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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Oct 14. 2023

너네 엄마 너 버리고 갔어

들꽃(上)

왜인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 나는 정문을 두고 굳이 널따란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교를 했다. 학교 뒤 돌담에는 자그마한 문 하나가 있었는데 그 너머로 길게 난 샛길은 정문을 통과한다면 바로 보였을 도로까지 연결되어 길게 뻗어있었다. 그 길 사이사이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촘촘히 자기들끼리 모여 있어 참 예뻤더랬다.


샛길을 따라 무리 지어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떤 친구는 개나리를 꺾어 귀에 꽂았고, 또 누구는 강아지풀에 코를 갖다 대 킁킁대다가 재채기를 했다. 모두들 흔히 알 법한 꽃들 곁에는 늘 아이들이 저들끼리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쳤다.


하지만 나의 눈길을 빼앗아간 건 화려하게 예쁘거나 특별하지 않은 들꽃이었다. 제대로 불리는 이름 하나 없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지키는 들꽃말이다. 소박함 속에 느껴지던 그 강인함에 홀려 넋 놓고 바라볼 때면, 목청 높여 빨리 오라는 친구의 부름을 놓치기도 다. 들꽃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엄마가 떠올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인지 말도 못 하는 이 생명들에게 한없는 친근함을 느끼곤 했다.


우리 엄마는 내 친구 엄마들처럼 어딘가 빼어나게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서글서글한 인상은 모두가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 선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좋았다.


하교 길 친구들이 예뻐하는 개나리처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 은은한 존재. 나에게는 그녀가 그 어떤 꽃보다도 특별한 꽃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맷집"이 센 여자라 우스갯소리로 종종 평하곤 했다.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배우자의 난폭함을 굳세게 견뎌온 그녀이기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몰래 훔쳐본 엄마의 눈물을 마주한 후로는 가벼이 내뱉는 그녀의 말에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그저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두 아이의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감히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내면을 엿본 그날부터였나. 진창 같은 현실을 벗어나 저 멀리로 달아나면서도 괜히 뒤를 돌아보게 된 것이. 엄마는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이유였다. 동시에 애써 무시하려 했던 연민을 끝없이 자극하는, 떠나려는  순간마다 발목을 붙잡는 존재이기도 했다.


난 들꽃 같은 엄마를 사랑했지만, 장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것처럼 그녀 역시 가끔은 이기적으로 굴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참고 참는 것을 선택했고, 나와 동생은 그 결정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는 순간이 올 때면 바보같이 굳건히 자리를 지킨 채 그저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워지는 상반된 모순에 휩싸였다.


당신은 왜 나를 위해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한 건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모진 말들과 손찌검들을 참은 건지. 그의 말처럼 차라리 나를 버리고 갔던 거라면, 그저 당신만을 위해 떠났더라면 나 역시 가족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홀가분하게 잊고 살았을 텐데.

.

.

.

정말?

그날 그녀가 날 버렸더라면...

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했을까?






방과 후 수업이 없던 어느 날, 하교 후 집에 돌아와 보니 당연히 있어야 할 엄마와 여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소리 높여 엄마를 불러보았지만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어린 마음에 겁이 났던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거실로 나와 온갖 방문을 열어보며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지금껏 하교 후에 엄마가 나를 반겨주지 않는 집이란 맞이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늘 같은 자리에서 반듯한 웃음을 달고 집에 돌아온 나를 기다려줬다. 외출을 해야 할 때에는 반드시 메모지를 남기거나 내가 도착하기 이전에 먼저 집에 와있었는데...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던 찰나 어디선가 '쿵'하는 매서운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아빠였다. 그는 매우 화나 보였다.


"아빠 엄마가 없어요.."


흘러넘치는 불안감을 간신히 다스리던 나는 바짓가랑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아빠에게 다가갔다. 그는 무언갈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를 향한 그의 첫마디는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움 그 이상의 것이었다.


"너네 엄마 너 버리고 갔어"


세상에 있는 모든 욕을 나열하는 듯 구시렁대는 못난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누군가 머리를 쾅하고 치는듯한 충격에 휩싸여 온몸이 굳었다. 이윽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애써 참았던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럴 수 없다.

나를 두고 엄마가 어디론가 떠났을 리가 없다.


미친 듯이 안 방으로 뛰어가 마치 엄마의 성정을 보여주듯 깨끗하고 가지런히 놓여있는 목재 테이블 위 집전화기를 들어 엄마에게 전화했다. 기분 나쁜 연결음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 짧은 찰나동안 말도 안 되는 오만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피 말리는 순간이었다.


