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과 무관심 사이

by DjGirin

뮤지션에게 더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악플일까, 무관심일까.


악플은 아프다. 하지만 최소한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뜻이다. 무관심은 아프지 않다. 그냥 텅 비어 있다. 아무도 없다.




수치화되는 음악


옫쏭은 SNS 시대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뭔가 하나의 실적처럼 돼 버리고 수치가 되죠. 이제 음악이 수치화 되는게 그게 조금 많이 힘든 거 같고."


조회수 몇 회. 좋아요 몇 개. 댓글 몇 개. 팔로워 몇 명. 음악이 숫자로 환원된다.


그녀는 'Show Me Your Love'라는 곡을 만들었다. 인터넷 세상에서 사랑받고 싶다는 내용이다.


"근데 이게 보여줘야 음악을 듣잖아요 사실은. 사람들이 들으려면 많이 노출이 돼야 되니까.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도 있다 생각을 해요."


필요한 부분. 인정한다. 좋아요와 댓글이 없으면 알고리즘에 밀린다. 알고리즘에 밀리면 아무도 안 듣는다. 그래서 수치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경 쓰면 지친다. 숫자가 오르면 기쁘고, 안 오르면 우울하다. 음악이 아니라 숫자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찐 관심


옫쏭은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사실 그럴 때가 있잖아요. 약간 조회수만 높을 때가 있고, 조회수가 낮은데 좋아요가 조금 더 높을 때가 있고, 아무것도 없는 댓글 한두 개 달릴 때가 있고."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제일 중요한가.


"저는 저장이라 생각해요. 좋아요를 안 누르더라도 내가 이거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거기 때문에. 그게 찐 관심이라 생각해요."


저장. 나중에 다시 듣겠다는 표시. 좋아요는 지나가며 누를 수 있다. 댓글은 의무감에 쓸 수 있다. 하지만 저장은 진심이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넣겠다는 의지다.


"좋아요는 사실 그게 뜨잖아요, 자기가 좋아요 누른 게. 근데 샤이하지만 뭔가 신경이 쓰인다. 이런 분들은 저장을 누르시더라고요."


조용한 팬들. 댓글은 안 달지만, 저장은 한다. 공연에는 안 온다고 했지만, 다 온다. 그게 찐 관심이다.




있는 것처럼 하기


클라베는 방송 초기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첫 방송 때는 아무도 안 들어오잖아요."


0명. 화면에 뜨는 시청자 수가 0명. 그 허탈함을 아는 사람만 안다.


"아무도 안 들어오니까 이제 있는 것처럼 하는 게 좀 중요하더라고요. 채팅 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게."


그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채팅 좀 쳐달라고. 친구와 친구의 친구가 채팅을 쳐줬다. 그러다 진짜 새로운 시청자 한 명이 들어왔다.


"한 명이 갑자기 들어오셔 가지고 막 그날에 막 너무 좋았다 이러고 한두 번 찾아오시다가 그 뒤로 이제 시청자가 세 명, 네 명, 다섯 명 이렇게 늘어나니까 안 오시더라고요 그분이."


첫 시청자. 이름까지 기억한다. '안녕 나는 맹구'.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클라베는 방송을 계속했다. 그리고 시청자가 늘었다.


무관심의 시기를 버텨야 한다. 0명일 때도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래야 1명이 오고, 10명이 온다.




처음 받는 악플


발악은 음악을 시작했을 때 악플을 받았다.


"그냥 헤드셋 마이크 있는 헤드셋에 녹음을 하고 그냥 간단한 믹싱 해가지고 막 유튜브에 올리고 그랬었는데, 와 완전 악플이. '이게 뭐냐 이거', '이거 정말 초딩이 만든 거 아니냐' 이런 댓글을 많이 받았어요."


초딩이 만든 거 아니냐. 그 말을 듣고 장비를 샀다. 부모님한테 마이크 사달라고 졸랐다.


악플이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상처가 되기도 한다. 발악의 경우는 전자였다.


그는 또 다른 경험도 이야기했다. 대학 힙합 동아리에서 활동할 때, 에브리타임에서 저격을 당했다.


"제 본명의 초성을 딴 거면서 저격했더라고요. 친목질을 너무 많이 한다, 약간 이런 식으로 댓글을 많이 달아서."


