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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기념하자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by euuna








별거 아닌 날을 기념일로 만드는 거. 호주에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파티였다. 파티라고 하니 거창한 느낌이 있는데, 말하자면 기념한 이들과 모여 앉아 떠드는 게 다인 날이다. 하지만, 마땅히 붙일 이름이 없고 이만한 이름도 없어 ‘파티’라는 말을 기념할 만한 일에 자주 붙였다. 처음으로 일을 구했으니까. 주급을 받았으니까. 학원을 졸업했으니까. 기념할 만한 것들은 자주 찾아왔다. 기념이라는 단어 아래서 재미나게도 둘러앉아 놀았다.

함께 한 여정을 둘러보는 일이고 지난날들의 기억을 쏟아내며 떠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다, 다음을 도모하게 만드는 주축이 되던 날이기도 했던, 평범하고도 평범하지 않은 하루가 되던 날들이었다.


기념 파티 사실 과정이 가장 재미있다. 준비 과정이 좋아서 파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편지를 쓴다거나, 요리한다거나, 케이크를 만든다거나, 주변을 꾸민다거나 하는 준비 과정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초대하는 그 기쁨도 매우 크다. 어떤 날로 만드는 재미는 그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더욱더 재미있어져 갔다. 어학원에서도 학원 측에서 준비한 기념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라틴 파티, 아시안 파티, 스포츠 데이, 무비데이 등. 매주 하는 오리엔테이션 PPT에는 기념일만 정리해 둔 달력 페이지도 있었다. 지금까지 파티가 좋다느니, 기념일을 만드는 게 즐겁다느니 장황히 늘려두고 하는 말이라 민망하지만, 어학원 파티는 단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파티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파티를 좋아하는 걸로 마무리 짓겠다.



- 가장 친했던 태국, 한국 친구들과의 입주 파티



어학원에서 처음으로 같은 반을 했던 한국인 친구, 은선의 생일이었다. 하필이면 생일 파티를 열고 싶어 하는 나를 포함한 나머지의 동갑내기 친구들, 서진과 지예도 적극 찬성을 외치는 게 아닌가!


“너 생일 파티 할래?” 내가 물었다.

“생일 파티? 좋지. 우리끼리?” 은선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뭐야. 누구누구?” ‘엉뚱한 짓 하려고 그러지’라며 흘겨보는 은선을 향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우리 반 친구들 전부 부르자고.

“뭐? 그게 돼? 어디서 하려고?”


은선의 생일을 많은 친구들과 축복하고자, 아니 사실 그것보다 다 같이 둘러앉아 떠들고 놀고 싶어서 제안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데리고 어디를 갈 수 있냐는 친구의 물음에 ‘지금부터 찾아보면 되지 뭐.’하고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던, 펍에 가게 됐다.


“시티에 엄청 큰 펍이 있는데, 예약도 할 수 있대. 한 번 해볼까?”

“…그래. 난 모르겠다. 내 생일 그냥 너한테 맡길게.” 생일을 양도한 은선이었다.

“앗싸.” 나는 감사히 받았다.


살면서 이렇게 큰 파티는 처음 해본다는 은선의 말에 사실 나도 처음이라고 말할 뻔했다. 나는 사실 유경험자다. 때는 초등학교 1학년, 돈가스 가게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친구가 부러워 엄마를 졸랐다. 대학가 근처의 커다란 돈가스 가게에서 친구들을 초대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 이후로 이렇게 큰 파티는 처음 일 거다. 그렇지만 은선아. 나를 믿어줘.


파워 내향형이라는 은선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파티 주최자라는 멋진 직책을 달아 주었다. 주인공 기대를 망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본격 K생일 파티를 보여주자고 대형 마트로 친구들을 이끌었다. 형형색색의 펜들과 종이,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 등 잡다하고 귀여워 보이는 것들을 샀다.


집으로 돌아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초대 멘트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색칠했다. 그렇게 은선의 생일 파티를 초대하는 초대장을 만들었다. 마치 미술 학원에 온 듯한 기분으로 개성이 담긴 초대장을 만들어 냈다. 은선의 생일이 내 생일처럼 기대됐다. 초대장을 받을 나의 불문, 국적 불문, 각양각색의 우리 반 친구들의 반응이 기다려졌다.





은선의 생일날. ‘점심시간에 밥 사 먹으러 가지 마!’라고 지예가 단체 메시지를 보내왔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지예는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오더니 반찬통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줄줄이 끝도 없이 나오는 음식들. 생일인 은선을 위해, 지예는 한국식 생일상을 준비해 왔다. 지예의 정성에 우리가 모두 감동했다. 지나가던 친구들도 이게 무슨 음식이냐며 물어왔다.


“한국에서는 생일날 이렇게 먹어~”





많은 친구가 모여들었고, 은선은 점심시간 내내 끝도 없이 축하받았다. 한 입씩 떠먹여 주고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설명해 주며 의자를 끌어와 함께 앉아서는 맛있게도 먹었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자연스럽게 함께임에 익숙해졌다.


예상대로 초대장을 받은 친구들은 무척 좋아했다.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하고 펍으로 가 어눌한 영어를 마음껏 써먹었다. 학원에서 하는 진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나라, 문화, 생활, 개개인의 관심에 대해 끝도 없이 떠들고 놀았다.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은선의 생일 덕에 생애 최초로 제2의 언어 파티를 경험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반 친구끼리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고 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혼자였더라면 감당하지 못했을 일들이 똘똘 뭉쳐 같이 해내다 보니, 겁이 사라져 갔다. 재미난 일들과 커다란. 일들을 벌리기에 바빴다. 산 넘어 산이지만 하나를 넘고 나면 꼭 새로운 동료를 얻은 듯했다. 가는 길목마다, 같이 가야 할 이들이 서 있었고 그러다 함께 쉬어가기도 해야 했다.


우리는 이후로도 여러 친구의 생일 파티를 함께 했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갈 때마다 이사 파티도 했으며, 학원 졸업 파티, 눈물의 지역 이동 파티 등 수많은 파티를 즐겼다. 웃고 떠드는 날에 한낮 피로를 풀어버리는 게 익숙해졌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쉬어가는 법도 배웠다.



- 앞으로도 잘 헤쳐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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