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곧 서울을 의미한다.
기획사, 공연장, 레이블, 프로듀서, 세션. 모든 게 서울에 있다. 지방에서 음악을 시작한 뮤지션에게는 선택지가 두 가지뿐이다. 서울로 가거나, 그 자리에서 버티거나.
지방에서 음악한다는 것
LGW는 군산에서 음악을 한다. 19살 래퍼다.
"제가 아직 지방에 살고 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배우기에는 아직 집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독학으로 랩만 혼자서 하고 있어요."
혼자 한다. 레슨받을 곳이 없다. 프로듀서를 만날 수도 없다.
"레슨이나 이런 것도 지방에서는 많이 구축이 수도권에 비해서 훨씬 덜 돼 있기 때문에 배우기도 어렵고 그런 거 같습니다."
온라인으로 소통해야 한다. 직접 만나면 바로 수정할 수 있는 것도, 온라인으로는 기다려야 한다. 소통 오류도 생긴다.
"지방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솔직히 좀 어렵죠. 온라인 프로듀서님이나 관계자분들을 온라인으로만 거의 소통을 하니까."
공연 기회도 적다. 서울의 규모와 비교할 수 없다.
"규모가 너무 차이가 많고 일단 지방에 있는 팀들은 거의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도 LGW는 방법을 찾았다. 지역 경연대회에 나갔다.
"근데 지방에서도 작은 소규모의 경연대회나 아니면 도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는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경연대나 도경연대에서 많이 나가 가지고 수상도 많이 했고."
그는 계획이 있다. 20살이 되면 서울로 간다.
"제가 20살이 돼서 서울로 올라오면은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이나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다짐 같은 거를 앨범에 담고 싶어요."
울산에서 서울까지
발악은 울산에서 래퍼로 활동한다. VMR에 출연하기 위해 SRT를 타고 서울까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에서 음악, 힙합 음악을 하고 있는 래퍼 발악입니다. 이제 곧 서울 상경하니까 여러분 기대하세요."
그는 서울 상경을 앞두고 있었다. 작업실에서 숙식하며 음악할 계획이다.
"서울대 입구 쪽에 실림 쪽에 작업실들이 좀 그래도 괜찮게 나와 가지고 거기에 숙식을 하면서 하지 않을까."
울산에서는 버스킹과 지역 공연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일단 울산 안에서는 지역 공연이나 버스킹이나 이런 무대들로 여러분들이랑 인사를 나눌 거 같고, 서울에 올라가고 하면 이제 클럽 공연이 될 수도 있고."
서울에 가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네트워킹 파티에도 참여할 수 있다. 기회가 다르다.
10만 원 들고 상경하다
정아리아는 울산 출신이다. 중학생 때 가수가 되고 싶었다.
"저희 어머니가 참 대단하신 게 돈 10만 원을 딱 쥐어주고 그 어린 중학생 애를 무작정 이제 서울로 가라고."
10만 원. 그게 전부였다. 주말마다 첫차를 타고 서울에 갔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왔다.
"울산에서 주말 아침 첫버스를 타고 가서 막차를 타고 오면 집까지 항상 새벽 4시에 도착을 해요. 거의 버스에서 10시간이 넘었으니까."
버스에서 음악 듣고, 조금 자고, 집에 와서 두 시간 자고, 월요일에 학교 갔다. 그 생활을 4~5년 했다.
"끝이니까 거의 버스에서 음악 들으면서 쪽잠 자고 집에 와서 두 시간 단잠 자고 월요일 날 학교 가고 한 그 생활을 한 4, 5년은 했던 거 같아요."
힘들지 않았냐고? 그녀는 답했다.
"근데 힘들만은 하는데도 그 가수가 되고 싶다. 음악이 너무 재밌다라는 생각이 있고 꿈이 있으니까 하나도 안 힘들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완전히 상경했다. 2평짜리 고시원에서 5년을 살았다.
"처음에 2평짜리 안 되는 여성전용 고시원에 창문도 없고 에어컨도 안 되는 거. 그 하얀 벽은 잊지 못하겠어요. 정신병원 같던 그 방."
정신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매일 아침 공원을 두 시간씩 뛰었다. 그리고 도서관과 연습실만 오갔다. 하루 12시간을 음악에 쏟았다.