그 분노로 곡을 만들었다. '텍사스'라는 곡이다. 분노를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조용한 팬들


yemin은 팬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전 제가 팬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유튜브 가면 오실 수 없는 외국 팬분들이 되게 많으시고, 한국 팬분들을 보기 좀 어렵다고 생각을 했는데."


공연에서 물어봤다. 팬이면 손 들어달라고. 아무도 안 들었다.


"근데 그날 이후에 인스타그램에 제 라이브 영상이랑 저를 태그해 주시고 '오늘 되게 잘 들었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있었다. 팬들이. 그냥 조용했을 뿐이다.


"항상 꼭 올게요, 꼭 갈게요라고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이 없어서 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와 주셔 가지고 막 단독 콘서트가 막 매진이 되기도 하고."


말은 안 해도 온다. 댓글은 안 달아도 저장한다. 공연에 갈게요라고 안 해도 간다.


"우리 팬분들 도대체 어디 계시지?"


yemin의 물음이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있다. 조용히.




무관심의 시간


배성현은 스튜디오를 열었다. 1월 1일에 오픈했다.


"한 1월 4일까지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도 방문을 안 해 주시는 거예요."


4일 동안 아무도 안 왔다. 새해 첫날부터 4일 동안.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하지만 버텼다. 지금은 레슨이 잡히고, 세션 일이 들어온다. 무관심의 시간을 버텼기 때문이다.


인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이 시간을 거친다. 음원을 올렸는데 조회수 10. 공연을 열었는데 관객 3명. 방송을 켰는데 시청자 0명.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 그게 살아남는 자와 떠나는 자를 가른다.




악플보다 무관심


나도 둘 다 겪어봤다.


음원을 처음 올렸을 때 악플이 달렸다. '이게 뭐냐', '실력 좀 키워라'. 화가 났다. 하지만 뭔가 들끓는 게 있었다. 보여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반면 아무 반응이 없을 때는 달랐다. 공들여 만든 곡을 올렸는데 조회수 30. 좋아요 2개. 댓글 0개. 그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공허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악플은 상처를 준다. 하지만 무관심은 존재를 지운다. 뭐가 더 아프냐고 물으면, 솔직히 무관심이 더 아프다.


그런데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무관심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처음부터 주목받은 사람은 없다. 클라베처럼 0명 앞에서 방송하고, 배성현처럼 4일 동안 손님 없이 기다렸다.


그 시간을 버틴 사람들이 지금 여기 있다.




반응의 무게


옫쏭의 말이 계속 맴돈다.


"좋아요를 안 누르더라도 내가 이거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거기 때문에. 그게 찐 관심이라 생각해요."


좋아요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좋아요 100개보다 저장 10개가 나을 수 있다. 댓글 50개보다 DM 1개가 진심일 수 있다. 공연에 30명이 와도 그 중 5명이 다음에도 오면 그게 팬이다.


숫자가 작아도 괜찮다. 진짜 관심인지가 중요하다.




버티는 법


악플과 무관심 사이에서 버티는 법.


첫째, 무관심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안다. 클라베도 0명 앞에서 방송했다. 발악도 '초딩'이라는 악플을 받았다. 지금 유명한 뮤지션도 그 시간을 거쳤다.


둘째, 조용한 팬을 믿는다. yemin의 팬들처럼, 말은 안 해도 오는 사람들이 있다. 저장은 하지만 댓글은 안 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찐 관심이다.


셋째, 분노를 에너지로 쓴다. 발악처럼 악플에 화가 나면 곡을 만든다. 분노를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바꾼다.


넷째, 있는 것처럼 한다. 아무도 안 봐도 방송을 켠다. 아무도 안 들어도 음원을 올린다. 그러다 보면 한 명이 온다. 그 한 명이 열 명이 된다.




악플과 무관심 사이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악플은 아프지만 넘길 수 있다. 오기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무관심은 오래 가면 지친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싶어진다.


그래서 무관심의 시간을 버티는 게 중요하다. 그 시간을 버틴 사람만이 악플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악플이라도 받으면 최소한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뜻이니까.


옫쏭의 말처럼, 음악이 수치화되는 시대다. 하지만 수치 뒤에는 사람이 있다. 조회수 1은 한 사람이 클릭한 거다. 좋아요 1은 한 사람이 누른 거다. 저장 1은 한 사람이 내 음악을 자기 플레이리스트에 넣은 거다.


그 한 사람을 생각하자.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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