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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Apr 24. 2018

아직도 너는, 여기에 있다

피하고 싶지만, 온몸으로 아파하고 너를 비워내야 하는 이 시간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여름방학을 맞은 엘리오의 그저 그런 삶을 보내고 있을 무렵, 미국에서 온 24살의 청년 올리버가 나타납니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아버지의 보조연구원으로 오게 됩니다. 낯설지만 이상하게도 끌리는 그에 대해 처음엔 경계하는 엘리오, 올리버는 그런 엘리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보지만 결국 서로를 위해 거리를 두며 생활을 하게 됩니다. 17살의 엘리오는 피아노를 사랑하고 작곡에 빠져 사는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또 인텔리인 두 부모 아래에서 자라면서 다양한 분야로 모르는 게 없는 지적인 소년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게 딱 하나 있었습니다. 올리버를 향한 그의 알 수 없는 마음. 자꾸 보고 싶고 그리운 올리버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어느덧 엄마가 들려준 고전 로맨스를 빌려 스멀스멀 꺼내어봅니다. 올리버는 역시나 경계합니다. 그러나 곧 그 경계가 허물고, 서로는 서로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감정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늦게 알아버린 마음만큼이나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애틋한 시간들을 만듭니다. 짧지만 강렬한 여름의 계절처럼 두 사람의 사랑도 뜨거웠지만 빨리 지나가버립니다. 올리버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엘리오는 멈추고 싶지 않던 자신의 마음을 부여잡아봅니다.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마음을 엘리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감싸 안습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거라. 안 그러면 다음에 오는 인연에 줄 것이 없단다. 서른이 되어서도 남는 게 없단다.

이별의 빈자리에 대한 공허한 마음은 아버지의 따뜻한 위로로 잠시 덮어두며 살아갑니다. 찬란하고 뜨겁던 여름은 가고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이 찾아옵니다. 겨울 어느 날 엘리오의 집에 전화 한 통이 오고 , 그 전화를 받은 엘리오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래 떨리지 않던 가슴이 다시 떨리게 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올리버의 목소리, 반갑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에 쌓인 통화를 하게 됩니다.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더니 농담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진 한마디가 현실이 될 줄 몰랐습니다. 약혼이라도 하냐는 한 마디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올리버의 말에 엘리오는 무너집니다. 마지막 엔딩은 엘리오의 슬픔을 꾸역꾸역 눌러 담는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은 영상미, OST, 패션 등 참 볼거리가 다양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마치 이태리에 와 있는듯한 편안함까지 전달합니다. 꿈같던 여름날의 이태리와 꿈같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참 좋은 조화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퀴어 영화다 보니 소재상 모든 관람객이 반가워할 수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불편한 수위가 아닌 제삼자로써 충분히 바라봐지는 정도였기에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관점을 달리하여, 꼭 퀴어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첫사랑과 사랑하는 그 마음만을 들여다본다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엘리오와 올리버의 패션을 통해 영화를 들여다볼까 합니다. 여름날에 자연적인 요소들이 많았고,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고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고, 풀장에서 쉬고 낮잠을 자는 등의 활동들이 많았던 터라 남자 배우들의 탈의가 좀 많아서.. 좋았습니다만 비치웨어도 하나의 아이템으로써 간주해도 될 만큼 다양한 아이템들이 나왔습니다. 컬러별로 비치웨어들이 등장하다 보니 그 재미 또한 눈여겨보실만하겠습니다. (여름이 다 와가니까요! 준비... 하셔야 하니까요) 어디 비치웨어뿐이겠습니까. 여름 하면 선글라스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특히 유럽인들에게 선글라스는 패션 아이템이기 이전에 필수 생활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자외선 차단에 굉장히 민감하고 특히 눈을 보호하는 선글라스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엘리오의 선글라스는 Ray Ban classic wayfarer입니다. 심플하지만 클래식한 멋스러움이 엘리오의 여름 패션에 화룡점정이 되는 아이템이기도 했지요.


 올리버가 이태리로 도착하고 맞이하는 첫 오전, 올리버는 시원하게 머리를 쓸어 올리고 셔츠와 하프팬츠, 삭스 그리고 스니커즈와 선글라스, 마지막 배낭으로 매치해 누가 봐도 미국인 손. 님임을 스스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올리버 역의 아미 해머는 피지컬이 조각상처럼 훌륭한 배우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더욱이 기본 셔츠가 댄디하면서도 내추럴한 모습을 잘 소화해냅니다. 24살이라는 나이 설정에 패션의 표현이 매우 적절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한참 아름다운 보디라인을 가질 나이 24살과 특별하게 멋을 내지도 않았지만 젊은 청년의 모습을 깔끔하게 잘 표현한 모습이 영화 곳곳에 보이기도 합니다. 미국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엘리오에 비해 다소 멋을 부리겠다는 그의 의지는 소품에서 종종 보이곤 합니다. 클래식하고 심플한 매치를 즐기는 엘리오에 반해 올리버는 디테일과 장식성을 살짝 엿볼 수 있는 패션 아이템들이 매치되곤 합니다. 올리버의 선글라스는 레오파드 패턴의 장식성이 더해진 Parsol의 제품입니다. 빈티지하면서도 클래식함과는 또 다른 매력을 표현합니다.

