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와 비밀의 정원

어른이 되는 것에 관하여

by 지누

조조는 맥켄지 선생님이 내주신 그림 그리기 숙제를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는 중이었다. 그림의 주제는 ‘내가 되고 싶은 어른’. 이제 여덟 살을 막 넘긴 조조한테 ‘어른’이라는 단어는 교실 뒤 커다란 지도에 적혀 있는 낯선 나라들의 이름처럼, 어쩐지 중요해 보이지만 아직은 멀고 생소한 말이었다.


조조는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정원을 돌아다녔다. 그는 정원을 돌아다니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무성하게 자란 풀숲은 마치 덩굴식물이 엮어놓은 비밀 통로처럼 보였고, 돌계단은 고대 유물로 향하는 입구 같았다. 벤치는 지친 여행자가 쉬어가는 쉼터였고, 바람이 지나가며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작은 동물들의 속삭임 같기도 했다.


혹시 자신이 갑자기 사라지면 엄마가 걱정할지도 몰랐지만, 조조는 곧 돌아올 거라 믿었다. 무엇보다 쿠키가 오븐에서 다 익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조조는 정원—아니, 울창한 숲 속으로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았다.




조조는 숲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에서 책들로 산처럼 쌓인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표지들과 색이 바랜 종이더미 사이를 지나치자, 수백 년은 되었을 듯한 커다란 참나무 그루터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루터기 위에는 안경을 쓴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부엉이는 조조의 다리만큼이나 두꺼운 책을 펼친 채, 잔뜩 찡그린 얼굴로 글자를 꿰뚫어 보듯 응시하고 있었다.


“여긴 책이 정말 많네요!”

조조가 감탄하며 소리쳤다.


부엉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루터기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는 공부를 방해받아 짜증이 났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한 소리! 이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 그러니까 항상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책을 읽어야 해.”

“그럼 당신은 모르는 게 없겠네요?”

조조가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에 부엉이는 표정이 살짝 풀어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물론이지! 역사, 문학, 수학, 과학, 사회, 도덕, 체육! 뭐든지 물어보렴.”

“저는 좋은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요.”

부엉이는 조조의 질문이 너무 쉽다는 듯 날개를 으쓱였다.

“그거야 쉽지. 좋은 어른이 되려면 모르는 게 없어야 해. 어떤 질문을 받아도 바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좋은 어른이라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으렴.”

“하지만 전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재미를 붙이고 나서는 쉬워졌지. 잠시 기다려보렴! 내가 시작하기 쉬운 책부터 추천해 줄게.”

부엉이는 나무 그루터기 뒤로 잠시 사라졌다가 두꺼운 파란색 책을 한 권을 꺼내와 조조한테 건네줬다. 겉에는 《상대성이론: 특수 및 일반 이론에 대하여라고 적혀 있었다. 조조는 책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글씨가 너무 작고 그림도 하나도 없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더 쉬운 책은 없을까요? 저한테는 너무 어려워요.”

“그런가? 하긴 너무 내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 같네… 잠시만 기다리렴!”

부엉이는 이번에는 오른쪽 책더미로 사라졌다가 얇은 빨간색 책 한 권을 가져왔다. 그가 건넨 책에는 《자본론》이라 적혀 있었다. 처음에 받은 책 보다 훨씬 얇긴 했지만, 여전히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조는 동화책은 없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부엉이는 다시 그루터기로 돌아가, 자신이 하던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조는 부엉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책들 사이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길을 따라가던 중, 이번에는 무언가가 머리 위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노란색 바나나였다. 조조가 고개를 들자, 원숭이 세 마리가 나무 위에서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꼬마야, 그 바나나 좀 위로 던져줄 수 있을까?”

첫 번째 원숭이가 말했다.

조조는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를 주워 있는 힘껏 던졌다. 하지만 바나나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이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원숭이들은 배를 잡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한 마리는 너무 웃은 나머지 균형을 잃고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첫 번째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와 조조한테 다가왔다.

