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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pr 17. 2021

친구라는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추억 속 한 자락 끝에 그리움으로 남아서...

그리운 이름만 남아

산다는 건
그리운 이름 하나씩 늘려가는 것이다.

인연의 끝에 가까스로 매달린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점멸(點滅)을 거듭한다.

떠나올 때 마음 가득 실었던
잊지 않겠노라는 다짐
살아가는 시간 속에 흩어지고

살피지 못하고 외면했던 이기 앞에
부끄러움만 덩그러니 남았다
단지 사는 것이 힘들었다 말할 수 있는가.
추억마저 힘들어진 이 순간에.

돌아갈 수 없으니 달라질 것 없고
돌이킬 수 없으니 이름만 안고 가는 것이다.

힘들고 긴 통로를 지나는 친구에게
그 맘 헤아릴 길 없지만 그래도...
그립다 한마디 전해봐도 되려나
힘내라는 말, 보태어도 되려나

망설이는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고
우물거렸던 말들만 빈 하늘에 걸렸다.




  어쩌다 아이들 학교에 갈 일이 생기면 아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학교 다닐 때는 최대한 미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등교를 하고 야간자습 때는 월담도 서슴지 않았었는데 뒤늦게 ‘학교 가는 게 좋아요’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교문을 들어서며 심하게 환히 웃고 있는 운동장을 본다. 신록이 내려앉은 교정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햇살에 부서진다. 예전 같으면 긴소매 체육복을 벗어던지고 공차는 남학생들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요즘은 공차는 녀석들을 보기가 어렵다.

 ‘재수 좋게 공이 튕겨져 내 앞으로 굴러오면 발 옆으로 휘감아 차는 키커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야심 찬 기대를 하노라면 공이 그리는 포물선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십중팔구 헛발질일 게 뻔한데도 상상은 나래를 폈고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휑한 운동장과 "조용히 안 하냐, 이것들아!" 선생님의 목소리가 사라진 학교 복도를 지나며 학교의 모습은 지난 1년 사이 많이 변했고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우당탕 쿵쾅 왁자하던 교실의 소란은 우리 때나 있었던 전설 속 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졸업생 앨범 사진을 마스크를 한 채 찍자는 의견이 나와 제법 옥신각신했다. 마스크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땐 그랬었지’ 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을 보면서도 누가 누군지 기억이나 할 수 있을지.

마스크를 낀 채 3분의 1 등교가 잦았던 학교생활에서 아이들은 이미 가깝게 오래 사귄 친구의 개념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모둠활동이 사라졌고 수도승과 같은 묵언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실외 체육시간도 없어졌다. 방과 후 놀이도 금지당한 채 아이들은 수업 후 집으로 향한다. 온라인 수업은 ON, 관심은 OFF.

어쩌면 아이들에게 친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친구...

우리 인생에서 친구의 존재가 무엇보다 소중했던 때가 있었다. 모의와 작당을 일삼아도 거기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고 잘못을 해도 용서가 됐으며 부모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우선시했고 친구만이 영원한 내편이라 생각했던 때 말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었으리라.


  함께 놀며 동네를 누비고 다니기만 해도 누구나 친구가 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함께 고민과 생각을 공유하고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던 청소년 시절, 시대와 사회와 나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던 대학 청년시절도 존재했다.

함께 능력을 키우고 서로를 응원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던 사회생활을 해나가던 동료들, 선후배...

그렇게 쌓이고 이어져 오던 소중한 친구들이 나에게도 많았다.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달려오던 삶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았을 때 벌어진 시간만큼 친구들의 모습도 숨어 사라져 버렸다. 의도적으로 내가 친구를 피하거나 떠나온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친구들 역시 억하심정이 있어 잊기고 작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된, 물리적으로 멀어진 것이 첫 번째 원인이었을 것이다.

바쁜 직장생활과 새로운 관계에 집중했던 시간 속에 대화는 겉돌았을 것이며 인생의 전환점에 서있는 친구를 살피지 못했을 것이다. 힘든 순간을 설명하며 위로받기보다는 혼자 인내하고 감내하려 했을 것이다.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도 더러 있었을 테고 행복한 일에는 그 순간을 즐기느라 친구의 존재를 찾을 생각도 못했겠지. 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관계는 멀어졌다. 공감할 이야기는 더더욱 남아 있지 않은, 기억 속에서 선연한 친구로 각인된 이름만 남은 친구.


  행복은 그 깊이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친구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서 반드시 우정의 깊이와 비례하지는 않지만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빛나던 순간들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


  요즘은 친구들 소식을 SNS상으로 접한다.

이렇게라도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구나’ 실낱같은 안도가 스친다. 그러나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연락도 없는 친구들에게는 일신의 문제를 끄집어내 물어볼 수 조차 없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해지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지난 5년 간 낮과 밤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운영해오던 숙박업을 접었다는 친구의 소식을 톡으로 보았다. 서울에 올라왔지만 연락이 부담스러울까 봐 그냥 간다는 친구의 말도 뒤늦게 확인을 했다.

벌이가 반토막 났다는 친구,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자녀들 때문에 속이 속이 아니라는 친구, 남편의 퇴사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친구...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시대에 개점휴업 상태에 놓인 여행사를 지키는 가장의 한숨과 고민을 글로 몇 번 읽었다. 최근의 일이었다.

 ‘지금 와서 웬 우정 타령이냐?’며 ‘유난 떨고 있네, 별일이야’ 새침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한동안 마음이 쓰였고 아팠다. 아직은 추억 속 한 자리에서 그리운 이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다는 건, 그리운 이름 하나씩 늘려가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그립다, 보고 싶다 말조차 하지 못한, 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라도, 혼자라도 속시원히 외쳐보련다. 옛날 그때 그 시절처럼.

 “친구야, 괜찮나? 힘내라! 보고 싶다, 그리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술이나 한 잔 하자, 친구 아이가?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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