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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18. 2022

고딩은 위험해

<작당모의(作黨謨議) 19차 문제(文題) : 접근금지 >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정확히 3초 지나 하늘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4시 방향, 서너 발걸음쯤 뒤쪽이다. '딱' 혹은 '쨍'소리가 아니었으니 딱딱하거나 금속의 물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깨지거나 '퍽'하고 터지는 소리도 아니다. 폭신하고 가볍고 동그란 무엇이 솔 삭정이와 잔가지와 마른 낙엽으로 덮인 숲 바닥에 대책 없이 닿는 소리다.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뭘까? 생각에 답이라도 주듯 부스럭 바스락 작은 생명체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이 들지 않는 듯 한 걸음 내딛고 비틀, 또 한걸음 내딛고 비틀댄다. 머리를 세게 부딪친 모양이었다. 그리곤 또 3초간 멍하니 앞만 보다 이제 되었다는 듯 쪼르르 앞으로 내달려 멀어져 갔다. 다람쥐였다.

<눈 뜬 다람쥐 낙하 사건>에 대한 현준의 목격담은 대충 이러하였다.


   "뭐라고, 다람쥐가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장난하냐? 차라리 원숭이라고 하시지, 그럼 믿어줄 수도 있을 듯..." 누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대학생이 뭐라고, 어른인 척, 다 아는 척한다. 완전 재수탱이다.

 "어디, 어디, 그래서, 다람쥐는 어딨어? 많이 다쳤어? 웬일이라니, 세상에, 다람쥐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보네. 근데 너는 괜찮아?" 엄마는 이런 식이다.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편이지만 위기 대처 능력이 좀 부족하다. 모든 일에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어 워워~ 긴장감을 낮춰줘야 한다.

 "하, 그 새끼, 웃기는 놈이구만. 그런 정신 상태 가지고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그만하길 다행이지만 항상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돼." 아버지는 이런 식이다. 진지하고 심각할 일도 아닌데 너무 앞서간다. 맨날 그놈의 인생에 빗댄다. 내가 얼마나 살았다고. 내가 쥐뿔, 인생을 얼마나 안다고. 3,40대가 되어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는 인생 얘기, 와닿지 않는 이야기를 매번 한다. 내 나이 이제 열일곱인데. 그냥 다람쥐 얘기였는데.  '다람쥐도 나무에서 떨어지네요. 왜 떨어졌을까요? 희한하죠?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볼걸 그랬어요.' 뭐, 그냥 그런 얘기였다. 그냥 팩트.

다. 람. 쥐. 가. 나. 무. 에. 서. 떨. 어. 졌. 어. 요.


   

   결코 유익하지 않은 대화에 현준은 심하게 집에 가고 싶어졌다. 이 시간에 친구들과 만났다면 PC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을 텐데 자연휴양림에서 가족 캠핑이라니, 킹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없이 자연 속에서 힐링해야 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전혀 힐링이 되고 있지 않다. 짜증만 늘어날 뿐이다. 게다가 텐트를 접고 집에 가기 전에 숲해설을 들어야 한다니,  장난하세요? 유치원 때부터 휴양림으로 캠핑을 오면 항상 들어왔던 숲해설이다. 체험학습, 이런 건 잼민이* 하는 짓이지 않나? 이 나이에 하란다고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거냐고, 완전 얼척없다.* 누나는 이럴 때 왜 한마디도 안 하는 건데.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다 이거지. 영락없는 여우다. 얄밉다.


   숲 해설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언제나 같다. '응애'하고 사람이 태어나는 시작은 같듯이. 숲지기 할아버지의 자기소개, 숲지기가 된 이유, 휴양림의 특징 등등 알 필요도 없는 이야기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일행 중 산만한 꼬맹이들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녀석들 하나 없으니 오늘 산행은 뻔할 뻔 자 더 지루할 것이다.


   숲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숲지기 할아버지가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휴양림에 오셔서 힐링들 하셨습니까? 숲 향기 좋고 바람도 시원히 불어 주셨겠지요? 숲은 쉬어가기 알맞을만치 조용하였고요?"

 '촌스런 존칭은 뭐람? 바람은 그냥 부는 거지 불어주시는 건 또 뭐야?' 현준은 마음속으로 계속 툴툴대고 있었다.

 "네, 소나무 아래 텐트를 쳐서인지 솔 향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고 조용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40대 아저씨다운 저 모범답안 좀 보라지, 어른들이란...'

 "아, 비슷하게 생겼지만 소나무가 아니고 잣나무나 가문비나무였을 겁니다. 캠핑장 쪽에는 소나무가 없죠. 캠핑장 주변에는 잣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아주 이상적으로 섞여있는 지역입니다. 그걸 혼효림(混淆林)이라고 하는데 우수한 사회상과 같다고들 말합니다."

 '사회상이랍신다. 나무와 숲을 빗대 이제 사람과 사회에 대해 말씀하시겠다 이거군.' 현준의 마음속에서 불편함이 몰려왔다. 경쟁, 우위, 승리에 관한 얘기일 것이다.

 "전혀 조용하지 않았어요. 숲은 결코 조용한 곳이 아닌 것 같아요.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나뭇가지 떨어지는 소리, 새소리, 매미 소리까지요. 심지어 다람쥐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고요."

 "......"

 "나뭇잎 소리, 나뭇가지 소리가 시끄러웠다고요? 허허허... 대단한 능력인데요. 옛날에 600만 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이 유명할 때가 있었는데 그중 소리 초능력자, 소머즈를 닮았군요. 혹시 현준 학생의 속이 시끄러웠던 건 아니고요?" 숲지기 할아버지의 말에 일행들이 일제히 웃었다.

