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당모의(作黨謨議) 11차 문제(文題) : 위인전 >
각설(却說)이라, 인간의 이기가 ‘고요의 바다’에 깃발을 꽂아 정복자의 위엄을 만방에 자랑하던 그 해, 1969년이었다. 성은 김 씨이고 이름은 소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는 알리가 없는 허약한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자주독립, 밖으로는 인류 공영에 이바지해야 하는 대의적 시대 요구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존재감 끝 순위인 차녀로서 자주적 삶을 살아야 했고 밖으로는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요구받지 않는, 보통과 평범을 인생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모순의 시대를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 가끔은 신묘한 잔재주를 발휘하여 무용, 미술, 노래, 운동, 공부, 글쓰기 등에 소질을 보여 팔방미인 소리를 들으며 어른들의 자랑거리로 입에 올랐으며, 타고난 밝은 성격으로 무리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니 장차 닭이든 돼지든 어떤 무리에서건 대가리 역할을 하며 이름 꽤나 날릴 것으로 기대가 컸으나 타고난 천성이 ‘베짱이과’에 풍류와 방랑의 ‘김삿갓과’ 라, 소싯적 얕게 배우고 익힌 재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게 어디냐, 미약한 힘이나마 국가의 경제에 기여하고 사는 자주민임을 널리 선포하며 다녔었다. 타인을 해코지하지 않는 의지만은 곧아 법 없이도 사는 인류 평화에 이바지하는 바 지대하였다. 결혼을 하면서는 한 남자와 그 집안의 평화와 화목에 기여하고 자녀를 낳고 양육함에 있어서는 나라의 미래 인재를 양성한다는 사명감으로 진정한 애국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지옥도에 떨어져 갖은 고초를 겪게 되니 이 무슨 변괸고.
죽은 지 29일째 되는 날, 제5 지옥도인 발설 지옥 판관, 염라대왕(閻魔大王) 앞에 서게 되었으니, 옥졸이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업경대(業鏡臺) 앞에 세웠다. 한 손에 곤봉을, 다른 손으로는 올가미를 휘두르며 염라가 말하기를,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소상히 말하라.”
어허라, 이거 TV에서 많이 본 장면이로세. 죽어 지옥문에 서게 된 것도 억울한데 붙어있는 입이라고 어찌 죄를 내 입으로 밝히려오, 뭐 이렇게 대사를 읊는 것을 보았는데, 순간 이왕지사 죽어서 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면 지은 죄야 명부에 소상히 기록돼 있을 것이니 내 공치사나 실컷 하고 갈 것이다 오기가 충천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내 사주에 명은 90세로 지옥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아니니 그것을 다시 살펴 인간 세계로 돌려놓아 주시오. 또한 이곳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중, 염라대왕의 독재에 불만을 품은 영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혁명군 결성을 모의하는 것을 보았으나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설파하며 대화로 풀자, 기세를 잠재운 바 있으니 정상을 참작해 주시오.
또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는 동안 지고지순 대쪽 같은 성품으로 주류문화를 선도하며 주(酒)님을 가까이한 바, 서로 교류하고 공감하고 화합하는 아름다운 문화를 주도하였고 관련 산업 발전과 자영업자의 생계유지에 기여하였으니 경제발전에 한몫한 것을 인정해 주시오. 또한 평소 ‘돈은 쓴 만큼 들어온다’는 소신으로 버는 족족 최선을 다해 소비하여 경제 순환에 일조하였고 와중에도 성실히 금융권에 자투리 돈을 모아 전국이 집값 상승으로 미처 돌아가기 직전, 아파트를 구입하여 가정의 평화를 이루어 내었소. 거지꼴을 겨우 면하게 된 것은 생활보호를 받으며 세금을 축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니 소극적 애국이라 일컫겠소.
마지막으로 내 가장 잘한 일이라 사료되는 바는...
‘가화만사성’이야말로 곧 국가의 안정과 발전,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주춧돌이 아니겠소? 가정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고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구심이 되지 않겠소. 그까짓 거 뭐 대단한 일이냐 토를 달 수 있겠지만 뒤돌아 살펴보시구려, 큰소리 칠 사람 많지 않소이다. 화룡점정하자면, 출산율 제로시대(2021년 추산 0.7명 이하 예상)인 작금의 세태에 자녀를 아들 딸 구별 없이 둘을 낳아 길렀으니 항간의 계산법으로 환산하면 200점이며 향후 이들의 경제활동 사회활동을 통해 기여하는 바를 예상해 본다면 능히 1,000점(1,000점이 만점이오, 흠흠...)은 될 것이오. 이 보다 훌륭한 일이 또 있겠소.
본인 소운, 체 게바라처럼 뜨거운 혁명의 이름으로 불릴 하등의 이유는 없겠으나 ‘자아를 온전히 챙기고 성찰하며 어렵고 힘든 세상을 헤치고 묵묵히 걸어온 자’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치열한 행동가, 혁명가임을 자처하는 바이니, 나 다시 돌아가면 매일을 오늘처럼 성실히 당당히 살아갈 것을 맹세하나이다.
이승에 남은 38년을 저승으로 부터 찾아온 날, 지옥불의 타오르는 불길도 ‘깡’ 소운을 위협하지는 못하였다 한다.
작당모의가 준비한 이번 문제文題는 위인전입니다. 누구에게나 존경하는 위인이 한 사람씩 있듯, 우리들도 그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따라 하고 싶은 위인이지 않을까. 그래서 감히 작가들 스스로 위인인 척 태연스럽게 거짓말에 도전해보았습니다. 가벼운 웃음으로 격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