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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벌레 이야기

집에 가고 싶다고?

by euuna








호주 생활 두 달째. 열이 올랐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옷을 몇 겹이나 겹쳐 입어도 오한이 든 몸은 진정되지 않았다. 후각과 미각을 잃은 채 좀비처럼 지냈다. 그래도 딱히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날에도, 사기를 당했을 때도, 곧 살 집이 없어지는 상황에 부닥쳤는데도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학원에서 새로운 일본인 친구가 생겼다. 오키나와에서 왔고 핑크 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나보다 무려 10살이나 어린 친구였다. 케이팝과 한국 패션, 한국 아이돌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한국 여행을 수도 없이 다녀온 덕에 지방에 사는 나보다 더 서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멜버른에서 가장 유명한 바다가 어디인지 알아?” 친구가 물었다.

“세인트 킬다 비치?” 알고 있는 바다가 이곳뿐인 내가 말했다.

친구는 바다가 너무 보고 싶다며,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며 제안했다. 세인트 킬다 비치는 멜버른 시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유명한 해변이다. 어느 곳에서 여행하든 바다만큼은 꼭 간다던 친구는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나도 멜버른에서 바다는 처음이라 흔쾌히 따라나섰다. 우리는 트램 종점에 내려 해변으로 향했다. 피부를 바싹 익히는 태양, 축축한 공기, 반짝이는 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바다에 오니까 좋아?” 내가 물었다.

“응! 진짜 좋다. 멜버른 바다는 이렇게 생겼구나.”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한적한 바다 구경을 했다. 친구는 어디선가 나뭇가지를 주워 와 모레 위 제 이름을 쓱쓱 썼다. 그러고는 이름 뜻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바다처럼 넓고 깊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일본에서 바다가 유명한 지역이라고 하면 오키나와를 꽂을 수 있다. 오키나와 출신의, 바다가 좋다던 친구의 이름은 운명적으로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던 아이였다.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이라며,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좋아하는 거라던 친구의 얼굴이 기억난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어디라도 들어가자며 카페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 그런지 카페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웨이팅 라인에 서서 지붕 아래 그림자로 들어가겠다고 친구들과 몸을 한창 욱여넣고 있을 때였다. 아주 작은, 점만 한 벌레 한 마리가 새끼손가락 위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라는 서진의 말에, 가볍게 떼어내고는 점원이 안내해 준 자리로 가 앉았다.

메뉴판을 보는데 갑자기 새끼손가락 부근이 아려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아까 벌레에 물렸는지 조금 따가워서." 하고 대답했다.

그러다 점점 왼손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뭔가 심각한 거 아니야?'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에이 그렇게 작은 벌레가 뭘.' 이러곤 넘겼다.

어쩌다 집으로 돌아가는 트램을 타게 됐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쓰리다 못해 저리고 근육이 뻐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 나온 커피를 재빠르게 먹고는 일어서며,

"얘들아. 미안한데 나 집에 가야 할 거 같아."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기대했던 바다였는데 이렇게 가서 정말 미안해." 말끝으로 트램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뒤따라온 서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야 왜 그래..."

"나 왼팔이 이상해." 그땐 정말 심각했다. 내 마음이 말이다.

새끼손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이 점점 타고 올라갔다. 왼손이, 왼팔이, 왼쪽 부근들이 전부 저렸다. 마비된 듯 팔이 무거웠다.



- St.Kilda Beach, Victoria



우리 가족들은 나를 ‘병원쟁이’라고 부른다. 병원을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로 붙여진 별명이다. 그 외로는 엄살쟁이, 오버쟁이 이런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병원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저 큰 병으로 키우는 게 싫어서 하루빨리 낫고 싶어서, 그래서 가는 거다. 병원에 가야 할 듯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한국도 아니고 호주라는 거다. ‘이 증상을 뭐라 설명해야 하지?’ 아니지. 우선, ‘병원에 갈 수 있는 건가?’ 여러 의문이 한꺼번에 피어올랐다. 이제는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나 자신도도 엄살인지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우선 비닐들을 꺼내 물을 넣고 묶었다. 여러 개를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두고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좋은지.






