다.



지금의 휴식은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다만 휴식이 그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나를 몰아세우며 골몰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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