 '짜증 나는 내 심사를 더 부추기는군.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나온 네 꼴 참 좋다, 비아냥거리는 거야? 뭐야?'

 "그래요, 어쨌든 좋아요. 사실, 숲이 시끄럽다는데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니까요. 숲에 오면 대부분 사람들은 조용하고 힐링이 된다고 말하지만 숲은 조용하지 않아요.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지요. 숲의 모든 동식물들은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고 번식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전력을 다해 투쟁하니까요. 잣나무의 경우, 나무 아래를 보면 솔잎이 빼곡히 떨어져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떨어진 게 아니라 나무 스스로 잎과 잔가지를 떨군 거예요. 나무의 성장을 도와 광합성 하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이 잎에는 산성 성분이 있어 다른 씨앗이 들어와 싹을 틔우지 못하게 방해하는 목적도 있어요. 생존을 위한 나무의 지혜로운 전략인 셈이지요. 조용하다고 느끼는 건 자신이 이 숲에 와서 조용히 있다 가고픈 마음이 작용한 겁니다."

    숲지기 할아버지는 이제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한 듯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숲들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인 혼효림인데 특히 우수한 숲의 모습은 참나무와 소나무의 비율이 75대 25인 것을 칩니다. 그러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숲을 유지하기 위해 숲의 동식물들은 보이지 않는 견제와 상생의 노력을 활발히 해야 하지요. 도토리거위벌레는 7,8월에 참나무 가지를 맹렬히 가지치기하는데 설익은 도토리에 알을 낳는 자신의 생존 행위에 대한 보답으로 지나치게 많은 열매로 인해 부실해지는 참나무의 위험을 막아주는 겁니. 단순림이 더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경쟁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하는 거랍니다. 소나무과 나무는 그들대로, 참나뭇과 나무들은 그들대로의 전략을 가지고 산다는 얘깁니다. 아, 참,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다람쥐 말이에요. 다람쥐와 청설모는 땅에 묻은 도토리의 95% 이상을 찾아내지 못해요. 결국 5%를 위해 성질 급하게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나무에서 떨어지기도 하는 거랍니다. 물론 겁이 많기도 해서 앞뒤 가릴 새 없이 달아나다 떨어지기도 하지만요.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자면 10%의 머리로 산다는 사람보다 다람쥐가 더 열악한 환경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캠핑에서 돌아온 현준은 녹초가 되었지만 한편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1박 2일 가족여행을 묵묵히 다녀와 줬으므로 이제 나머지 방학기간 동안 미친 듯이 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아, 딱 기다려라, 이 몸이 납실 차례니라.


   현준은 일주일의 여름방학 기간 동안 글자 한 자도 보지 않기로 결심하였기에 최선을 다해 노는데 전념했다. 노는 것에는 끝이 있다고 누가 말했단 말인가. 우중 축구게임, 볼링 시합, 영화보기, 야구장 가기, 워터파크 가기, PC방에서 죽치기, 코인 노래방 가기, 파자마 파티... 계획한 것을 이렇게 철저히 빈틈없이 챙기고 실천한 적이 있었던가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기숙사에 들어갈 날짜가 다가오면서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격하게 다시 학교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 내 나이 열일곱에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현준이 노는데 사력을 다하면 다할수록 점점 더 화가 끓어오르는 자가 있었으니, 아버지 송 씨였다. 어제 하루 종일 놀았으니 오늘은 공부를 하겠지, 며칠을 놀았으니 답답하던 마음은 좀 풀렸겠지, 즐거웠던 기억을 에너지원 삼아 폭발적으로 학업에 열중하겠다 다짐을 하겠지, 열심히 공부하다 주말에 뵙겠습니다 기분 좋게 기숙사로 들어가겠지... 아들 눈치만 보고 있다가 그만 애타는 심정이 분노로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저녁 무렵부터 시작된 송 씨현준의 싸움은 자정이 다 되도록 누구 하나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창 대 창, 검 대 검의 싸움... '혼효림'과 '단순림'의 비교론, '놀 때'와 '공부할 때'의 시기론, '냅둬유'와 '못냅둬유'의 기세론, '스스로'와 '강제로라도'의 결정론, '나'와 '나때'의 환경론, '제발'과 '제발'의 비교우위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제발'의 홍수 속에 싸움은 정전(停戰)상태들어갔을 , 합의 하에 이루어진 휴전이 아니기에 일촉즉발 화약고는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음 날, 현준의 방문 앞에는 경고장 하나가 붙었다.

1. 천이중*, 끼어들기 금지

2. 고딩출몰 위험지역, 돌아가시오

3. 가족 입방(房) 절대 금지

4. 개김 주의, 개무시 조심


   아침 일찍 일어나 경고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송 씨는 한숨을 푹 내리쉬고는 평소보다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일어나라, 학교는 가야지" 그리고 생각했다. 비록 나무에서 떨어졌지만, 또다시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회복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나 달려가는 다람쥐를 목격한 것은 다행이라고. 5 퍼센트의 먹이를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다람쥐에 대해 배운 것은 잘한 일이라고.






*킹받는다 ; 열받는다는 뜻

*잼민이 ; 온라인 상에서 초등학생, 넓게는 중학교 저학년을 비하의 어조로 이르는 말

*얼척없다 ; 어처구니없다는 뜻

*천이(移) ;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군집의 변화를 말한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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