머지않아 누군가의 지친듯한 목소리가 저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왔다. 엄마다.


"엄마? 엄마! 으흑"


"버려졌다"라는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아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음에도 울기만 했다.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입 밖으로 원망의 말을 쏟아버리면 그녀가 영영 떠날 것 같아서, 당신이 나에게 미안해할 것 같아서, 끝내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으니 답답했던지 보다 못한 아빠는 전화를 대신 건네받아 상스러운 욕을 한 아름 토해내며 그녀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선 나를 흘깃 보더니 "애를 버리고 가면 되냐! 그러고도 네가 엄마야?"라는 말로 그녀에게는 죄책감을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냈다.


흔히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의 일들이 아득해져 미화된다고 한다. 나 역시 이제는 어린 시절의 일들이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 나이가 되었지만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갔다는 그의 말 한마디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비열했던 당신의 헛웃음도, 마치 질식할 듯 거칠었던 나의 호흡마저도.


그렇게 때로는 그 누구도 아닌 가족의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영영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초등학생이 되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할머니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옆에서 보살필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 집은 큰집이었기에 늙어 쇠약해진 친할머니는 맏이인 아들의 몫이 되어 짐짝처럼 떠맡겨졌다. 병환에 고통스러워하던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아니, 독재자처럼 집안을 들쑤셔놓는 당신의 아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 우리 집으로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본인의 집에 다시 되돌아가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불똥이 엄마에게로 튀었다. 그녀는 어느새 외가에서 시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않은 천하의 나쁜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제삼자의 시간과 삶을 빌려 대리 효도해 놓고서는 정작 자식이었던 아빠와 고모들은 엄마를 대신 단두대에 올려놓음으로써  본인들의 잘못을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구질구질한 집안인지 참으로 우스웠다.


그리고 그 해, 이 무슨 신의 장난인지 외할머니가 쓰러지셨다. 함께 살던 외삼촌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사람이었던지라 막노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 대신 이모들이 수시로 할머니 집을 들락거리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그날은 엄마가 할머니를 살필 차례였다. 아빠는 그것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며느리 된 도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본인의 가족만 챙긴다는 말도 안 되는 불평불만을 하루종일 늘어놓았다. 친할머니가 큰 아들의 집을 떠난 이유가 비록 아빠 본인 때문이었어도.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오던 중, 꽁해있던 그의 기분에서 비롯된 사소한 의견차이가 말싸움으로 번졌다. 뒷 자석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이 앉아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겁에 질린 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둘 다 썩 꺼져버리라는 말과 함께 위험한 도로 중간에 차를 멈춰 세워 엄마와 동생을 내리게 했다.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던 아빠는 엄마의 머리를 잡아 뜯으며 차문을 열어 밖으로 패대기쳤다고 한다.


집에 오면 죽일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제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씩씩거리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 엄마는 어린 딸을 업고 달려왔던 길을 거슬러 오랜 시간을 걸었다. 다행히도 선선한 가을이었고,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에 친한 친구 집이 있었기에 괜찮았다고 시리도록 아픈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 아는 사람이 있었길 망정이지 만약에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어디로 향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아빠는 혼자서 머리를 식히러 갔다가 다시 엄마를 찾으러 돌아다닌 듯했다. 전화도 안 받으니 끝내 집에 돌아왔고,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내가 못 박힌 듯 서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집에서 자신을 찾는 딸이 눈에 아른거려 결국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못 이긴 척 자신을 버린 남자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안고 우는 그녀를 보며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빠의 마디는 어린 나에게 큰 좌절감을 주었다. 그날 이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버려져 혼자 남겨지는 듯한 꿈이 매일 밤 나를 괴롭혔고, 성인이 된 지금 역시도 악몽처럼 뒤따라 다녔다.


덕분에 스무몇 해를 훌쩍 넘어 곧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어른이라고는 불리기 어려운 아주 나약한 작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어른 아이. 그때에 머물러 있는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아빠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기 전까지도 엄마가 너를 두고 떠났던 일을 기억하냐고 늘 확인하듯 물었다.


잊지 말라는 듯이 굳이 언급하던 그는 엄마에겐 끝없는 죄책감을, 나에겐 비참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미안해하며 눈시울을 몰래 붉히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나 스스로의 상처는 뒷전으로 무시한 채 늘 기억 안나는 척 연기했지만 그럴수록 곪는 건 내 마음이었다. 스스로를 속이고 속이다 보니 지친 건지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로 엄마가 괜스레 미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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