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과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났다. 서진의 첫인상은 하얗고 말갛다는 느낌의 친구였다. 작은 체구에, 하얀 피부, 조용하지만 엉뚱하고 발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안녕? 이름이 뭐야?” 서진의 바로 뒷자리에 앉은 내가 물었고
“…서진이야.” 부끄러운 듯 조용히 제 이름을 말하던 아이였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빠르게 친해졌다. 엄마 폰을 빌려, 사진을 보내 가며 수련회 날 입을 수영복을 같이 고르고, 비슷한 옷을 입을 때는 날을 맞춰 입고 오기로 약속도 하고, 주말이면 강변 돌다리에서 만나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서서히 멀어졌다. 중학교 1학년. 우리는 다시 만났고 다시 친해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 전보다 훨씬, 훨씬 더 가까워졌다.
가방도, 필통도, 노트도 전부 똑같았다. 머리 모양도, 입는 옷 스타일도. 어느새 키도 비슷해진 우리는 뒤에서 보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쌍둥이처럼 다녔다. 무엇이든 같이 하고 싶었다. 만나면 너무 반갑고 헤어질 땐 무척 아쉬운 사이였다. 미술 학원에 다니던 나를 따라 서진도 함께 했다. 과외도, 영어 학원도 함께 다니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그런 사이로 오랜 시간을 오랫동안 붙어 지냈다.
- 고등학생 시절
내성적이고 쑥스러움이 많던 서진. 종종 무언가를 하기 전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일었다. 서진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 전부 사라지길 바라는 그런, 어린 마음. 서진을 힘들게 하는 것들은 내가 전부 해결해 주고 싶었다. 나는 서진이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서진에게 힘든 상황이 생기면, 서둘러 해결해주고 싶었다. 서진이 무언가를 잘 해내면, 제 일 처럼 기뻤고 행복했다. 가까움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우리는 늘 그 선을 무시했다. 아니, 내가 항상 지나쳤다.
가끔은 그런 게 문제가 됐다. 오랜 세월 그렇게 지내다 보니,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당연하게 되고, 낄 곳 끼지 못할 곳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 그렇게 서진을 더 힘든 상황에 몰아넣었다. 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도록 말이다.
돕는 일이라 생각했던 게, 얼마나 자만 가득한 일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제 앞가림도 하기 바쁜 내가, 남의 몫까지 해내려 했다. 서진과 나를 보고 있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꼬여버린 매듭의 시작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우리를 아는 주변인들은 종종 걱정 어린 말들을 건넸다. ‘평생 책임질 거 아니면, 적당히 할 줄 알아야 해.’라던가, ‘너희는 좀 거리라는 걸 둬야 할 거 같아.’같은 말들. 어떤 날의 시샘이라 생각하기도 했었고, 어떤 날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왈가왈부라 치부하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서진을 건드리는 일은, 나를 건드리는 일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렇게 서진의 기회를 몇 번이나 빼앗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얼마나 잘못된 방식으로 그녀를 위했는지. 위하는 일이라 여겼던 것들이 전부 오만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네가 언젠가 나를 떠날까 봐 무서워.”
“나는 네가 제일 어려워.”
“다른 친구는 딱히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
서진이 무심결에 뱉는 말은 자꾸만 무서운 힘을 키웠다. 그런 서진의 말과 행동이 내 발목을 잡은 듯했는데, 사실은 내가 서진을 옭아매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말이다. 기어코 호주에까지 끌고 왔다. 나는 서진을 홀로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었다. 나는 서진이 불안하게 키운 마음이 무거웠다. 서진은 내가 자신을 떠날까 봐 무서워 했고 혼자 남겨질 상황을 걱정했다. 나는 서진이 내가 서진을 떠난다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고 서진이 어디선가 혼자 남겨지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러니까, 서진이 타즈매니아에 가지 않는다고 하는 게 어쩐지 내가 서진을 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히로와 먼저 말한 것 때문에, 오해에 오해가 더 해져서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히로가 서진을 설득하도록 하게 했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서진에게 연락했다.
- 고마웠던 컨트랙터에게 찾아 준 네잎클로버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정말 같이 안 갈래?”
“…응”
“내가 미안해. 오해하게 만들어서,”
“아니야 그런 거. 나는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어쩌면, 나는 어릴 적 겁 많던 서진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서진이 내 앞에서 약한 모습 몇 번 보였다고 알 수 없는 책임감을 키우며 지냈을지 모른다. 여리고 걱정스러웠던 서진은, 사실 내가 만들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 서진이 성장할 기회를 막고, 서진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먹어 치움으로써 내 기세가 등등해졌다. 용기는 내가 자주 내고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서진이 훨씬 용감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정도가 없는 우리 관계를 돌아봐야 할 때일지도 몰랐다.
