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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브레이커 Dec 16. 2021

어렸을 때부터 돈을 밝히면 겪게 되는 일

가난에서 벗어나는 심플한 방법

나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장난감 한번 제대로 사달라고 할 수 없었다.

햄버거는 운동회 때 한번 먹을 수 있는 특별 메뉴였다.


어린 나이지만 우리 집 형편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머니 주변 지인들에게 알수 없는 사람에게 받은 옷을 입고 다니는게 부끄럽진 않았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아이들이 가난에 대해 생각하는 2가지 방식이 있다.


'나도 부모님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겠구나' 포기하거나

'나는 지긋지긋한 이런 삶에서 벗어나겠어' 어려운 희망은 품는다.


나는 전자에 가까웠다. 

20대 전까지 가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순응하겠다는 삶을 살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욕심내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다 생각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친형이 욕심으로 부모님과 매번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포기하면 편하대 라고 자신을 속여 왔었다.


나는 내 집을 가질 생각도,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생각도, 해외여행을 다니는 삶은 꿈꾸지도 않았고 

여유는 태어났을 때부터 부자였던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32살 내 집을 가지고 있고 , 코로나 전까지 1년에 1~2번은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에서는 확실히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돈에 집착 또는 돈을 밝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0살 학자금이 없어 대출받아 다니며 용돈이 없어 알바 뛰어 대학생활을했다. 

돈이 없어 점심시간에 pc방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어느날 원하던 대학도 원하던 전공도 아닌데 눈치 보고 궁상맞게 20살을 보내는 내가 너무 싫어졌다.


대학만은 나오길 바랬던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1학기를 마치고 바로 자퇴를 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어른이면 다 돈을 버는 것 같은데 왜 돈을 못 벌어서 항상 참고 무시당해야 되는지 직접 알고 싶었다.


아무 능력도 없는 20살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일용직, 택배, 서비스직 2년이란 시간동안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돈의 소중함을 느꼇다.

돈이 없으면 남의 노예처럼 내 몸과 시간을 바쳐서 살아야 되는 구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고용한 사람도 나와 비슷한 가난한 사람이였단 것을 알고 크게 깨달았다.


예전엔 무의식적으로 부자는 나쁘사람이다 생각 했다.

많이 버는 사람은 공부를 엄청 잘하거나 남의 등쳐 먹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현장직 일을 하면서 외제차를 끌고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반장님을 보면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지금 생각해도 신기하지만 그분 은 착실하게 일하고 모아서 현장직으로 자수성가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현장직들은 우리 아버지 처럼 하루 벌어 하루 쓰는 하루 살이 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며 고학력이 아니더라도 몸만 조금 힘들면 가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기 위해서 돈을 소중히 생각해야 된다는 것도 알았다.


피땀 흘린 돈에 집착하면서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했다. 

내가 지금 이 돈을 쓰면 내가 얼마나 일해야 되고 어떤 고통을 필요한지를 항상 떠올렸다.

군대 가기 이틀 전까지 일을 하고 군대를 갔고 2년 동안 2000만 원을(당시 2008년) 모왔다.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3달 정도의 욕망의 시기 (월급대로 다 쓰는 기간) 빼고는 교통비, 핸드폰비 제외 거의 쓰지 않았다.


돈을 벌면서 오히려 돈 없을 때 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주변에선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돈독이 올랐다, 저렇게 해봤자 달라지는 것 없다.. 등등'


가장 마음에 남았던 말은 내편이길 바랬던 아버지가

'어린놈이 돈만 밟힌다. 인간이 먼저 돼야지'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이 집 저 집 이사만 20번 넘게 하게 만든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더 굳게 다짐했다.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군대에 있으면서 군대 월급도 모으며 생각했다.

'몸 쓰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데 그 외에 것들 통해서 돈을 벌고 싶다'


그때 재테크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군대에서 관련 책들을 다 읽고 몸이 아닌 지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도 나만 잘하면 몸 쓰지 않아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22살이 되어서야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가난한 부모는 가난한 마인드를 물려주어서 실패한다는 글귀가 내 머리를 울렸다.


24살 전역 후 원하는 공부를 위해 대학에 들어가고 내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돈이 다가 아니다'

'늙어서 부자 되면 뭐할래?'

'티끌 모와 봤자 티끌이다 등등'


가난 속에 빠져있던 내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돈에 집착하는 내 모습은 틀렸다고 말했다.

결과가 생각보다 나오지 않을 때는 내 마음이 힘들어질 테면 유혹의 말들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기회가 올 때까지 오직 돈만 벌고 모으고 공부하며 통장에 쌓이는 잔고의 숫자는 변했갔다.

내 삶이 달라진건 일용직이 아니라 사무직으로 일을 하는 것 빼고는 삶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다시 출근했다. 

가끔 쉬는 날 알바를 하며 돈을 더 모으려고 최대한 노력한 것뿐


돈을 밝히면서 집착하고 살아온 10년째 되던 해  기회가 왔고 나는 내가 모은 모든 돈을 투입해서 집주인이 되었다. 첫 하나의 성과를 이루어냈고 결과가 나오자 주변의 평가는 달라졌다.


어릴 때 돈을 밝히는 내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하고 무시하고 조롱했던 사람들이 집주인이 된 이후로는 성실하고 착하고 능력 있는 청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달라진 건 집문서가 있냐 없느냐 하나 일뿐인데 말이다. 

우리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사건이었다.


중요한 건 내 마음과 올바른 방법으로 정도를 걸어가는 게 부자가 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지금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선동하고 빠른 지름길이 있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본이 되고 충고할 만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지만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들에 대해서 배운 것이 확실히 있다.


돈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루어 주어야 된다는 것

내가 돈을 하찮게 생각하고 막대하면 절대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주변에 평가는 결과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똑똑한 머리, 재능, 특출 난 사람들만 가난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라는 것


현재 삶에 돈 때문에 불만족하고 답답하다면 마음부터 바꾸고 올바른 방향으로 쌓아 가보시기를 바란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위대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당신의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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