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 너머의 별들

시골 중학교 교사가 보낸 작은 이름들, 그들이 향한 가장 먼 여정

by 지누

정민은 성적표를 살펴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맞은편에는 배가 앞으로 볼록 나온, 통통한 남자아이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 상담실 테이블 위에는 구겨진 과자 포장지가 벌써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지호야. 이번에 성적이 더 떨어졌네? 영어는 또 왜 이렇게 낮아? 선생님이 영어만큼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잖아."

"전 먹방BJ 할 거라 영어 공부 안 해도 돼요."

정민은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세 번 되뇌었다.

"너 치킨 몇 마리까지 먹을 수 있는데?"

지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머릿속으로 수를 세기 시작했다.

"두 마리는 먹을 수 있어요."

"먹방BJ 하려면 최소 다섯 마리는 먹어야 할 텐데? 두 마리로는 어림도 없어. 그리고 요즘은 유튜브에 영상도 올리고 유명해지려면 영어도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해."

"그래요? 그럼 저 먹방 BJ 안 할래요."

정민은 목 밖으로 화가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아 내고 아래로 돌려보냈다. 그 대가로 수명이 1년 정도 줄어든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지호가 상담실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른 체격에 피부가 까무잡잡한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정민은 책상 위에 쌓인 과자 쓰레기를 치웠다.

"준석이는 고등학교는 어디로 가고 싶어?"

"전 그냥 아버지 도와서 농사나 지으려고요."

"그럼 고등학교는 안 갈 거야?"

"네, 별 생각 없어요."

정민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전 상담에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간신히 막아냈다면 지금은 할 말을 찾아서 급하게 만들어내야 했다.

"아버지는 아셔?"

"네, 저희 아버지가 자기도 중졸인데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없다고 상관없다 하셨어요."

정민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뒷덜미를 쎄게 잡고 주물렀다.

"이따 선생님이 아버지랑 통화해볼게. 가봐."

정민은 일어서는 준석이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가 없었다. 먹방 BJ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농부가 되겠다는 아이한테 영어 잘하라는 소리가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정민은 상담실 소파에 몸을 완전히 기댄 채,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이 모습을 지나가는 교장 선생님 본다면 한 소리할 게 뻔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정민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들어오세요."

그가 문을 향해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반장을 맡고 있는 현서였다. 전교생이라고는 고작 대여섯 명이 전부인 학교지만, 현서는 그 안에서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였다. 소심한 성격이긴 했지만 태도도 좋았고, 공부에 대한 욕심도 확실히 있었다. 그녀는 종종 수업이 끝나면 정민을 찾아와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정민은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그녀를 붙들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노력했다.

"현서는 어디 고등학교 가고 싶어?"

"저는 그냥 집 근처로 가려고요."

현서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내렸다.

"근처에 있는 학교는 미용고 하나 뿐인데? 현서 정도 머리면 차라리 인문계로 가는 게 어떨까?"

"전 괜찮아요."

정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면 뒤처질까 봐 그러는 거야?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 수 있어. 그래도 현서는 열심히 하니까 가면 분명 잘할 거야. 수도권 대학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고!"

현서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시선을 바닥에 둘 뿐이었다.

"현서 부모님은…"

정민은 순간 아차 싶었다.

상담실 책상 위에는 현서의 생활기록부가 펼쳐져 있었다. 생활기록부 상단에는 보호자 정보와 관련된 항목이 있었다. ‘모(母)’라 새겨진 글자 옆에는 장애 유무 여부를 확인하는 체크 박스가 있었다. 현서의 생활기록부에는 그 체크 박스에 잉크가 채워져 있었다.




모두가 하교한 늦은 밤, 정민은 손전등을 하나 들고 학교 부지를 돌아다녔다. 정민의 집은 학교 뒷편에 위치한 허름한 관사 건물이었다. 월세로 나가는 돈을 아끼자는 생각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덕분에 학교의 야간 경비직을 자연스럽게 맡게 됐다.


야간 순찰을 마친 정민은 학교에서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들려 캔맥주 하나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돌아왔다. 시골 편의점이라 그런지, 안주거리도 군대에서 자주 먹던 저렴한 전자레인지용 치킨이었다.

평소에는 술 같은 건 입에 거의 대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관사로 돌아온 정민은 작은 간이 책상을 펼쳐 두고 그 위에 캔맥주와 반쯤 식어 눅눅해진 치킨을 올려 뒀다. 그리고 옆에 휴대폰으로 유튜브에 들어가 아무 영상이나 틀었다. 영상은 그저 독백을 채우기 위한 배경음악에 가까웠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정민은 자신이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에 그는 오로지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머리를 스포츠컷으로 밀고, 친구들과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매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시험 공부를 하며 동기들과 스터디를 했다. 합격만 시켜준다면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며 하늘에 대고 매일 같이 기도를 올리던 그였다. 그것도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 학교에 부임했을 때의 총명하던 그 눈빛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정민은 눈을 감은 채, 이곳에서 교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로 하여금 배우려는 의지를 심어줘야 했다. 그래서 정민은 노력했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한텐 억지 이유를 붙여가며 설명을 했고, 아이의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부모에게는 전화로 설득을 했다. 하지만 정작 큰 가능성을 지닌 아이가 그 가능성을 스스로 내려놓던 순간, 정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따라 그 사실이 그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남아 있던 맥주를 전부 비워냈다.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에서 '이카루스'라는 단어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정민은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는 영상을 쳐다봤다. 화면 속에서는 나사의 수석 엔지니어가 기대에 가득찬 표정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카루스는 보이저 1, 2호보다도 더 머나먼 우주를 탐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카루스에 인류의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부착시켜 함께 보낼 계획입니다. 이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의 이름은 저희들이 모두 사라진 이후에도 영원히 우주에 남게 될 겁니다."


