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우린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카일루가 소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을 해변에서 만났던 건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낚시를 하러 바닷가로 나왔다가 작은 돛단배 하나가 해안가에 있는 걸 발견했다. 배 옆에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앉아있었다. 남자아이는 카일루와 눈을 마주치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소년의 이름은 ‘노아’였다. 그는 배를 타고, 홀로 바다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카일루는 섬 밖을 나가본 적은 없지만, 가끔씩 섬 주변을 지나치는 대륙인들의 커다란 배를 본 적은 있었다.
‘그런 배들마저 안전하지 않은 게 이 바다라는 걸 이 소년은 모르는 건가?’
작은 파도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좌초될 것 같은 작은 배를 가지고, 이 드넓은 망망대해를 홀로 여행한다는 건 카일루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카일루는 노아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갔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방문한 새로운 손님을 신비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카일루는 사람들의 관심이 더 몰리기 전에 서둘러 노아를 마을 안쪽에 위치한 촌장의 천막으로 데리고 갔다.
“그래서 이 섬에는 언제까지 머무를 계획이지?”
부스스한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온 촌장이 물었다.
“바람이 불면 떠나겠습니다.”
노아가 대답했다. 카일루는 흐릿하게만 보이던 촌장의 눈빛이 잠시 번뜩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자네와 같은 말을 하는 자들을 몇 명 만난 적 있지. 어떤 이는 바로 다음날 이 섬을 떠났고, 다른 어떤 이는 이 섬에 남아 가정을 꾸리고 생을 마감했네. 자네는 어느 쪽이 될지가 궁금하군.”
노아는 카일루의 집에 머무르게 됐다. 카일루의 집은 해안가 방향으로 모여있는 천막 중에 하나였다. 큰 천막은 아니지만, 남자아이 둘이 지내기에는 부족함은 없었다. 카일루는 노아가 누울 수 있도록 바닥에 천을 깔아줬다. 둘은 각자의 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까 촌장님한테 했던 말이 뭐야?”
카일루가 물었다.
“어떤 말?”
“바람에 관한 것 말이야. 바람이 불면 떠나겠다고 했잖아?”
노아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내가 말한 건 마음에서 부는 바람이야.”
“마음에서 부는 바람? 그게 뭔데?”
“누군가는 부름 혹은 울림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걸 계시라고도 불러. 나는 그런 어려운 표현보다는 바람이라 부르는 게 좋더라. 바람은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시기에 도달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어와. 그게 내가 이 여행을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존재하지도 않는 바람 따위에 휘둘려서 바다로 나왔다고?”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무시하려 하면 할수록 바람은 더 강하게 불어오더라고.”
“그럼 그 바람은 언제 부는 거야?”
“그건 나도 몰라. 촌장님 말처럼 내일일 수도 있고, 평생 불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해.”
카일루는 노아가 하는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애당초 돛단배 하나로 바다를 여행하고 있다는 녀석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카일루는 노아가 말한 바람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그런 바람이 불고 있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그도 언젠가 이 섬을 떠나야 한다는 걸까? 그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부터 카일루는 노아를 데리고 섬을 돌아다녔다. 길을 가다가 마을 주민을 마주치면 카일루는 인사를 주고받고, 노아를 소개해줬다. 노아의 낯선 모습을 보고 경계를 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두 소년이 함께 섬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노아가 섬에 온 지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카일루는 그를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카일루는 노아에게 숲에서 먹을 수 있는 열매와 식물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고, 마주치면 피해야 하는 동물들에 대해 가르쳐줬다. 바다에서는 물고기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잡는 법을 알려주면서, 가시를 쉽게 발라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줬다. 노아는 카일루가 가르쳐주는 것들을 모두 귀 기울여 들었고, 금방 이 섬의 삶에 적응해 갔다.
밤에 둘은 반대의 입장이 됐다. 노아는 매일 잠들기 전, 카일루한테 자신이 여행하며 방문했던 섬들과 그곳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카일루는 노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 거짓말하지 말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잠들기 전에는 늘 노아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바다 너머의 세상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밤들이 지났고, 두 소년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갔다.
마을 촌장이 카일루와 노아를 다시 부른 건, 카일루가 열여섯이 되기 바로 전날이었다. 다시 만난 촌장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더 깊어졌고, 수염은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섬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촌장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카일루의 도움 덕분에 잘 적응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자네 마음속의 바람은 어떤가? 지금 다시 불고 있나?”
노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어떤 말을 건네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촌장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일루를 향해 말했다.
“카일루. 너는 올해로 열여섯이 됐네. 그 말인즉슨, 이제 어른이 될 시기가 왔다는 거지.”
