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으로 시작하는 메뉴

by 지누

“주문하시겠어요, 손님?”

사장님의 물음에 진우는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자… 잠시만요!”

진우는 지금 몹시 당황스러웠다.


사건의 시작은 다음과 같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30분이나 떠버린 탓에 진우는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다. 그때 마침 진우의 눈에 들어온 건, 평소에 그가 자주 지나치던 카페였다. 그는 이번 기회에 이곳을 한 번 방문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중학교를 올라가는 진우한테 카페라는 곳은 어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신비로운 세계였다. 지금까지 카페를 가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혼자 방문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을 앞에 두고 잠시 두려움이 몰려왔다. 진우는 스스로 지난번에 엄마와 함께 나눠 마셨던 커피를 주문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문제는 주문을 하려고 계산대 앞에 선 순간 발생했다. 주문을 하려던 찰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진우는 자신이 주문하려던 메뉴의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망했다!’


자신이 주문하기만을 기다리는 남자 사장님의 눈치를 살피며 진우는 서둘러 계산대 위에 놓인 메뉴를 빠르게 훑었다. 하지만 그가 찾는 메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지금 기억이 나는 거라고는 그 메뉴에 모음 ‘ㅇ’으로 시작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메뉴판에는 ‘ㅇ’으로 시작하는 메뉴는 보이지 않았다.


’라떼, 카푸치노, 카페모카, 헤이즐넛, 콘파냐… 아이스티! 이건 커피가 아니잖아!’


뜻을 알 수 없는 요상한 단어들 사이에서 진우는 시험 마감 시간을 1분만 남긴 수험생처럼 다급하게 정답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가 찾는 메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 가게에는 팔지 않는 메뉴였나?’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뒤에서 주문을 하려는 손님이 있다면 양보라도 했을 텐데, 지금 이 가게에는 오로지 진우와 남자 사장님 두 명뿐이었다. 그가 주문을 망설일수록 둘 사이의 어색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득히 멀어져만 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채 진우는 두 눈에 힘을 줬다.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엄마와 함께 마셨던 커피를 다시 떠올렸다. 전혀 달지 않고, 적당히 씁쓸하면서, ‘ㅇ’으로 시작하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커피였다. 나라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 진우는 메뉴판 구석에 위치한 메뉴를 발견했다.

‘저거다!’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진우가 말했다.

“에스프레소요?”

사장님은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네, 에스프레소요!”

진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알겠습니다. 3천 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진우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을 꺼내 건네줬다.

“음료 나오면 불러드릴게요.”


진우는 가게 밖이 잘 보이는 창가자리에 자리를 잡고,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친구들과의 약속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진우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시 창밖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가는 걸 이렇게 보고 있으니 마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 나왔습니다.”

진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픽업대 앞으로 걸어갔다.

“맛있게 드세요.”

사장님이 커피가 올려진 쟁반을 진우 앞으로 살짝 밀어줬다. 그 위에는 소주잔만 한 크기의 머그컵이 한 잔 놓여 있었다.


자리로 돌아온 진우는 쟁반 위에 놓인 작은 머그컵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머그컵 안에는 갈색 커피원액이 담겨 있었다. 진우는 한 모금만으로 바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이 메뉴의 가격이 어째서 3천 원으로 책정이 됐는지가 궁금했다. 메뉴의 가격을 책정하는 커피 위원회라도 있다면 항의 전화를 하고 싶었다. 혹시 자신이 어리다고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진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운터를 바라봤지만, 사장님은 휴대폰을 하느라 바빠 보였다.


진우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그잔을 들어 향을 맡았다. 고소한 커피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혹시라도 한 번에 다 마셔버리는 일이 없도록 그는 조심스럽게 잔을 기울였다. 아스팔트 바닥을 핥는 것과도 같은 쓴맛이 혀끝을 타고 올라왔다.


“사장님, 혹시 뜨거운 물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진우가 계산대로 돌아가 물었다.


진우는 뜨거운 물이 담긴 컵에 남은 에스프레소를 부어버리고 천천히 섞었다. 이제야 좀 마실 만했다. 그나저나 엄마와 함께 마셨던 그 커피의 이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진우는 집에 돌아가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에스프레소가 골고루 섞인 뜨거운 물을 한 모금했다.

작가의 이전글논밭 너머의 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