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레트랑제
1
"사장님 원두가 별로 없네요."
안나가 몇몇 비어있는 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백사장이 옆으로 다가와 병들을 살펴봤다.
"정말이네요. 잠시 나갔다 와야겠어요."
"그럼 가게는요?"
"안나 씨가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혼자서 커피 만들어본 적이 없는데..."
커피를 만드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그게 마법이 걸린 원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두마다 추출 방법이 조금씩 달랐고 손님의 상태에 따라 사용되는 양도 달랐다.
"지난에 잘하셨잖아요? 걱정 마세요.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올게요."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안나의 모습을 본 백사장은 카운터에서 식빵을 굽고 있는 삼색이한테 다가갔다. 그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빨간색 목걸이를 하나 꺼내 삼색이한테 채워줬다.
"나 없는 동안 안나 씨를 잘 도와줘."
삼색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백사장은 문을 향했다. 그가 문을 열자 망토를 둘러쓴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야시장이 나타났다. 백사장이 거리로 나가자 카페 문은 저절로 닫혔다.
"정말 가버렸어."
망연자실해하는 안나를 향해 삼색이가 다가왔다.
"삼색아... 누나가 잘 할 수 있겠지?"
"응!"
삼색이의 목소리를 들은 안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뭐야! 왜 말할 수 있어?"
"이 목걸이를 끼면 말할 수 있어."
안나는 삼색이를 껴안고는 털에 얼굴을 박은 채 배방구를 했다.
"말하는 고양이라니 최고잖아! 사장님 평생 돌아오지 마세요!"
"누나 나 더워…"
삼색이는 안나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2
오늘날 동식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놀이터 미친 아저씨'로 불리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인근 마트에서 소주 한 병을 사와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해가 저물 때까지 그곳을 지켰다.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 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를 들어가 매일 정치 뉴스를 보며 허공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개X끼들! 다 감방에 처넣어!"
동식의 매일 다양한 주제로 세상에 향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가끔씩 동네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지만 체포될 정도의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라 대부분 경고로 끝이 났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고 있어."
경찰차가 사라진 걸 확인한 다음 동식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해가 저물고 퇴근할 시간이 되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쯤이면 그의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변해있고 비틀거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돌아가는 길에도 그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동네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퇴근을 알렸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오르다 걷다가 숨이 차면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곤 했다.
"가만 있어보자 오늘이..."
동식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떠올리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오늘은 그의 생일이었다. 혹시라도 딸한테 문자 한 통이라도 오지 않았을까 싶어 휴대폰을 확인해보지만 들어온 연락은 없었다.
"기대한 내가 X신이지."
동식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형제 중에 머리가 가장 좋아 수도권 대학을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대기업에 취직해 부장 자리까지 올라갈 정도의 능력도 있었다. 동식은 자신의 인생을 주식 차트에 비유하며 자신의 인생이 상장 이래로 단 한 번도 가격이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불패주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흥에 너무 취한 나머지 터지지 않는 버블은 없다는 간단한 시장 법칙마저 까먹은 채 말이다.
동식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내리막길로 향하게 된 건 그가 정리해고 대상에 오르면서부터였다. 동식은 아내에게 그저 경제 나빠진 탓이라고 말했지만 그 이면에는 동식의 지속적인 직장 괴롭힘과 성희롱을 버티지 못한 부하 직원들의 신고가 컸다. 퇴직금 쏠쏠하게 들어왔지만 호기롭게 투자를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금방 날려버렸다. 그는 이번에는 대통령을 탓하며 아내에게 둘러댔다. 점점 집에서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고 그를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 아내는 아직 청소년인 딸과 함께 집을 나가버렸다.
"아 목말라..."
동식이 자리를 일어나 주변을 살펴봤다. 불이 켜진 카페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