 올리버와 달리 엘리오는 17살의 소년의 모습을 패션에서 많이 참고할 수 있습니다. 폴로셔츠를 즐겨 입고,  스트라이프 패턴의 기본 티셔츠들로 10대 소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수한 엘리오의 모습에서 풋풋한 소년의 싱그러움이 패션을 통해 잘 표현되는 듯합니다. 

물론 두 남자에겐 '셔츠'뿐 아니라 '쇼츠'도 눈여겨 봐야할 아이템되겠습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다보니 다양한 아이템을 보이진 않지만, 여름이나 휴가하면 떠올릴 맨즈웨어는 거의 다 볼 수 있는듯합니다. 두 배우 모두 훤칠한 키에 다리라인까지 예술이라 그런지 짧은 쇼츠도 너무나 각자의 개성에 맞게 소화를 잘 하였습니다. 아미 해머의 경우 남성적인 근육형의 다리라인이 쇼츠를 통해 더욱 건강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티모시 샬라메는 얇고 매끈한 다리로 풋풋한 17세 소년의 모습이 쇼츠를 통해 또다른 매력을 표현하였습니다.

                                                             Dries Van Noten 2018 S/S

E.Tautz 2018 S/S

올 여름 맨즈웨어의 쇼츠 열풍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여러 브랜드들의 쇼츠를 참고해보시고 올 여름 올리버와 엘리오처럼 트렌디한 썸머룩을 매치해보시길 바랍니다.


 두 사람의 패션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각자 추구하는 바가 뚜렷하다는 부분입니다. 댄디한 버튼업 셔츠를 즐기는 올리버와 반대로 편안한 폴로셔츠나 코튼 티셔츠를 즐겨 입는 엘리오의 패션에는 각자의 일관성이 있지만, 서로의 성격에 대한 나름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조심성이 많고 미래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과 두려움이 앞서는 24살의 청년 올리버에게 버튼업 셔츠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자신의 마음과 또 한편으로 한번 닫아버리면 열기 어려운 그를 대신 표현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직접적으로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티셔츠 한 장 훌렁하고 벗어던지면 되는 엘리오와는 달리 하나하나 단추를 풀어야 하는 올리버의 셔츠는 올리버의 조심성 많은 그의 성격을 표현하면서도, 감정만 앞세울 수 없는 올리버의 마음,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의 끝을 올리버로 인한 차단까지 연결 지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던 듯합니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며, 올리버는 말합니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서로 자신의 이름을 상대에게 불러줍니다. 이름의 의미와 상징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통해서도 이름이라는 것의 상징성과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나만큼의 존재로써 사랑하는 사람임을 서로 마음에 새기는 과정이었을까요. 그것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확인할 수도 있었으나, 또 한 가지 더 발견한 부분은 바로 올리버가 자신의 옷을 엘리오에게 선물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내가 입고 다니던 내 옷을 엘리오에게 선물했고, 마치 올리버에게 감싸 안겨있듯 신나게 옷을 받아 들고 가슴팍에 안아보는 엘리오의 모습까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와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엘리오의 모습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름과 달리 노출하나 없는 의상에 무수한 표정들의 패턴이 프린팅 된 드레스 셔츠를 입은 모습이 이전의 엘리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싱그러운 모습보다는 성숙한 청년의 모습도 언뜻 보이는 듯하고, 특히 프린팅의 무수한 표정들과 엘리오의 만감이 교차하는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여름의 계절과는 다른 겨울의 모습이 한 장면이었지만,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를 미묘하게 표현해주는 장면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엔딩은 짧았던 여름이 가고, 모든 푸른 것들이 새하얀 눈에 덮인 겨울로 막을 내립니다. 싱그러웠던 여름의 향기가 가시고 조용하고 싸늘한 겨울 어느 날, 올리버의 전화 한 통에 보고 싶다는 참고 참았던 그간의 마음을 꺼내어 놓지만, 더 이상 관계의 진전은 없음을 알리는 올리버의 말에 사무치는 아픔을 끌어안고 수화기를 내려놓습니다. 마음껏 아파할 수 없는 엘리오의 첫사랑과의 이별은 홀로 난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억을 되짚는 듯 또 한편으론 올리버라는, 또 다른 엘리오라는 사랑했던 사람을 꾸역꾸역 삼키기라도 하는 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끝이 납니다.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하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이 안에 있는 누군가를 잊기에는 왜 이리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엘리오는 사랑이 넘치는 부모 아래 자란 아이였고, 첫사랑이 남긴 첫 이별이었기에 아마 그 아픔은 누구보다 더 고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오의 아버지의 말처럼, 이별의 슬픔도 사랑의 기쁨처럼 느껴야 하는 감정입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감정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끝을 맞이하는 순간만큼 공허한 순간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끝은, 이별은 익숙지 않은 시간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감정도 이별이라는 감정도 경험을 하고 배워야 하는 감정이고 인간의 활동의 일부입니다. 과거의 시간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고, 또 다른 내일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우리에게는 끝을 수용할 줄 아는 단단한 마음도 필요합니다. 


이별은 온몸으로 느끼고, 당신을 내 안에서 비워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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