대전에서 서울로
UL은 대전 출신이다. 대학에 붙고 나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근데 제가 원래는 대전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서울로 가야 되는데 당장에 이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죠. 집이나, 월세 어떻게?"
축하는 세 마디. 그다음은 현실 이야기다. 방은 어떻게 할 거냐.
"축하 세 마디 해놓고 너 방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자취는 아직 안 된다 막 이렇게."
그래서 쉐어하우스에서 3년을 살았다.
"그래서 쉐어하우스를 알아봐서 한 3년간 쉐어하우스에서 살았었어요."
알뜰살뜰하게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게 지방 출신 뮤지션의 현실이다.
엄마 간섭 피해 인천으로
커비는 포항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 특성화고를 다녔다. 엄마는 음악을 반대했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돈을 벌면서 음악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게, 멀리 취업을 나가는 거였어요."
경상도 안에서도 취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제일 멀리 나갈 수 있는 게 인천 영종도 정도였어요."
엄마한테 얘기 안 하고 원서를 썼다. 붙었다. 그제야 말했다.
"엄마 나 취업했어. 어디로? 인천으로. 엄마 표정이요, 저 아직도 기억나요. '아 얘를 어떻게 죽여버려야 되나' 표정이."
일주일 동안 설득했다. 결국 인천으로 갔다.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같이 취업한 친구들의 80%가 포기하고 내려갔다.
"타지 생활이 힘들다 보니까 정리하고 내려가신 분들도 있고. 같이 취업 나간 친구들도 진짜 한 거의 80%, 진짜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내려간 친구들도 있고."
커비는 버텼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엄마한테 큰 소리 친 게 있는데, 난 여기서 버텨야 돼."
왜 그렇게까지 버텼을까.
"이거 아니면 죽겠다, 약간 이런 느낌도 있었어요."
지금 그녀는 일산에 살며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포항으로 다시는 안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지역의 색깔
이매는 다른 접근을 했다. 지역 문화재를 음악에 녹였다.
"저희 지역에 제가 생각을 해보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송포 호미거리라고 하는 게 있는데요."
송포 호미거리. 그의 동네에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음악이다.
"지역마다 지역 문화재가 있어요. 송포 호미거리라고 하는 거는 저희 동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옛날부터 그러한 음악입니다."
그는 이것을 힙합과 섞었다. 국악과 랩의 퓨전.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음악이다.
서울에 없는 것. 지역에만 있는 것. 그것이 차별점이 될 수 있다.
내가 본 것
63명의 뮤지션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서울 밖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은 더 강해야 한다. 인프라가 없으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기회가 적으니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외로우니 더 단단해져야 한다.
LGW는 독학으로 랩을 익혔다. 정아리아는 10만 원 들고 버스에서 10시간을 버텼다. 커비는 이를 악물고 타지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로 못 가도, 가기 전이라도, 음악을 계속했다.
서울이 전부가 아니다
나도 한때 서울에 집착했다.
서울에 있어야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있어야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서울에 기회가 더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63명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이 전부가 아니다.
해일럽은 대구에서 훌륭한 콘서트를 만들었다. 이매는 지역 문화재로 차별화된 음악을 했다. 발악은 울산에서 버스킹과 지역 공연으로 팬을 만들었다.
인터넷 시대다. 음원은 어디서든 올릴 수 있다. 쇼츠와 릴스는 서울에서 찍어도, 대구에서 찍어도, 울산에서 찍어도 똑같이 퍼진다.
물론 오프라인 기회는 서울이 많다. 네트워크도 서울이 유리하다. 하지만 '서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
지방 뮤지션에게
서울 밖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첫째, 지금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라. LGW처럼 지역 경연대회에 나가라. 발악처럼 버스킹을 하라. 기회는 찾는 사람에게 온다.
둘째, 온라인을 활용하라. 커비처럼 쇼츠와 릴스로 음악을 알려라. 지역은 핸디캡이지만, 온라인에서는 평등하다.
셋째, 지역의 색깔을 살려라. 이매처럼 지역 문화를 음악에 녹여라. 서울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해라. 그게 차별점이다.
넷째, 상경을 준비하되 조급해하지 마라. LGW처럼 계획을 세워라. 정아리아처럼 돈을 모아라. 때가 되면 가라. 하지만 가기 전에도 음악은 계속해라.
서울 밖에서도 꿈꿀 수 있다.
꿈꾸는 곳이 어디든, 음악하는 사람은 뮤지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