서진과 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오해만 하다 갈 수는 없었다. 미련 가득한 나를 다독였다. 우리는 처음 호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날을 떠올렸다.
“우리 호주 가기로 했을 때,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자고 했었잖아.”
“그랬었지.”
“호주에 가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한 건 맞는데, 이렇게나 방황하며 살고 싶다는 건 아니었어.”
여태 들은 어떤 말 중에서도, 가장 속상한 말이었다. 같이 방황해 주지 않아서도, 언뜻 무모하다는 듯 느껴지는 말 때문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렇게 들렸더라면, 좋았을걸. 얼마나 서진의 인생을 내 멋대로 굴고 있었는지. 서진의 삶을 내 삶처럼 여겼는지 결국 서진의 입에서 듣게 되었다.
“왜 벌써 가요.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컨트랙터는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는데…”
“죄송할 건 또 뭐야. 어디 가서든 잘할 거야. 잘 지내요.” 컨트랙터는 그 뒤로도 한참 좋은 말들을 건네주었다. 쉽지 않은 이별이다.
“너! 마지막이라며. 이제야 친해졌는데…” 농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불러 맛있는 걸 쥐여주고 예뻐해 주던 언니였다. 당차고 시원한 언니는 히로의 롤 모델이기도 했다. 우리를 있는 힘껏 안아주고는 잘 가라며 몇 번이고 등을 쓸어주었다.
“점심 준비하지 말고, 와요!” 이른 아침부터 준민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농장에 가니, 그 전날 준비해 둔 샌드위치를 주섬주섬 꺼내 건넸다. 제대로 된 요리도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끝까지 받기만 하다 가는 기분이었다.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 잘 먹었습니다 !
히로와 나는 마지막 출근을 했다. 새벽부터 라즈베리 농장으로 향했다. 라즈베리 농장은 좀 더 일찍 일어나 나가야 한다고 했다. 잠에서 덜 깬 채, 퉁퉁 부은 눈에 힘을 힘껏 주고 나갔다. 확실히 익숙하지 않으니, 블루베리보다 어려웠다가 겨우 채워 바스켓을 내려놓으니 전부 그대로 커다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좋은 상태가 아니라며 가져오는 족족 버려졌다. 하루만 하는 일이라 다행이었다.
- 버려지는 아까운 라즈베리를 챙겨가는 워커들
서진은 떠나기 전, 밥을 해주겠다며 히로가 노래를 부르던 불고기를 해 왔다. 전날부터 준비했다며 꺼낸 음식은 비주얼은 물론 맛도 양도 합격이었다. 서진은 자신도 입이 짧으면서 내 끼니를 자주 걱정했다. 내가 잘 먹으면 자기 요리가 인정받는 기분이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전히 같이 가지 못하는 게 어리석게도 계속 계속 아쉽고 아쉬웠다.
작별을 준비했다. 편지를 쓰고 와인을 샀다. 함께 살았던 워커들과, 잠시 머물렀던 셰어 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컨트랙터와 미니멈 아울리 농장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준민, 같은 집에서 지냈던 사람들 그리고 서진에게. 돌아보니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이별을 꼭 겪어야만 하는 게 가장 어렵다. 고맙고 아쉽고 미안하고 아깝고 그런 마음들이 떠나질 않았다.
떠나기 하루 전, 서진의 셰어 하우스 메이트들이 굿바이 파티를 열어주었다. 각자 집에서 요리해 와서 둘러앉아 먹고 마셨다. 무척 그리울 거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큰 정을 나눴다. 나는 정에 취약하다. 좋은 말도 그만해주었으면 좋겠고, 따뜻한 포옹도 이제 그만 나누고 싶었다.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 세컨드 비자 따고 다시 또 볼 거잖아!”
밤이 늦도록 아쉬운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제 진짜 갈 일만 남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일어나 미처 다 싸지 못한 짐을 챙겼다. 내가 나가면, 서진이 이곳으로 이사 들어온다. 깨끗하게 청소해 두고 침대에 잠시 누웠다. 울굴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 같았다. 울굴가. 이름도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마치자마자 뛰어오겠다던 서진은 제시간에 맞춰오지 못할까 봐 불안해했다. 우리는 시드니로 향하는 열차를 예약했다. 밤 열차이지만, 여기서 역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딱 세 대밖에 없었다. 여기서 택시를 잡는 건 무리라 일찍 움직여야 했다.
“왔어! 아직 안 갔지?” 땀에 젖은 채, 옷도 갈아입지 않고 뛰어온 서진이었다.
- 여기서 찍는 거울 셀카도 정말 마지막 !