촌장은 천막 바깥에 보이는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카일루는 바다에서 온 소년과 함께 산 정상에 있는 하얀 꽃을 꺾어 와야 한다. 그게 너의 시험이다.”
다음날 이른 새벽. 카일루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노아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을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위로 올라갈수록 둘은 네 발로 기어가 듯이 등반을 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바위 표면에 맺힌 물방울들 때문에 등반은 더욱 힘들어졌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게 분명했다. 카일루는 무서웠다. 하지만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노아를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노아는 그런 카일루를 보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의 뒤를 따랐다.
“찾았다!”
카일루가 자신 앞에 핀 꽃 한 송이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꽃은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 있었다. 꽃을 꺾기 위해서 카일루는 뛰어야만 했다. 하지만 잘못 뛰기라도 하면 그는 그대로 산 아래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 망설임의 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카일루의 마음을 점점 더 많이 잠식해 갔다. 비바람은 점점 더 거세져만 갔고, 카일루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카일루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카일루는 깨달았다. 이게 노아가 그동안 말했던 바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바람은 카일루한테 지금 뛰라고 말하고 있었다.
카일루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있는 힘껏 꽃을 향해 뛰어올랐다. 꽃은 그의 손에 닿았다. 시험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가 땅에 착지한 순간 비에 젖은 바위 표면에 균형을 잃고 산아래를 향해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멈춰 세우고 싶었지만, 모든 건 너무 빠르게 일어났다. 그렇게 그의 몸이 허공을 향해 떨어지려던 순간, 무언가가 그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노아였다. 그는 카일루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대로 아래로 뛰어들어 그의 팔을 잡은 것이었다.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야!”
노아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의 말에 카일루는 그저 힘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불었어.”
카일루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하얀 꽃이 들어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길을 가운데에 놓고 양옆으로 줄지어 서있었다. 두 소년은 길의 끝에 서있는 촌장에게 다가가 하얀 꽃 한 송이를 건넸다. 촌장은 꽃을 하늘 높이 추켜올렸다. 그것은 카일루가 시험을 통과했고, 이제 마을의 어른이라는 것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두 소년한테 달려들어 그들을 부둥켜안은 채, 전통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두 소년은 서로를 쳐다보며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카일루가 눈을 뜬 건, 이른 새벽이었다. 천막은 평소와 다르게 적적했다. 그는 옆을 봤지만, 노아는 자리에 없었다. 카일루는 노아를 찾아 바깥으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해안가에 홀로 앉아 아침해가 떠오르는 걸 보고 있는 노아를 발견했다. 노아도 그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노아가 말했다.
“새벽부터 뭐 하는 거야? 어서 마을로 돌아가자.”
노아는 그 말에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떠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노아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키알루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그는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이어야 할까.
“어디로 갈 건데?”
“나도 잘 모르겠어. 바다로 나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 섬에 도달했던 것처럼 또 어딘가에 도달하겠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바다로 나가는 건 위험해.”
카일루가 소리쳤다. 그 말에 노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람은 꽤 오래전부터 불고 있었어. 하지만 어째서인진 다시 바다로 나가기가 싫더라고. 나도 모르게 겁이 났던 것 같아. 바다로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면 어떡하지? 다음에 도착한 섬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들이 나도 모르게 쌓이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산에서 네가 그 꽃을 꺾기 위해 뛰어오르던 순간 깨달았어. 태풍이 무서워서. 다음 섬에서 마주할 위험이 두려워서. 그런 것들 때문에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앞으로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겠구나…”
노아가 카일루의 두 눈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나도 카일루처럼 용감해져야겠구나!”
카일루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노아가 떠나는 걸 막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다. 하지만 그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산 정상에 도달한 순간, 그는 자신 안에 불어온 바람을 잊지 못했다. 만약에 그 바람의 말을 듣지 않고 뛰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갔을 게 분명했다. 그 바람을 자신도 알게 된 이상 노아를 보내주는 게 맞았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카일루가 물었다.
“당연하지.”
“만약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럼 그때는 그냥 내가 찾아와야지.”
둘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노아의 작은 돛단배는 다시 바다 위로 올랐다. 산 정상에서부터 내려온 바람이 울창한 숲을 지나 등 뒤로부터 불어왔다. 노아가 돛을 펼치자 바람을 가득 머금은 돛단배가 힘차게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점점 작아지는 노아를 바라보며 카일루는 바다를 향해 손을 펼쳐봤다.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지나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카일루는 문득 바다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는 노아가 말하는 것들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마음에는 바람이 불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 안에서부터 그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면 카일루는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