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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07. 2021

일기예보와 조울증

<people to people> 우울의 끝은 보이지 않고...

1.

큰 비가 내릴 거란 징후를

일주일 전 일기예보에서 듣고 알았다.

구름 속 비의 씨앗은 이미 발아했고

종자의 DNA는 유전된 지 오래.


수증기의 습한 음모는 상승기류를 타고 오르며

구름이란 구름은 죄다 끌어모아 갔다.

또 다른 모의꾼-대류성 스톰, 벼락-이 가세했고

두 전선의 충돌과 대치는 정체전선을 형성했다.

기상캐스터도 이처럼 지리멸렬한 비를,

폭우를 감히 예상치 못했으리라.

대륙과 대양을 훑고 창공을 날아 하늘로 솟구친 세상의 열기와 욕망은 무거웠을 테지.


2.

나의 우울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 거란 조짐을

시간이 자욱이 내려 깔린 뒤에야 알아챘다.

태어나던 순간부터 자라기 시작한 검은 그림자는

내 머릿속에서 부유하며 떠돈 지 오래.


황폐한 공간에서 배양된 굶주린 우울은

촉촉한 감성을 하나씩 집어삼켰다

또 다른 우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그때,

그들의 동거는 불협화음을 내며 덜그럭거렸다.

나는 다른 이름의 한 얼굴을 끝내 몰라봤고

그들의 놀이를 중지시키기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기력에 의해 장악된 마음은 캐캐 묵은 잡동사니를 일제히 뱉어냈고 미친 듯 돌아다녔다.


3.

폭우는 아래로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일기예보보다 거셌고 오래 지속되었다.

먹빛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게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혼돈의 아수라...

발이 묶였고 간판이 날았고 바다가 미쳐 넘쳤다

도로가 잠기고 담벼락이 무너지고 사람이 다쳤다.


4.

우울은 온몸을 사로잡고 권력을 움켜쥐었다.

예상보다 자주 출몰했고 생각을 통제했다

자유로운 사고체계가 무너진 게다

어두운 뒷골목에 웅크린 길 잃은 눈동자...

생각이 털렸고 육체는 엎어졌고 눈물이 양산되었다

호흡은 거칠고 심장은 날뛰었으며 분노는 솟구쳤다


5.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재난을 수습한다

비는 조만간 그칠 것이다, 끝은 있다

비우고 나면 하늘은 가벼워지고 맑은 얼굴을 내밀 것이다. 태양은 건조한 낯빛일망정 하늘에 걸려 있을 것이고 대지는 평화로운 생명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다시 살아질 것이다.


6.

나는 실체 없는 우울이라도 달래어 본다

멱살잡이를 하려 해도 순간, 먼지로 화해 사라진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인가 영원한 것은 없다

극복되지 않는 병은 없다.

눈물이 흘러내릴지라도 슬퍼하지는 말자

슬퍼도 아파하지 말자 아파도 죽지는 말자


7.

나는 오늘도 해방구를 찾지 못한 채

비상계단만 오르내리고 있다.

도대체, 황망한 발길은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8.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개인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들이 준비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으로 몇 년을 고생했다는 연예인들 이름을 어림 잡아 꼽아봐도 열 명은 족히 넘으니 아마 많을 것이 분명하다. 내과나 이비인후과, 치과 사이에 '정신의학과' 간판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유명 학원가나 주거 밀집지역에는 정신의학과 병원이 더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면 병원에 들렀다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 산후우울증, 갱년기 불면증, 중년의 불안, 노인 우울증... 등 우울의 이야기와 사례는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은 풍문에 들려오는 엄연히 '남의 일'이었다.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이니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은 감기로 내과를 찾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남의 일이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선입관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지만 나의 일이나 혹은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라면 사정은 달랐다. 놀라웠고 충격적이었고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댔다. 슬펐고 아팠다.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거친 태풍이 불어닥치는 악천후도 그러나 이내 물러나고 소멸한다. 칼에 베인 상처도 시간이 지나가면 아물듯 마음의 상처 또한 점점 아물어 갈 것임을 믿는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곧 맑은 하늘이 펼쳐질 것을 믿는다. 다시 살아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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