호주는 병원에 가려면 우선 'GP'라는 곳에 간다. 한국어로는 '일반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일차적으로 'GP', 즉 '일반의'를 거쳐야만 '전문의'를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리고 'GP'의 판단하에 정밀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소견서 혹은 추천서를 써 준다. 워홀러의 경우에는 '메디케어(의료보험)'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여행자 보험을 들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평균적인 병원비를 알아보다 한 번 가는데 만10만 원은 깨질지 모른다는 글을 보고 드디어 집에 가고 싶었다. 한국에 있는 집 말이다.


집을 구하지 못했을 때도, 제대로 씻지 못하던 날에도, 한식이 무척 그리웠던 때에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손가락이 아파서 집에 가고 싶었다. 무슨 이상한 병에 걸렸을까 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른 쟁이는 잘 모르겠고 확실히 ‘겁쟁이’같긴 했다. 당장 병원에 가서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었다. 작은 벌레에게 물린 거 같다며, 이제 곧 왼팔이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엄살을 부리고 싶었다.


이곳에서 믿을 건 나뿐이었다. 얼음 비닐을 팔에 두른 채 밖으로 나갔다. 호주의 약국이라 불리는 ‘케미스트리’를 갔다. 다양한 영양제가 많이 판다는 말을 듣고, 지나가듯 ‘나중에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게 이렇게 가보게 될 줄은 몰랐다. 여러 방식으로 다양하게 검색했다. 호주에서 벌레에게 물린 남편의 극복기를 담은 블로그, 호주에 사는 다양한 벌레에 대한 관찰과 기록기, 나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이 쓴 연고에 대한 리뷰 등. 많은 곳으로부터 도움받았다. 평생 알 일이 없을 것 같던 용어들도 알게 됐다.



- 뛰쳐나가서 한아름 사온 약



'GP'의 문제는 예약이다. 무작정 접수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도를 통해 우선 갈 수 있는 GP 위치를 찾고 진료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날을 찾아야 한다. 간단한 인적 사항 입력 후 제출해야 일반의 진료라도 볼 수 있는 거였다. 저린 팔을 들고 제발 별일이 아니길. 내 몸이 이 작은 벌레에게 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고를 벅벅 발랐다. 더 이상 어떤 것도 검색하지 않았다. 곧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글까지 읽고 나니 숨쉬기도 어려워지는 듯했다. 난 정말 확실히 오버다.


다음 날 예약해 둔 GP를 취소했다. 약간의 저릿한 느낌은 있었지만, 눈에 띄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살았다. 만약 이곳이 호주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갖가지 이유를 붙여가며 병을 키웠을 거다. 작은 고통을 무자비하게 키워가며 스스로가 내린 재앙 속에 몸부림을 쳤을 테다.





덕분에 모든 게 큰 일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걸 배웠다. 오히려 마음이, 생각이, 모든 신경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키우기도 한다. 연고로 끝나버릴 일이 있는가 하면, 약을 먹어야 낫는 것도 있고, 며칠을 앓아야 끝나는 일도 있을 거다. 그냥 얼큰한 김치찌개 한 번 먹고 땀을 쭉- 빼고서야 낫기도 하는 병도 있을 테고 말이다.

사실 호주는 나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자꾸 힘든 일이 생기는 걸 보니 여긴 올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며 사사롭게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야금야금 병을 키우고 있었다. 근래에 나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그 덕에 면역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테고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주고 간 무언가에 몸서리치며 반응하기 좋은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10시간 무렵 잠을 잔 덕에 말끔히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멜버른의 첫 바다는 바다 친구와 작은 벌레로 뜨겁고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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