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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브레이커 Oct 13. 2022

허세 부리는 삶이 가난을 탈출시키는 이유


어렸을 때부터 흔히 듣던 말이 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항상 말을 했다.


'허세 부리지 마라'


20대가 넘어서는 이런 말을 여자들에게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동료들과 회식하다 보면 재미로 물어보던 질문들은 뻔했다.


"어떤 남자가 싫어?"


10명 중 9명은 "허세 부리는 남자가 싫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남자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였다.


"저 새끼 재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친구들은 허세를 부리는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해 잘난 척을 심하거나 진짜 잘난 친구들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가난에서 탈출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독하게 할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허세 부리고 자 하는 마음이 나에게 하나의 큰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현재의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허세를 부려야 된다고 조언을 해준다.

모두가 허세 부리지 말고 허세 부리는 사람이 싫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말을 하는 걸까?


허세란?

실세는 없지만 자신감 있어 보이는 기세 즉 근거 없는 자신감 근자감에 가까운 말이다.



만약 환경이 불우하고 가난했던 아이들이 근자감이 없다면 어떤 마음이 생길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만큼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고 반대로 환경을 뛰어넘기도 하는 게 사람의 특징이다.


환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환경에 순응하지 말아야 된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알게 모르게 깊은 패배의식, 자기 확신 부족들이 생긴다.

왜냐하면 대부분 가난했던 부모들은 아이들의 선택을 믿어주고 지지해주기보다는 현실에 치여서 통제하거나 억압하거나 또는 방임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돌아보면 보통 남자 애들처럼 축구를 굉장히 좋아했다.

당연히 축구화 하나 가지는 게 소원이었지만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비를 모와 처음 신을 수 있었다.


축구는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지만 축구화가 없이 보통 일반 운동화로 축구를 해서 신발이 1년 이상 버지를 못했다. 오죽하면 동네에서 친구들에게 축구화를 신지 않고도 축구를 잘하는 친구로 불리기도 했다.



내가 축구화를 사달라고 부모님에게 몇 번이나 말했을까?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에 대해 잘 몰랐던 나에게 참고 참다 원하는 걸 얘기했을 때 거부당하는 좌절감은 마음속 깊이 있는 내면에 패배감을 만들곤 한다. 가난한 집 아이들과 대화해보면 나 같은 경험을 수두룩하게 느끼고 공감한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현실을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원하는 걸 얘기하지 않게 되었고 나에게 원하는 것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 아닌가라는 패배주의자 적인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발동했다.


삶에 모든 결정들이 어떤 꿈을 꾸거나 기대감을 가지기보다는

  
'나는 안 되겠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

"돈 있는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거야"

"부모님이 도와주는 애나 할 수 있는 거야"


이런 핑계와 생각들로 도전하기보다 한 발 더 나아가기를 꿈꾸기보다 현실에 순응하고 문제를 회피하는 선택들을 하게 된다. 이런 선택들은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가난에서 벗어난 지금도 어렴풋이 그런 습관들이 남아 있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마음속에 내가 이래 되나 라는 생각들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지우기 위해서 무작정 해보자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 마음속 남아있는 작은 어두움들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다.



공부도 평범, 재능도 평범, 집안은 가난, 부모님은 부재했던 내가 입시 실패와 함께 패배주의에 찌들어 20대 초반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아가던 내가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허세 부리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항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 인생은 아버지처럼 하루 먹고 하루 버티는 인생으로 살겠거니 어렴풋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돈 생기면 친구들과 술 먹고 놀고 PC방 가고 이런 잉여의 삶에 반복이었다.


그런 순간에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연애를 너무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처음 시작이 알바를 하던 단골손님과 에 썸이 시작 됐을 때이다.


학창 시절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어떻게 다가가고 고백을 해야 되는지 몰랐고 패배주의적 마인드 때문에 긍정에 신호들이 있음에도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아르바이트했던 형이 나를 바꿔 주었다.

