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인생의 새로운 시즌
인생은 예기치 못한 순간의 연속이다. 이런 인생을 살면서 용케도 계획형 인간으로 살고 있다. 항상 ‘오늘은 이걸 해야지’ 하며 계획을 짜고 예기치 못한 일들 때문에 태클 걸리는 사람. 그래도 꿋꿋이 계획을 짠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예측하지 못한 순간이다. 어쩌다 보니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나도 내가 올해 안에 내 손안에 쥐었던 것들을 정리하고 브런치에 글을 게재하게 될 줄 몰랐다. 정말 어쩌다 보니 정리하게 된 것이지만, 그래도 이것들이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나의 장점 중 하나는 꾸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내 손에서 놓질 않는다. 몇 년 동안 내 삶에서 한 공간을 차지했던 것들을 보내는 건, 그것도 한꺼번에 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도 그 자국이 남아있는 것 같지만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도 있고, 언젠가는 이 자국도 사라지리라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오늘은 내 손으로 정리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실 작곡 학원을 이렇게 빨리 정리할 줄은 몰랐다. 배우면서도 ‘언제까지 다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작곡의 기본적인 내용들은 다 배웠고, 이제 내가 작업해가면 피드백해주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아직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 반, 그만두기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 반을 가지고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가르치는 B(선생님이지만 사실 내가 아는 동생이라 말을 편하게 하고 있다.)가 음악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다. 수년 동안 했던 음악을 그만두는 사연이 있을 것이고 그걸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아마 말하고 싶었으면 본인이 직접 말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물어보지 못했다. 음악을 그만두고 장비를 내놓는 모습에 내가 다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어쨌든, 서로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고, 올해까지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B의 장비는 이미 다 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학원에 있던 기본 장비들을 써야 하는데, 컴퓨터 상태가 좋지 않아 프로그램이 자꾸 꺼졌다. B는 타지로 출퇴근을 하고, 퇴근 후에 내 수업을 봐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늘 피곤했다. 이상하게 나도 올해까지 수업이 진행된다는 마음에 마음이 붕 떴다. 결국 내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수업, 그냥 이번 달까지만 할까?”
솔직히 너무 갑작스럽게 한 말이라 조금 미안했다. 이번 달 수업이 딱 2번 남은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꺼낸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 달 안에 정리하는 게 제일 깔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 누나 진짜 고마워. 나도 사실 고민하고 있었거든.”
B도 사실 고민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에게 올해까지 수업을 진행해주겠다고 했지만, 매일 타지로 출퇴근하는 데다가 자격증 시험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매일이 너무 피곤했다고 한다. 그런데 퇴근 후 내 수업까지 진행해야 하는 게 너무 벅차서 그냥 이번 달까지만 진행하자고 할까 얘기하려다가도 나와 했던 약속이 생각나서 얘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이 통했고, 마지막 수업을 진행했다.
2년 동안, 나름 긴 시간 동안, 취미로 배운 작곡을 정리하니 작곡에 입문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에게 작곡은 나름의 살 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한 때 힙합을 동경하며 가사도 몇 번 썼었고, 노래도 잘하고 싶어서 매번 코인 노래방에서 혼자 연구했다. 이제 돈도 벌고 내 나름의 자유를 찾아갈 때쯤,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음악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모든 것들을 다 아우르는 작곡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취미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곡을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누가 작곡 왜 배우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작곡을 시작하려면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마다 돈을 쓰면서까지 작곡을 배우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이라는 대답은 다른 사람들의 궁금증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봐, 시간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할까 봐 섣불리 시작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문은 두드려 보았다. 마침 음악학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취미 작곡도 가르치냐고 물어보았고, 고맙게도 친구는 작곡을 배우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참 고마웠고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작곡을 배웠고, 창작의 고통 때문에 괴로웠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나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내가 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 한 층 더 알아가는 즐거움이 나를 충족시켰다. 내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라 많이 쑥스럽긴 하지만, 2년 동안 ‘그냥’ 만들었던 음악들이 나의 자부심이 되어 쌓여갔다. 그동안 나를 가르쳐줬던 B의 실력을 보면서 나의 부족함을 느끼고, 새롭고 신기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B의 마지막 수강생이라는 말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2년 동안 설명 해준 걸 또 설명해도 새롭게 들었던 나를 열심히 가르쳐줬던 B에게 감사를 전하며,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 작곡도 홀로서기를 할 시간이다. B가 가르쳐줬던 것들을 열심히 상기시키며 사용하며 홀로 작곡을 해 보이겠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B의 앞날을 응원한다.
