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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Oct 22. 2023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은 줄 알았다

나에 관하여(中)

낮에 있던 일들을 끊임없이 상기하다가 결국 차오른 눈물들이 하나둘씩 방울져 뺨을 흘러내렸다. 거지 같은 인생이어도 참으면 된다고 믿었다. 남들이 누리는 따뜻한 가정 따위 없어도 나 스스로 올곧게 잘 살아온다면 언젠가 나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정말 조금이라도 내 인생이 나아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돌아오는 건 고작 비난 섞인 욕밖에 없었으니까. 지금껏 나를 지탱해 주던 미래를 향한 일말의 희망이 사그라드는 느낌이다.


낮에 걸려왔던 돈을 채근하던 전화.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낯빛을 가장한 채 동료들에게 돌아간 나. 하지만 사실은 썩어가고 있던 마음. 사무실을 가득히 채우던 기분 좋은 분위기에 모두 취해 신나게 떠들고 있었지만 나 혼자 전쟁에 패한 전사처럼 힘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 번 가라앉은 기분은 도저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아프다는 핑계로 뒤풀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들 많은 곳을 좋아하지도 않고. 난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았다. 허한 마음을 달랜다고 괜히 못하는 술을 마시다가 못 볼 꼴을 보일 수도 있으니까.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쉬고 좋지 뭐.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보려 하지만 미처 막지 못한 마음의 틈새에서 우울이 흘러넘쳐 너울 쳤다.


징- 징-


자조적인 한탄을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또 한 번 진동음과 함께 부르르 떨렸다. 몇 번 울리고 꺼진 걸 보니, 전화가 아닌 문자인 듯했다. 옷깃으로 눈을 벅벅 문지르고는 휴대폰을 켜 문자 내역을 확인했다.


'괜찮아? 엄마가 미안하다'

'전화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나중에 아빠 없을 때 전화할게.'

'원래 그런 놈이니까 혼자서 마음 아파하지 말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 풀고 있어.'


엄마였다.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했는데, 유일하게 진심 어린 걱정을 내비치는 인물을 마주해버리니 더 서글퍼졌다. 그나마 참고 있던 울음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어린아이처럼 콧물까지 흘리며 울었다. 늘 소리 없이 우는 게 일상이라 소리 내어 우는 법은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난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뭐든 혼자서 하는 게 익숙했다. 낯선 이와 함께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가족에게 폭력을 가하고, 모욕감을 주어 제 발아래 굴복시키려는 아빠 덕에 생긴 기피증이었다. 제 3자 앞에서 굴욕적인 모습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밖에 잘 나가지 않았던 것이 매사에 서툰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외로움과 슬픔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견디기 힘들 때 서투른 위로를 하며 고요하게 가라앉는 공기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오늘처럼 목 놓아 울고 싶어질 때면 애정 어린 손길로 주변의 모든 어둠을 걷어내고 괜찮다고, 편히 기대라고 속삭여주는 이와 함께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물에 잠겨 귀가 먹먹해지는 것만 같은 오늘, 나는 그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 순간에 받은 엄마의 문자이니만큼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반듯한 직장까지 얻은 나 자신이 기특했다. 드디어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다행이라 여겼는데 볼성사납게 울고 있는 꼴이라니. 알고 보니 알맹이가 성장하는 게 아니라 껍질만 두꺼워져가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거울 속에 나를 보며 심히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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