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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Oct 15. 2023

아빠를 버리고 떠나자고 했다

들꽃(中)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은 대부분 아빠에게 맞거나, 욕을 먹는 모습이다. 당신과 나 사이의 좋은 추억을 샅샅이 훑어봤지만 슬프게도 가장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일들은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심장이 먹먹해서 도대체 무슨 말로 시작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최우선이었던 당신의 애정과 헌신을 사랑하고 동정하지만 누군가 다음 생에 당신의 딸로 태어나겠냐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다음 생에서 당신은 몸 마음을 괴롭히는 남자와 한없는 희생을 갖다 바쳐야 하는 여자 아이에게서 벗어나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령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내 손으로 이 질기고 슬픈 연을 끊어내야 하겠지.


어느새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한 자리를 차지해 행복한 기억을 뒤덮어 간다. 우리는 서로의 방어막이 되어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 보면 나는 영웅을 해치는 악당 앞에 서서 그녀와 함께 맷집을 키워왔을지도 모른다.






15살이 되던 해 12월, 내리는 눈으로 온 세상이 새하얗게 뒤덮였다. 차가운 기운이 도시 곳곳을 휩쓸때 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키는 이 하나 없는 쓸쓸한 죽음이었다. 조용했던 그녀의 죽음과 달리 장례식은 수선스러웠다. 아둔한 자식들이 네 탓 내탓을 하며 서로를 물고 뜯는 소란을 피웠기 때문이다. 조문객 중 몇몇은 그들 사이를 중재하려 했고, 또 누군가는 혀를 쯧쯧 차며 언짢음을 표했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애도하는 이는 없어 보였다. 간혹가다 눈물 짓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 마저도 치고 박고 싸우는 어수선함에 묻혔다. 이 얼마나 고독한 마지막 길인가. 안 그래도 엄마를 못 살게 굴었던 아빠의 형제들이 싫었지만 여기서까지 난리를 피우는 그들에게 화가 나다 못해 팔팔 들끓었다.


하지만 나 역시 한 순간의 분노에 눈이 멀어 저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표정을 갈무리했다. 이렇게 슬픈 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할머니를 욕보일 수 없다. 가족이라 부르기에는 한없이 부끄러운 그들이지만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아빠에게 다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이제 그만하시라 했다.


퍽이나 서로에게 감정이 상했는지 고모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의 끄트머리를 엄마에게로 던졌다. 군중심리가 무섭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날카로운 시선들이 하나 둘씩 점차 엄마에게로 향했다. 간간히 비난과 힐난 섞인 원성이 들리기도 했다.


-올케! 하는 일도 없었잖아, 맨날 집에서 놀기만 하고.

-...

-엄마 돌보지도 않고 도대체 뭐한거야?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를 집에 되돌려 보내는 게,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그녀는 그렇게 또 다시 아무 이유 없이 욕받이가 되어 그들 앞에 발가벗겨졌다. 가장 슬펐던 건 그 옆에서 아빠는 타인에 의해 떠밀려져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엄마를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날, 방패막 없이 짐승들에게 던져져 오들오들 떠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이토록 갈기갈기 찢겨 진 사이라니. 우리 가족은 신이 온대도 이어 붙일 수 없을 것 같아 더욱 슬펐다.






정신없이 장례식을 마친 후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던 저 너머의 삶. 그녀의 시간이 머물다 간 허름한 방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시린 겨울의 온기가 더 차갑게 느껴질만큼 아무리 문을 꽁꽁 닫고 온풍기를 켜도 도무지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달갑지 않은 낯선 이의 방문을 마주했다는 듯 어서 나가라고 종용하는 듯 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살아 생전 입으셨던 옷들이 새파란 봉지에 담기면서 내는 마찰음만이 공간을 채웠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들여보지 않았던 아빠는 뒤늦은 후회에 사무치게 서글퍼하며 엄마가 우직하게 소처럼 혼자 정리를 하는 와중에 술을 한 잔, 두 잔 들이키기 시작했다.


술에 한껏 취한 그는 끓어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주체못하겠다는 듯 조용히 옷을 개고 있던 엄마와 나를 향해 들고 있던 애꿎은 술병을 던지며 화를 냈다.


-네 년이 조금만 더 사근사근하게 대했어도!

-...

-나 대신 한 번만이라도 우리 엄마 들여다봐줬어도 됐잖아!

-...

-집에서 하는 거라곤 고작 밥밖에 없는 년이 뭐가 그리 힘들고 바쁘다고 간다는 시엄마를 붙잡지도 않아...


술에 얼큰하게 취한 그는 비틀거리며 쉴 새 없이 쏘아댔다. 큰 소리가 지속되자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담담해보였다. 아니,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던 것 같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를 자극할 게 뻔했고, 더군다나 술에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난폭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있었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할머니는 내려가는 순간까지도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있든 없든 아빠는 언제 어디서나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말에 반박한다고 생각되면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죽일듯이 목을 졸랐다. 루틴처럼 벌어지는 일방적인 갈등에 할머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 배 아파 나은 본인의 자식이 저렇게 타인을 함부로 대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으신건지 늘 "너희에게 내가 죄인이다", "내가 할 말이 없다"라는 말씀을 했다.


우리와 잠깐 사는 동안 할머니는 아빠의 폭력을 막기 바빴고, 그 여파로 쓰러지시는 일이 잦았다. 곧 스러질 듯이 위태로운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이꼴을 못 보겠다며 가차없이 내려가셨다. 자식을 잘못 키운 본인의 잘못이니 나를 원망하라는, 짧지만 진한 자책의 말을 남겨두고서.


이 사실을 그는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마주하면 무너져내릴 것 같아 회피하기 급급했던 걸까?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한 그는 종종 감정 조절 하나 못해 욱하기만 하는 못난 아빠를 만나 고생한다고, 미안하다고 도둑고양치럼 몰래 고한 적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그가 모를리 없었다. 그럼 결론은 단 하나, 그는 사실을 맞닥뜨리기 무서워하는 나약한 겁쟁이다.


아빠는 약 한 시간 가량을 난동 피우다가 혼자 지쳐 잠이 들었다. 불규칙적으로 새어나오던 잠꼬대가 잠잠해진 걸 보니 드디어 우리에게도 자유 시간이 찾아온 것 같다. 긴장에 절여진 가슴을 달래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깨진 유리병을 치우던 엄마가 어느새 내 앞에 와 있었다. 이내 속삭이듯 내뱉는 그녀의 말에 나는 놀라 고개를 치켜들 수 밖에 없었다.

.

.

.

분명 떠나자고 했다.

이대로 아빠를 두고서,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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