“혹시라도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 놀리려던 건 아니야. 사과의 의미로 이걸 줄게. 한 번 마셔봐.”

원숭이는 종이빨대가 꽂힌 코코넛을 건넸다. 조조가 코를 가까이 대자 달콤한 과일 냄새가 풍겨왔다.

“이건 뭐예요?”

“우리가 만든 특제 주스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멈추지 않지.”

나뭇가지에 누워있던 두 번째 원숭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걸 마시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나요?”

“그럼, 당연하지! 어른이 되는 법은 간단해. 그냥 웃어! 그리고 즐겨! 진지한 건 어른스럽지 않아. 여유가 있어야 해. 그게 핵심이지. 우리처럼 말이야.”

세 번째 원숭이는 꼬리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거꾸로 매달린 채 소리쳤다.

조조는 조심스럽게 코코넛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향과 함께 입 안에 상큼한 과즙이 퍼졌고, 왜인지 볼이 살짝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거라면, 나쁘지 않은데?’

조조가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진 조조는 원숭이들과 어울려 돌아다녔다. 그는 원숭이들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원숭이가 건넨 주스를 먹어서 그런지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고, 세상만사의 모든 고민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조조는 어느새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쉬고 싶다 생각에 잠시 나무에 기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원숭이들은 이미 모두 떠나고 없었다. 조조는 비틀거리며 가던 길을 이어갔다.




발을 헛디딘 조조는 어느 굴 안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굴은 깊지 않았지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충격에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야…!”

조조의 외마디에 근처에서 땅을 파던 두더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왔다.

“뭐야, 누구야? 내가 밖에 ‘공사 중, 조심하시오’라고 세워둔 표지판 못 봤어?”

“죄송해요. 제가 그냥 지나쳤나 봐요.”

두더지는 조조 근처로 와서 킁킁 냄새를 맡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 코코넛 냄새잖아? 대낮부터 그걸 마시고 돌아다니는 거야? 하여간 요즘 애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조조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데 아저씨는 뭐 하시는 거예요?”

“뭐 하긴. 일하지.”

“어른이 되려면, 일을 꼭 해야 하나요?”

두더지는 조조를 한 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걸 왜 묻냐. 당연한 거 아냐? 사회가 돌아가려면 구성원들이 모두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거라고. 일을 안 하면 그건 그냥 사회를 좀먹는 벌레에 불과해!”

조조는 방금 전까지 원숭이들과 놀던 자신을 떠올렸다.

“계속 그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너도 옆에서 삽이라도 하나 들고 어서 일해!”

조조는 바닥에 놓인 화분용 삽을 들고 두더지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땅을 팠다. 처음에는 어설펐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그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저씨는 안 힘드세요?”

“힘들어도 참고 그냥 하는 거지.”

“그러면 아저씨는 언제 쉬어요?”

두더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춰 섰다. 말없이 먼 벽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계속 일해.”

조조는 두더지를 더 도와주고 싶었지만, 팔이 점점 아파왔다. 그는 삽을 바닥에 내려놓고 땅굴 옆에 놓인 사다리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하루 종일 숲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동물들을 만났지만, 조조는 여전히 자신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 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이 되는 건 더 무섭고 어렵고, 복잡한 일처럼 느껴졌다. 조조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모험을 마치고 테라스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그때 조조의 엄마가 갓 구운 쿠키와 차가운 우유를 조조한테 갖다 주며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조용히 조조의 꼭 안아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검은색 세단이 차고 앞에 멈춰 섰다. 조조의 아빠는 조조와 그의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조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 하루에 대해 물어봤다.


조조는 여전히 어른이 된다는 게 어렵게 느껴졌지만, 부모님을 바라보며 적어도 나중에 자신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조조는 쿠키를 한 입 베어 물고는 크레파스를 꺼내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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