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당모의(作黨謀議) 19차 문제: 접근금지 >
내가 태어나던 날, 엄마는 핏덩이인 나를 끌어안고 오열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제 다 끝났어, 이제 정말 끝인 거야,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목메어 우는 엄마의 표정은 울면서도 왠지 모르게 밝았다고 아빠는 기억했다.
엄마는 연애 때부터 술만 취하면 우리는 꼭 딸을 낳을 거라고, 첫 애가 딸이면 정말 기쁘겠다고 아빠에게 말했다고 했다. 아빠가 그럼 첫째가 딸이고 둘째는 아들이면 좋겠다, 했더니 엄마는 취한 와중에서도 또렷한 발음으로 첫 애가 딸이라면 우리에게 둘째는 없다고, 나에게 딸 하나면 충분하다고, 딸아이의 이름은 금희이고, 금희는 오빠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동생을 갖는 일은 없을 거라고, 또박또박 말하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남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고 했다.
엄마가 나를 배고 몇 달이 지나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아기방은 핑크색으로 꾸미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엄마는 입맛이 없다면서도 육회에 노른자위를 버무렸고, 한입 꾸역꾸역 입에 넣을 때마다 주문을 외듯 우리 금희, 좋은 것만 먹여야지, 했다. 내심 아들에 미련이 있었던 아빠는 금희 옆방은 파란색이면 어떨까? 라고 했다가 엄마의 칼날처럼 서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때 네 엄마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 라고 아빠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안다. 그때 정말 아빠는 엄마에게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떼를 쓸 오빠, 괴롭힐 동생이 없이 자라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 시간은 주로 책과 함께였다. 유치원을 다녀야 할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들떴다. 무인도에서 28년간 혼자 살아야 했던 로빈슨 크루소의 지독한 외로움에 대한, 낯선 사람에게 계속해서 문을 열어주는 백설공주의 놀라운 순진함에 대한 다른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나와 달랐다. 그들은 학원에 갈 필요가 없는 로빈슨 크루소의 자유와, 백설공주를 깨운 백마 탄 왕자의 외모를 말했다. 아이들의 유치함은 실망스러웠고, 난 유치원에서 혼자를 고집했다. 엄마는 친구를 사귈 맘이 없는 나를 보면서 걱정했다. 쟤 언제 사람 되나, 얼른 사람 되어야 할 텐데.
엄마는 금요일이면 내 손을 붙들고 분식집을 찾았다. 떡볶이와 순대 1인분을 시키면서 늘 한마디를 덧붙였다. 간 많이 주세요. 접시에 순대만큼이나 듬뿍 담긴 간은 모두 내 몫이었다. 싫었지만 먹어야 했다. 엄마는 내가 간을 다 먹고 나서야 떡볶이 먹는 것을 허락했으니까. 한 번은 엄마는 간 안 먹어? 하고 물었더니 이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지겹다, 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간을 먹고 난 금요일의 저녁 메뉴는 늘 선지해장국이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배인 국물을 먹는 건 고역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식탁에서 일어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 내 이름 김금희 말이야. 금요일마다 기쁜 일이 생기라는 의미로 금희라면서. 그런데 난 금요일이 제일 싫어. 그리고 간이랑 선지해장국도 싫어. 엄마도 싫어. 간 한번 먹고 울고, 선지해장국 한번 먹고 또 울었지만, 엄마는 나의 금요일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어릴 땐 엄마를 많이도 원망했지만, 이제는 엄마의 마음을 안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조기교육이 아니었을까. 엄마는 나를 사랑했으니까. 그리고 난 구미호의 삶을 살아야 했으니까.
엄마의 조기교육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비위가 약하다. 피 냄새는 늘상 역하고, 간은 변함없이 비리다. 어제는 특히나 더 고역이었는데, 날이 너무나 무더웠고, 한낮의 햇빛은 쨍했다. 피 비린내는 거의 눈에 보일 듯했고, 간은 이제 막 오븐에서 꺼낸 것처럼 뜨거웠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나의 체온은 이미 50도를 훌쩍 넘은 듯한 느낌이었다. 한 여름의 지옥불 같은, 그러니까 그건, 너무 한낮의 생간이었다.
뜨거웠던 간과는 다르게 그는 정열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의 펼쳐질 인생, 그 과정에서 반드시 이겨내야 할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나서야 얻게 될 성취와 안정에 무관심했다. 그는 현재라는 것만 있었다. 하지만 그 현재는 지금 생생하게, 운동감 있게 펼쳐지는 상태가 아니라 안개처럼 부옇게, 분명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게 풀풀 흩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뭔가 생활 자체가 그랬다. 그의 사랑고백도 그런 그와 닮아 있었다. 그는 무심한 톤으로 사랑하죠, 오늘도, 라고 했다. 그 말이 재미있어서 그럼 내일은요? 하고 물었더니, 그건 모르겠어요, 라고 했다.
언제쯤이 되어야 나 이제 안 해요. 사랑, 이라고 말할지, 오늘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서 그를 볼 때마다 오늘은 어때요? 라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그렇죠, 오늘도, 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너무 한낮의 생간을 꺼내기 전에도 그렇게 말했다. 오늘도 사랑한다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사랑이 없어지지 않은 채로, 아직 나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는 채로 죽는 것은 나름 낭만적이기도 하니까.
그는 내가 쓰는 소설의 편집자였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작가님 소설이야 좋죠, 이번 원고도 칼 조금만 대면 되겠어요, 했다. 그는 나를 사랑했고 나 역시 그를 사랑했다. 우리가 서로 사랑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내 원고에 칼을 댔고, 난 그의 간에 칼을 댔으니까. 서로의 소중한 것에 칼을 댄다는 건 꽤나 사랑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구미호의 사랑은 그렇다.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할 수는 없는, 19번의 만남으로 사랑이 끝나버리는. 하지만, 그건 사랑하는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랑은 언젠가는 멎으니까. 영원한 사랑은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사랑하죠, 오늘도. 하지만 내일은 모르겠어요, 라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 김금희 님께서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죄송합니다.
- 김금희 님의 단편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 중에서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 연관된 글입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