정민은 영상 하단에 보이는 공식 링크를 클릭했다. 그러자 나사에서 만든 웹사이트가 화면에 나타났다. 웹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전송하기’ 라고 적힌 버튼을 클릭하자 화면에서 폭죽이 터지는 효과와 함께 다운받을 수 있는 탑승권이 나타났다.


JEONG MIN PARK


탑승권에 선명하게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며 정민은 생각했다.

"이거다."




다음날 수업 시간이었다.


“다들 휴대폰 꺼내 보자.”

갑작스런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혼내려는 거 아니야. 너희들이랑 같이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정민은 자신의 컴퓨터와 연결된 교실 화면에 이카루스 프로젝트의 웹사이트를 보여주며 프로젝트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정민이 예상했던 것처럼 아이들의 반응은 그저그랬다. '귀찮게 굳이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정민은 물러설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자기 이름을 영어로 쓸 줄 모르는 애들은 지금 손 들어봐."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그래. 이래야 우리 애들이지."

정민은 한 명씩 옆으로 다가가 아이들의 이름에 해당하는 영어 철자를 알려줬다. 그가 직접 써주지는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이름을 적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적지근했던 처음 분위기와 다르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우주선 탑승권이 나오자 아이들은 신기한 듯 쳐다봤다. 정민은 아이들의 탑승권을 프린터로 출력해 한 장씩 건네줬다. 비록 종이쪼가리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탑승권을 보여 주며 즐거워하는 듯했다.


그때 정민의 눈에 현서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손에 쥔 탑승권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정민은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그녀의 기억에 오래 남아, 언젠가 무성읍의 논밭보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민은 그게 선생님으로서 자신이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정민의 첫 제자들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먹방 BJ를 꿈꾸던 지호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인문계를 다니게 됐다고 한다. 준석의 아버지는 여전히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의 아들이 농고에 진학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현서는 결국 집이랑 가까운 미용고로 진학을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민도 무성중을 떠나 도시로 발령을 갔다.


도시의 학교는 무성중과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나라가 저출산으로 위기라는 소식을 내보냈지만, 정민의 새 학교는 오히려 교사가 부족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도시의 아이들은 무성읍의 아이들에 비하면 아는 것이 많아 수업 진도를 나가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학교보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익숙했던 아이들한테 정민의 수업은 수면보충용에 불과했다. 한 번은 자던 아이의 태도가 좋지 않아 수행평가 점수를 깎았더니, 그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인생 첫 민원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는 결국 아이들을 깨우는 걸 관두기로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도 결국엔 적응했다.


정민은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와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교재를 살펴보고 있었을 텐데 요즘은 그냥 휴대폰에 있는 모바일 게임을 하다가 수업에 들어간다.


게임을 한 판을 끝내고 시계를 봤지만, 아직 1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한 판을 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해 다시 휴대폰을 보던 순간 익숙한 이름으로부터 메세지가 하나 왔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메세지의 주인은 무성중에서 반장을 맡던 현서였다.


- [이거 기억나실까요?]

현서가 사진을 한 장 올리며 물었다.

그건 예전에 정민이 뽑아준 이카루스 탑승권이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겨지지 않도록 코팅까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유튜브 링크가 하나 올라왔다. 정민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링크를 클릭했다. 영상 하단에는 'LIVE'라는 글자가 크게 써져 있었다. 아나운서들은 영어로 탐사선 이카루스가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 [미용고에도 대학반이 있어서 열심히 공부 중이에요. 저 대학에 꼭 가보려고요.]

정민은 속으로 '참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하나씩 눌러 답장을 보냈다.

- [그래, 가고 싶은 곳은 있니?]

잠시 후 숫자 1이 사라짐과 동시에 답장이 돌아왔다.

- [학교는 아직 고민 중이에요. 성적이 나오고 나서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건 있어요. 저도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시험 끝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때 수업종이 울렸다. 어떻게 이 대화를 마무리할지 고민하던 정민은 아주 오래전, 자신이 임용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담임선생님께 전했을 때 돌아왔던 답장을 그대로 썼다.

- [그래. 선생님은 늘 현서를 응원한다.]

현서로부터 파란색 고양이가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이 돌아오며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정민은 휴대폰 화면 너머로 보이는 이카루스를 바라봤다. 이카루스의 데이터베이스 안에는 자신과 무성중 아이들의 이름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나사가 그 이름들을 정말 실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이카루스가 지구로 우주의 사진을 전송해 올 때마다, 정민은 그 사진 속 어딘가에 자신의 첫 제자들이, 그리고 그 시절의 자신이 함께 담겨 있다고 믿을 것이다.


정민은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 교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무실을 나서기 전에 그는 휴대폰에 들어있던 게임은 지워버렸다. 앞으로 점심을 먹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잠자는 아이들을 다시 깨워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그는 교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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