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면 절 고소하세요!"

퇴사하는 팀원과 나눈 늦은 밤의 사담

by 지누

그날은 여느 평범한 월요일 저녁이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는 나와 한숨님만 남아있었다. 한숨님이 저녁을 먹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고, 우리는 컵밥을 포장하러 나갔다. 파티션 너머로 서로 숟가락질을 하는 소리가 오고 갔다. 침묵에 익숙해질 무렵, 한숨님의 목소리가 파티션 너머로 들려왔다.

"지누님 계약은 언제 끝나죠?"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잠시 살펴봤다.

"이번 달이 마지막이네요. 시간 참 빨라요."

"계속 다니실 건가요?"

그 말에 나는 푸핫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요. 저도 한숨님처럼 어서 떠나야 하는데."

나는 사무실 벽에 걸린 공용 캘린더를 쳐다봤다. 4월의 마지막 날에는 '한숨 바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한숨님이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대략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누군가는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아쉬워했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 팀 안에서 늘 성실하고 부지런한 모습을 보였던 한숨님이었기에 팀원들은 모두 그의 이직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컵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중 문득 한숨님과 밤에 단둘이 사무실에 남아있던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입사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팀원이었지만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우린 분명 같은 공간에 머물고, 같은 밥을 먹었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내가 한숨님에 대해 아는 건 그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석사까지 마친 우수한 인재라는 사실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도 밥을 먹다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지, 우리는 파티션을 사이에 둔 채 배드민턴을 치는 것처럼 서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대화를 조금 나누다 보니 한숨님 같은 엘리트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도 나처럼 생각이 많아 괴롭고, 그래서 생각을 줄이려고 매일 운동을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어릴 적에 의대를 진학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런 이야기들을 그의 퇴사 직전에 하게 됐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대화도 점차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정답을 향해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잘 선택한 거겠죠…?”

그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다.

"무조건 정답이에요! 무조건 정답이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뒤이어 덧붙였다.

“틀리면 절 고소하세요!”

일어서자 파티션 너머에서 감춰져 있던 그의 얼굴이 보였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그는 피식하고 웃고 있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사무실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말했던 걸까. 내가 기억하는 건 그저 한숨님의 그 고민을 들은 순간 파티션 건너편에 보였던 사람은 한숨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외침은, 한숨님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숨님한테는 미안하지만 이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어쩌면 정답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불안이라는 안대가 우리의 두 눈을 가려도,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욕을 뱉고, 무서우면 두려움에 떨더라도 우린 매일, 한 걸음씩만큼은 내디뎌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 불안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계속 내디뎠던 그 발자국들이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던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래. 나는 아마, 그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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