- 처음 울굴가 와서 먹었던 피자를 마지막 저녁으로 먹었다.
- 매일 다정한 레몬 박스도 안녕 !
우리 집 셰어 하우스 사람들도 도착했고, 버스를 타고 간다는 말에 자신들이 태워줘도 되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함께 살면서, 정 주면 헤어지기 어려울 거 같아, 그렇게나 가까이 지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종종 언젠가 올 헤어짐이 두려워, 문을 닫아버리고는 했는데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들여다봐 주었다. 장 보는 날은 무거울까 봐 차를 태워주고 반찬을 만든 날은 통에 담아 꼭 나눠주었다. 마지막 날은 이들의 덕이 정말 컸다. 덕분에 울굴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가, 서진과 영원하지 않을 작별을 나누고 지는 해도 봤다.
“곧 봐.”
“건강 잘 챙겨.”
쥐락펴락했던 서진의 인생을 놓아줘야 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함께 갈 길이었다. 이후, 호주에서 서진과 나는 두 번 만났다. 서진은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지낸다. 나는 자주 보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미안함에 잠겨 속상해졌다가, 고마워서 그리워지곤 한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모르는 거 하나 없이 지냈고 매일 같이 보지 못하더라도 서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무리하고 무식하게 잘도. 하지만, 그만큼 재미났던 일도 없었다.
엉망으로 쌓아 올렸던 게 스스로 무너졌다.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큰 시련 하나를 넘어야 했다. 분리. 우리만의 세계에서 나와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 즐겁고도 행복하고도 슬픈 시간이었다.
- 마지막으로 함께 간 울굴가 비치
엉망으로 쌓아 올렸던 게 스스로 무너졌다.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큰 시련 하나를 넘어야 했다. 분리. 우리만의 세계에서 나와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 즐겁고도 행복하고도 슬픈 시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 영어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괴롭히던 친구한테 한 번 맞부딪치다, 선생님에게 걸렸다. 선생님은 나를 불러, 자로 손바닥을 몇 대 때렸고 나는 그대로 학원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패기 어린 중2병이 한창일 때였다. 지켜봤던 서진은 숙제 검사를 마치고 가방을 싸며, 자신의 문제집들과 함께 내 문제집, 자습서, 학습지들을 모조리 챙겼다. ‘네 것도 아닌데, 그건 왜 들고 가냐’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아, 참고해서 복습하려고요.’라며 둘러대고 달려왔다.
미술 학원에 앉아, 주체 못 하는 화를 씩씩거리고 있는데, 문이 딸랑 울렸다. 서진이 제대로 닫지도 못한 제 가방을 끙끙 들고서 들어왔다.
“그게 다 뭐야…?”
“어, 너 학원 그만둘 거 같아서.”
그날 눈물까지 흘려가며 깔깔 웃었다. 방금 막, 학원을 끊겠다고 소리치고 있었을 때였는데. 나를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나는 서진이 마치 나의 커다란 빽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가까워질 대로 가까워지고 그게 큰 유세가 된 듯 떵떵거리며 다녔다.
- 어디서나 건강히, 잘 지내자
언젠가 서진이 우리 이야기 같다며 들려준 노래가 생각이 난다. 다비치의 <나의 오랜 연인에게> 연인한테 하는 말인 것처럼 보이는데, 제 귀에는 우정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다던.
‘가끔씩 난 뒤돌아보면 철없이 온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었던 지난날 그때 또 그립겠지만 처음 같은 설렘보다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그런 사이가 행복일 테니까.’
나는 서진처럼, 서진을 생각할 때면, 언젠가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 최은영 <쇼코의 미소>
- 서진의 편지
철없던 시절에 대한 용서를 빌기에는 한없이 많아서, 그것보다 자주 네 행복을 빌어주려 한다. 매년 젊은 작가 수상 집을 읽고는 갖다줬는데, 언젠가 여기서 너를 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나를 힘껏 세워주고 내 꿈을 같이 바라줬지. 네 이야기 하나도 허술하기 짝이 없게 쓰지만, 언젠가 볼 너를 생각하며 적는다. 보고 싶은 서진아. 나는 여전히 너를 이겨내는 중이야. 너는 부디 나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우리가 좋아하는 떡볶이 실컷 먹으며 캐치볼도 하고 힘껏 안아보자. 잘 지내.
<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멋대로 정한 시즌 1이 끝났습니다. 이번 편을 쓰기 전, 이전 글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다듬고 싶어서 연재일을 지키지 못했어요.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처음에 계획했던 이야기의 절반쯤 온 거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 역시 절반 정도 남았습니다. 남은 이야기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연재일은 앞으로 주 3회, 화, 목, 금으로 변경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