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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pr 25. 2021

새로운 만남에 여행자 되어...

브런치 글쓰기 동지를 만나 ‘마음 환했던 날’

귀신이 들렸다


  ‘만남의 확장’ 보다는 ‘관계의 지속’이 더 중요한 나이다. 관계의 폭이 좁아지고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만남을 기피 또는 회피하며 망설이기도 한다.

- 대범해 보이려 노력하지만 사실 소심해서 그렇다.(그런데 이 말을 하면 별로 믿는 사람이 없다. “뭐라고? 네가? 소심? 진짜? 헐...” 하며 물음표 몇 개를 붙인다. 진짠데...)


  새로운 만남을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는 여럿 있겠으나 지금까지의 경험에 근거하는 바가 크다. 깊은 만남이 아닌 그냥저냥 만나지는 만남에 지쳤을 수도 있고 어떤 만남에서는 실망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만남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타입이고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웬만하면 관계를 지속 유지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험한 꼴, 나쁜 꼴, 볼 꼴 못 볼 꼴을 보고 나서야 관계를 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후의 마음 처리가 쉽지 않아 그렇다.

- 인연을 끊고 마음 정리하는데 오래 걸린다.

(이걸 ‘지지리 궁상’ 이라고도 표현하던데...)


그러니 새로운 만남 앞에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사람 마음이 한순간에 뭐에 씐 듯이 홀라당 넘어갔다. 판단과 고민을 할 새도 없이 내 오랜 생각과 우려와 습관과 태도를 향해 날아와 탁! 꽂힌 효시(嚆矢)*.

콩깍지는 사람을 봐야 씌는 건데, 사람도 안 본 상태에서 씌게 되는 현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귀신이 씐 거다!

어디, 그 귀신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싶었다.


새로운 만남 앞에
나는 모처럼 여행자가 되었다.


  어제, 브런치에서 알게 된 작가를 커피숍에서 만났다. 만화 안팎을 넘나들며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던 드라마 <W>의 주인공들도 아닌데 온라인 상의 만남이 짠~! 하고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추근추근 던진 추파(^^)에 시크하게 전화번호를 남기고 전화 통화를 하고 약속을 잡고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이 되었건만 마음속은 온갖 상상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내가 모임에 관한 한 ‘벙개(번개. 급만남)의 달인’이라 하기로서니 이번에는 좀 심했나? 생각도 되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만남.


  새로운 만남 앞에 나는 여행자가 되어 설렜다.

비행기표만 봐도 설레지 않던가?

공항 가는 길은 또 얼마나 설레던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아보기 위해 톡 대문사진을 훑어보았다. 여행지도책을 살펴보듯...

글쓰기에 대한 공통분모가 있으니 어떤 이야기를 꺼낼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여행지도책에서 갈 도시를, 혹은 도시의 뷰포인트를 체크하듯이...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선물은 뭘 주면 좋을지, 어디서 만날지, 오는 길은 괜찮을지, 날씨는 어떨지, 첫 말은 뭐라고 하지?...

마음속 여행가방에 이것저것 꽉꽉 넣다 보니 가방이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20m, 10m 전...

사진 봐 두길 잘했고 반복 학습이 이래서 중요하다. 단박에 알아보고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중을 나갔다. 그쪽에서도 선뜻 알아본 모양이다.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통하였다!


  장소도 참 잘 골랐다.(현지인인 내가 만나자고 한 장소를 잘라먹고 그녀가 고른 곳이다. 젊은이의 안목이 낫다) 진분홍 연분홍 흰색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뷰도 아주 시원시원했다.


  대화도 일사천리!, 막힘이 없이 술술.

글쓰기 소재에 대한 고민, 글을 쓰게 된 이유, 브런치 시작할 무렵 함께했던 프로젝트 이야기, 다른 작가들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사는 이야기...

역시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말도 참 잘한다.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 자신만의 글쓰기를 하는 게 너무 좋다는 그녀는, 비교적 습관적으로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나는 무엇보다 그녀의 그런 전투력, 결사항전 의지가 마냥 부러웠다.

 ‘내가 쪼매만(조금만) 젊었어도 저렇게 글쓰기에 진심 전투태세를 취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김훈 작가도 ‘일필오’(하루 원고지 5매는 무조건 쓴다) 한다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하루 5시간 글쓰기 루틴은 지킨다지?

쓰고 싶으면 쓰고 좀 귀찮고 바쁘면 건너뛰는 나태하기 짝이 없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헤어지기 아쉬웠어. 시간도 너무 짧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새로운 만남, 특히 젊은 작가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 흥분되는 일인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나는 행복한 여행자가 되어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며 오래 묵은 와인 한 잔 마신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었다.


  헤어지며 아쉬워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만화 필터 사용이라는 말을 팔랑귀^^로 새겨들었다가 엄정히 수칙을 준수하며 고쳐 공개해 본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서로 멋진 글쓰기 하며 응원하기로 해요. 유명한 작가가 되어 이름 알리게 되더라도 나 몰라라 하지 말고요.^^’

이제는 설렘이 행복이 되어 기억 속에 남겠다.

많은 설렘 중에 사람에 대한 설렘이 그 중 최고의 설렘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글쓰기 동지를 만나 ‘마음 환했던 날’.




  


*) 효시 嚆矢

1. 전쟁 때 쓰던 화살의 하나.

2.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시작되어 나온 맨 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자의 <재유 편(在宥篇)>에 나오는 말로, 전쟁을 시작할 때 우는 살을 먼저 쏘았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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