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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Jun 25. 2023

불륜이 낳은 결말

바람, 바람, 바람(下)

하교 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집 내부를 잠식한 무거운 공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아 생각하길 한참 되었을까. 저 멀리 왁자지껄 무리를 형성해 몰려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전의 나였다면 저 무리의 선봉에서 이리저리 친구들을 이끌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런 노릇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고민, 고민, 고민만 할 뿐.


가족의 울타리만큼은 견고하다 믿었기에 아무리 못난 아비였어도 제 자리를 지키는 양심의 가책, 그 최소한의 도리만으로 족했다. 제 멋대로 내뱉는 날카로운 언어들로 깊은 상처를 준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형성한 가정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깰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라 충격적이지만.


남자가 언제부터 변했는지는 모른다. 아니, 애초에 변한 것인지, 애써 모른척했던 건지 알 수 없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남잔 늘 엄했고, 히스테릭했으며 때로는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폭주해 상처 주기 일쑤였으니까.


눈치 보며 살다 보니 그 나이대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나 보다. 살얼음 걷는 듯했던 집 분위기를 들키고 싶지 않아 그 어린 나이에도 구김살 없는 밝은 아이를 연기했더랬다. 덕분에 주변 친구들은 선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때 그 친구들의 순수한 감정으로 공허함을 채웠던 것 같다. 물론 실제의 모습과 괴리감이 커 허탈하기는 했으나, 가족 내 균열이 겉으로 드러나 무시할 수 없을 지경이 되니 오히려 그 정도의 힘듦은 양반이었다.


그 해 너무 습했던 여름도 거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환하다 못해 피부를 뚫어버릴 듯 따갑기까지 했던 햇살은 시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간 맹렬히 소리를 내던 매미도 어느새부턴가 우는 빈도가 점차 줄어 주변에서 들을 수 없었다. 덕분에 저기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은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더 활기를 띌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나만 빼면. 더 이상 저 무리에 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에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만 뺀다면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정말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없는 것인지. 세기의 사랑인 것처럼 떠들던 남자와 새빨간 립스틱이 불쾌했던 여자, 그 둘의 관계도 종국엔 파멸이었다. 남의 불행을 대가로 쟁취해 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감히 기대했다면 오만이다. 인간의 사유하는 능력은 짐승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인데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생각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짐승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짐승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이야기에는 짐승만도 못한 못된 악당에게 제대로 복수하여 정의구현 하는 영웅이나 히어로의 한 방은 없다. 그나마 통쾌한 것이라고 한다면 남편의 배반에 상처받은 가련한 여자를 위해  주변 지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랄까. 게 중에는 같은 아픔을 겪은 이도 있었고, 정말 위하는 마음 하나로 함께한 이도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의 여자는 주제넘은 짓을 했다는 이유로 모진 질타를 받았으며, 불륜녀라는 불명예를 선고받아 쫓겨나듯 그 지역을 떠났다. 그렇게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데, 남의 눈물에 피눈물 나게 한 대가 치고는 터무니없이 가벼운 벌이었다고 늘 생각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결말 하나. 그녀의 유일한 실수라고 불릴 수 있는 결말이 하나 남아있기에 이 이야기의 끝은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바로 그녀가 남자를 용서해 주었다는 것. 거짓된 가면 위로 꾸며낸 반성. 물론 그녀가 그 함정에 속아 넘어간 것은 아니다. 당장 갈라서기엔 그녀의 경제적인 위치와 여건은 한참 부족했고, 그 무엇보다도 편부모 가정이 되었을 때 본인의 자식들이 받을 수 있는 편견과 상처가 가장 큰 이유였다.


은연중에 부모님의 이혼을 우려했던 나의 경솔함이 문제였을까? 이미 금이 간 자리를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맹목적인 희생이 필수적임을 간과한 것이 잘못이었을지도. 어린아이의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은 제 아무리 감추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법. 고로 제 자식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엄마가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당시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 긴 시간 모진 수모를 겪으면서도 끝끝내 남자와 갈라서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나이를 먹고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 심정을 이해했을 때는 그녀의 선택이 나로부터 기인했다는 사실에 원망이라는 감정은 갈피를 잃어 스스로에 대한 책망으로 변했다.


그때 불안해하는 낯빛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마트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평생 몰랐더라면. 아니, 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나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러나 이 모든 후회는 무엇도 되돌려버릴 수 없게 된 한참 나중의 일.






곧 여름이 떠나고 가을이 왔다. 가을은 금세 지나 겨울을 맞이했고, 또다시 봄이, 여름이. 새로운 계절들을 마주하길 몇 번. 우리 가족은 감정적으로 서서히 와해되었다. 한참을 방치되었던 감정의 골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사이 여러 굴곡을 겪으며 너덜너덜해진 마음만 남은 나는 어른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독립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그녀는 계속 남자의 아내 역할을 유지했다. 아니 자처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그녀였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녀였기에 그녀를 매개체로 남자와 우리는 간신히 가족이라는 이름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했다.


녹음이 짙게 무르익는 여름의 계절. 바닷가를 고속도로 위를 한 대의 자동차가 시원하게 내달렸다. 어릴 적 머물렀던 [동해]로 오랜만에 향하는 길이었다. 그날은 친척 언니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었고,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이 오랜만에 재회한 날이기도 했다.


해수면에 비친 햇빛이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광경이 눈에 비쳤다. 겉보기에 무척이나 아름다워 그 사이를 가로막은 차창을 단숨에 열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이 문 너머 습하고 끈적이는 열기에 곧 잡아먹힐 것 같아, 새끼손가락만 간신히 들어갈 틈 정도만 소심하게 만들었다.


자동차 내부를 잠식한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 열기가 서린 바닷바람이 부딪혀 만들어진 따뜻한 기운이 이마 끝에 닿았다. 또 조금은 축축하기도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겁게 감도는 이 침묵도, 습한 바람도... 모두 애써 잊기 위해 노력한 그 해 여름을 떠올리게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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