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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Sep 08. 2021

레모나 톡톡 나눠먹던 날이 눈부셔~

셔, 셔, 셔 자로 끝나는 말은...

  가을비가 우울을 부르는지, 우울해서 가을비가 슬픈 건지 알 길은 없었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몸이 무거워 마음이 가라앉는 건지, 마음이 무거워 몸도 처지는 건지 그 또한 알 길이 없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꿈같은 구름 타고/천사가 미소를 짓는/지평선을 날으네...

<애모의 노래>만 뜬금없이 흥얼댔다. ‘도대체 이게 언제 적 노래야? 아, 옛날 사람, 진부하다 진부해!’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아무거라도 해야 하나 괜히 서성대기만 하던 그때, 도서관에서 반납일이 지났다는 메시지가 왔다. 항상 4권씩 빌려와 2주간 읽으면 얼추 맞아떨어지는데 2권밖에 못 읽었다. 젠장, 그나마 2권은 일단 반납 후 다시 빌려온 것인데, 또 그 2권을 읽지 못했다. 유난히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더 이상 읽지 않겠다, 우산을 쓰고 도서관에 걸어가 반납함에 넣어 버렸다. 연체한 이틀 동안 책은 빌릴 수 없을 것이다.


  “디리릭~”

음소거를 해놓은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낮게 떨렸다.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하마터면 큰소리로 외칠 뻔했다. 작당모의 문제(文題)였는데...

핸드폰을 바로 꺼냈다. 흔치 않은 조건 반사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개인 시간을 보낼 때는 핸드폰이 울려도 즉각 확인하지 않는다. 보게 되더라도 방치한다. 방치한 톡은 ‘나중에 다시 확인해야지’하다 잊어버리는 통에 하루 지나 톡을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산책하는 동안은 무엇으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나만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니까...


  그러나 핸드폰 울림소리를 감지하고 바로 확인을 한 것은 기분 좋은 촉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귀신같은 예지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선물이 도착했으니 확인하라는 메시지 알림이었다.

 ‘역시, 역시... 선물이닷~! 그런데 누구? 오늘이 무슨 날인가? 아닌데...’


  벌써 9월이네...

두 번째 월급 받은 기념으로 울 친구들에게 안부 전한다...


  안부 문자와 함께 보낸 친구의 ‘레모나’ 선물이었다.

 “휴~ 우우~”

저 아래, 아주 밑에 가라앉아 있던 숨이 길게 내뱉어졌다. 담담하게 적힌 안부 문자에 많은 이야기를 꾹꾹 누르고 자제한 마음이 읽혔다. 어느 누구의 어려운 사정이 적혀있지 않고 힘든 투정이 없고 걱정이 묻어나지 않는 사려 깊은 메시지였다. 밤낮을 거꾸로 지내며 하던 숙박일을 접은 건 올 초였고 재미있게 시작한 일도 잠시 쉬어가기로 했나 본데 그 사이 취업을 해서 두 번째 월급을 받았단다.


  이 난국에, 이 나이에 재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다. 업무가 익숙해지고 동료와 웬만큼 농담을 주고받게 되는데 두 달은 지나야 했을 것이다. 약간의 안도감에 젖어들 무렵, ‘모두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겠구나’ 친구들 걱정을 했겠지. 위로가 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했을 테고. 이왕이면 추억 돋는 뭔가를 선물하면 좋겠다 생각하던 중 머릿속에서 ‘파바박~’ 한 줄기 번개가 쳤겠지.


이럴 때 피로회복제 필요하지... 명절 음식 하고 ‘개피곤’(좌), 격하게 쉬고 싶다. 출처:그라폴리오(중), 출처:수수 블로그(우)


  눈이 질끈 감기고 입에 침이 고이는 그 맛! 잠 깨고 열심히 공부하자며 야간자습 시간에 톡톡 털어 넣던 그것! 어제는 내가 사서 나눠주고 오늘은 네가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그 마법의 노란 가루! 커피의 카페인 효능을 무색게 하고 박카스의 달달함도 물리친 1983년생, 피로회복제의 최강자!... 레모나 되시겠다.


  그것만 털어 넣으면 공부가 잘 될 것 같았지. 좋아하는 선생님 책상 위에 슬며시 놓아두면 내 마음 알아주실 거라 믿었었고. 편지 안에 하나쯤 넣어 보내면 레모나의 진한 뒷맛처럼 오래 기억될 거라 흐뭇해했었던. 그땐 그랬지.


  메시지를 받고 이틀 후, 선물은 잘 도착했다. 영양제 챙기듯 하루 하나씩 따박따박 잘 까먹으며 톡을 했다.

레모나 잘 받았다, 우리 학교 다닐 때 하나씩 톡톡 까묵던 생각나더라 ㅎㅎ 고마워^^
ㅎㅎ, 동시에 똑같은 말 쓰고 있었어...

레모나를 선물하며 그것을 받아먹으며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맛과 쓴맛이 예전 그대로인 것처럼...


  가장 눈부신 시절로 돌아가 해맑은 웃음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주었던 격려를 상기하며 용기를 얻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에도 쫄지 않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무모한 자신감을 얻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레모나 한 봉 탁 털어 넣고 다시 생각해 본다.

 ‘인생, 뭐 별거 있드나? 하는 데까지 하는 거고 가는 데까지 가는 거지, 그런 거지. 맞제?’





제목 : 하~ 셔~

<셔, 셔, 셔 자로 끝나는 말은...>



밤하늘 별 보며 눈은 감지 마셔~

이거 먹고 잠 깨야 하셔~

눈을 질끈 감고 아이 셔~

입안엔 침이 잔뜩 아이 셔~

레모나 톡톡 나눠 먹던 날이 눈부셔~


나눠 먹고 항상 행복하셔~

근심 걱정 날려 버리셔~

좌절과 포기는 던져 버리셔~

서로의 격려를 상기하며 실컷 웃으셔~

주먹 불끈 쥐고 용기와 힘을 내셔~


그리고, 그냥 하셔~

개피곤도 날려버리셔~

겁먹지 말고, 쫄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 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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