인싸에다가 클럽을 다니면서 이성들과 자유롭게 연애를 잘하는 나는 다가갈 수 없었던 소위 잘 나가는 형이었다. 호기심이었는지 답답한 마음에 형은 나에게 진지하게 조언을 해줬다. 조언들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인생의 바꾸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야, 남자는 자신감이야, 어차피 사람들은 몰라 있는 척 잘난 척 허세 부리면 사람들은 그걸 믿어"


지금은 진리처럼 많이 얘기하는 남자는 자신감으로 직진하라는 말과 함께 허세를 부리면 된다라고 말이다.


반신반의했지만 이성친구에게 처음 꽂힌 남자의 열망은 패배주의자적 마인드고 깨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형이 알려준 방법대로 있는 척 허세 부리는 척 썸 타던 친구에게 다가가고 이런 척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만들어 주더니 고백을 통해 처음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애 성공의 시도를 기점으로 진짜 나의 인생이 달리지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있는 척 허세 부린 척했던 것들을 진짜로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사랑했던 이성에게 잘 보이기 시작한 허세들이 나의 삶에 하나씩 정착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인생에 대한 기대감과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대화하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 다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할 거야"

"나는 나중에 창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 거야"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있는 척 허세 부리기 위해서 해던 말들을 순수하게 믿어줬던 여자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게 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고, 돈을 어떻게 모으고 벌어야 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허세 부리기 위해 시작한 삶이 가난을 탈출시키게 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나는 SNS에 자랑하는 사람들,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질투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자기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공감받는 건 인생을 더 열심히 살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생각한다.


단 현실에는 없고 거짓된 삶으로 공감받는 삶에 적응되어 거짓에 중독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지금 현실이 시궁창이라면 허황된 허세라도 보이면서 자신의 삶을 꾸미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꿈꾸면 이루어진다라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그런 꿈이 리도 꿔야 현실에 삶이 하나씩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나는 안된다라는 어릴 때 가난한 꼬마의 마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철없는 근자감을 가지고 난 저렇게 살 거라는 마음으로 앞을 보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남들에 이야기

겸손해야 된다 진실되어야 된다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  좋은 말이지만 없는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에 데 도덕과 선의를 먼저 가르치게 되면 평생 순응하면 살아가게 만든다



착한 건 이루고 나서 착해야 겸손하고 멋있다.

이룬 거 없이 착한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덕이 아니라 호구처럼 살아가게 된다.



없이 살수록 마음껏 허세 부리 기를 바란다.


카푸어로 사는 것도 내가 원해서 하는 거라면 당신의 삶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급 200에 만족하며 200만 원 버는 사람에게 차는 사치라는 한계 선을 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인생 한방이지 라면 허세 때문에 쓴맛도 보고 그래서 진짜 내가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만 들 수 있다면 무너져 보는 것도 당신에 삶을 발전시킬 거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말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꿈꾼다면 허세 부렸으면 좋겠다.


짠 테크가 유행이지만 억지로 짠 테크 하다가 욕구불만에 충동적으로 선택하고  이후로 자포자기하는 마음에 막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남들이 방법이 나에게 최적의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착한 건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고 착한 건 도태되는 삶이 되기 딱 좋은 게 현실이다.


미안하지만 착한고 가난한 남자를 좋아해 주는 이성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신데렐라 신드롬이 여성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능력 없고 노력하지 않고 착하기만 한 남자들도 평강공주를 찾는 바보온달과 같다.


현실에 평강공주는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와 꿈꾸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도 현실에 살아간다. 유토피아 세계를 꿈꾸는 건 어린아이 동화를 볼 때 이후로는 처절한 현실을 직면해서 순응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내 삶의 변화가 일어 난다.


당신도 마음만 먹는 다면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 진정성, 도덕, 윤리, 착함, 선함, 메이는 게 아니라 허세와 허풍으로 시작하고 허세와 허풍은 진실로 만들기를 먼저 하면 어떨까?


당신의 허세가 진짜 당신을 이끌어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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