약 2년 반 전의 나는 굉장히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어딘가 조급한 사람. 막연하지만 뭐라도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과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 하는 자괴감 때문에 조바심이 나고 불안한 사람이었다. 심리상담을 진행한 건, 일단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내 마음은 이렇게 불안한데 지금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이 정도면 누구나 겪는 불안인 것 같았다. 괜히 내가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다 이렇게 산다’는 마음은 위험한 거랬다. 그래서 상담을 신청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이제까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나. 학창 시절에는 엄마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래서 엄마 말이 다 옳다고 생각했었고, 엄마가 나는 착한 아이라고 했으니까 나는 착한 아이였다. 엄마가 말하는 착한 아이에 반대되는 아이는 나쁜 아이다,라고 생각하는 사회성과 융통성을 잃어버린 아이였다. 그래서 인기 많은 친구들이 부러웠고 인간관계에 목말라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친구들을 잘 사귀고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이 친해지고 싶어 하며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는 학창 시절의 소원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을 끄는 외모도 아니고 내향적인 성격이라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 먼저 다가와 친해지고 싶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내향적인 성격인 내가 남들이 좋아하는 사람, 남들이 먼저 다가오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나는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유니크하다고 생각되는 옷을 사서 입었다. 특히 남들이 도전하기 쉽지 않은 스타일로 입었다. 남들이 봤을 때 멋있다고 생각할만한 취미를 가졌다. 물론 모든 것을 남들에게 맞춘 건 아니었다. 내 취향도 들어갔으나, 남들이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어봤을 때 정말 멋진 취미를 가졌다는 답을 들을 수 있을만한 취미를 수집했다. 별 거 없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척 행동했고,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지만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 행동했다.
사람들은 나를 '여유롭고 멋진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물론 아닐 수도 있다.) 이 자리에서 고백하건대 나는 그런 멋진 사람이 아니다. 마치 급하게 방 정리를 하느라 장롱에 물건을 욱여넣는 사람처럼,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급하게 정리했지만 안에 욱여넣은 나의 찌질한 모습들이 아슬아슬하게 감춰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살았나 싶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서 하나하나씩 정리해 갔다. 상담을 통해서 남보다는 '나'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에게 잘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래서 나의 찌질한 모습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전혀 찌질하지 않은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인생 살기가 복잡해진다. 조금이라도 찌질한 모습이 보이게 되면 감추기 급급해진다. 하지만, 나도 찌질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인생 살기가 편해졌다.
'나'에 집중하면서 얻은 또 다른 성과는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지만 동시에 성공하고 싶었다. 남들이 봤을 때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도 돼.'라고 생각할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성공에 목말라 있었고,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성공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나도 얼른 저렇게 한 분야에서 자리 잡은 사람으로 유명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매번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세상은 수직이었다. 하지만, 남이 아닌 나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초점을 남이 아닌 나에게 옮기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초점을 어느 정도 나에게 옮긴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꼭 성공해야만 자유롭게 살 수 있나? 지금 자유롭게 살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초점이 나에게 오니 이젠 세상이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보인다. 높이는 좀 낮아졌을지 몰라도, 내 세상은 좀 더 넓어졌다. 삶을 한 방향으로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볼 수 있는 게 좋다. 물론 살다 보면 관점을 조금 다르게 잡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 넓은 세상으로 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앞으론 어떻게 살 거예요?"
상담 마지막 날에 선생님께서 하신 질문이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단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저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살지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다만, 저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어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고생해서 그런지 건강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허리가 몇 개월째 낫질 않아서 항상 하던 운동도 못하게 되었다. 건강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이건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다.
나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래도 2년 반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2년 반 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던 상담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나에게 하셨던 말씀처럼, 선생님도 앞으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킥복싱을 했다. 킥복싱을 하면서 체력도 늘었고, 내 자존감도 늘었다. 4년 정도 킥복싱을 하니까 난 어느 정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며, 그래서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킥복싱을 했던 4년은 나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재앙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돌연 허리가 아파온 것. 처음엔 허리가 아픈 게 단순히 허리 근육이 놀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며칠 있으면 낫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길어봐야 1-2주 정도라고 생각했던 통증은 3개월을 갔다. 알고 보니 예전에 발생했던 허리디스크 때문에 통증이 다시 발생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허리 나으면 체육관으로 복귀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허리가 다 나았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했더니 다시 허리가 아파서 병원으로 갔다. 정형외과를 가도, 한의원을 가도 치료가 다 돼서 통증이 사라져도 그때뿐이었다. 치료가 잘못된 건 아닌 것 같았다. 왜냐면 낫긴 나으니까. 생각해보니 문제는 내 자세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근본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생각난 게 재활 PT였다.
PT를 받으면 코어 쪽 근육을 잡고 내 자세도 어느 정도 교정이 되면서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킥복싱을 했던 4년간의 세월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때의 나는 킥복싱 말고 다른 운동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에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지금 허리 상태로는 다시 킥복싱을 해도 허리 통증이 도질 것이다. 인생은 길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오래 하고 싶다면, 지금 허리 건강을 잡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하려면 먼저 몸이 받쳐줘야 하는데, 내가 언제든 하고 싶은 운동을 하기 위해 기초를 잡아야 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재활 PT를 받기로 결심했다.
PT를 받으러 간 내 몸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설명을 들어보면 평발이라 발 모양부터 글러먹었다. 어쩐지 옛날부터 내 다리 모양이 X 자였더라니... 거기에 사무직이라 라운드 숄더도 있고 어깨가 올라온 모양새라고 했다. 그래서 이런 자세들을 교정할 수 있는 스트레칭 및 운동을 배우고 있다. PT를 받기 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PT를 받으면서 마주한 몸은 생각보다 심각했다(물론 내 생각). 이제 받은 지 2회밖에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하며 내 몸이 어떻게 나아질지 기대가 된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나의 정체성이라 생각하며 손에 꼭 쥐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손에 쥔 것들을 놓으며 들었던 생각은, 손에 쥔 것들을 놓아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거의 한꺼번에 정리가 되었지만, 이렇게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게 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시즌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