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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Sep 28. 2023

피로 이어진 절친

보름달(上)

나에게는 1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우리는 지독히도 싸운다는 연년생 자매였다. 연년생이라는 말을 대표하듯 키도, 몸집도 거의 비슷했던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자랐다.


웃겼던 건 감정에 복받쳐 그렇게 서로를 물고 뜯다가도 한 번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까르르 장난쳤다. 사춘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우리는 밀고 당기는 자석처럼 서로에게 찰싹 달라붙어 지냈다. 그 아이는 내 인생의 절반 그러니까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가장 친한 베프였다. 피로 이어져 헤어질 걱정이 전혀 없는 안전한 절친 말이다.


보름달. 나는 동생을 보름달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그 이유는 얼굴이 참 둥그렇고 복스러웠기 때문이다. 가끔 밝게 눈웃음을 지어줄 때면 거짓 한 톨도 보태지 않고, 정말 저 하늘에 있는 보름달을 가려버릴 정도로 그 아이가 뿜어내는 기운은 밝고 사랑스러웠다.


가끔은 어린 마음에 질투를 하기도 했고, 못된 심보가 들어 찡그러져 우는 얼굴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심하게 장난을 치고 놀려 결국에는 울게 했더랬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 내 눈에도 눈물이 저절로 차올랐고 저 아이와 나는 필시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로 이어져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 아이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리고 정말로 그 아이가 즐거워할 때면 덩달아 세상이 즐거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 자매가 이토록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사람의 덕이 컸다. 바로 아빠. 그를 공통된 적으로 삼은 우리는 서로의 전우가 되어 주었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치열하게 사춘기 시절을 지내왔기에 가족애라는 단어로는 표현 못할 어떤 사랑의 감정이 늘 동반되었던 것 같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아닌 그 이외의 변수들이 빼곡히 존재하는 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구이다. 충분한 햇빛을 쬐주고 물을 넘치게 주어도 내 노력이 아닌 제3의 원인들로 꽃이 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이를 단단히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도 예상치 못하게 쉽게 끊어졌다.


아니, 서로의 손으로 끊어냈다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을 지도 모른다. 포근한 햇빛에 짙은 녹음이 빨갛게 무르익던 그 시간,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서로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냈으니까.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그 아이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은 의외로 덤덤했다. 우리의 연이 끊어졌다는 것을 실감 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어른이 되고 떨어져 있는 기간 동안 서로에게 무뎌진 걸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달라지는 만큼 너도 달라졌겠지. 또 서로를 알지 못하는 시간들이 많아질수록 서로가 낯설어졌겠지.


정답이 없는 답을 찾으며, 가라앉은 마음으로 빠르게 지나는 기차 창밖을 응시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시골 풍경은 평화로우리만치 아름답다. 한 순간에 식어버린 담담한 심장도 평온하게 뛴다. 그런데 왜 가끔씩 반사되는 창 속의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을까? 내 마음 하나 전혀 갈피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운 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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