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l Aug 23. 2018

리스보아, 리스본

PORTUGAL


리스본에 관해 말하자면, 나의 온몸으로 각인된 어떤 '느낌'이 존재한다. 바로 리스본의 강렬한 햇빛, 그로 인해 마치 아이스크림이 되어 녹는듯한 더위를 느꼈던 때. 무더운 여름날의 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나는 리스본의 그날을 떠올린다. ‘리스본의 낮’은 오로지 강한 태양의 열기로 가득하다. 찬란한 빛의 기운을 받아선지 이곳은 노란색과 유독 잘 어울렸다. 트램도 노란색이긴 하지만, 지붕이나 담벼락 그리고 완연하게 핀 꽃송이의 색도 그랬다. 보기에 편안한, 맑고 연한 노란빛의 색 말이다. 세상을 골고루 어루만지는 햇빛을 닮아간 것일까. '리스본'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온통 노랗고, 뜨겁다.


Lisboa


 포르투갈의 제1도시 리스본으로 기차를 타고 넘어왔다. 포르투에서의 나날이 너무나 좋았던 나머지 리스본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한 나라의 수도라면 반드시 모험을 해봐야 하지 않겠나. 오랜만에 다시 전 세계의 여행자를 만날 수 있는 숙소, 호스텔이다. Goodmorning Hostel은 기념품 가게 안에 위치해 있었다. 숙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만 했고, 또다시 시작된 캐리어와의 전쟁. 장기 여행자에게 있어 최대 크기의 캐리어는 말 그대로 커다란 짐덩어리다. 여행이 무르익을수록 비워지기보다는 한 겹 더 두껍게 채워지는 캐리어. 그렇게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자 엄청나게 밝은 스탭 언니가 우리를 맞아준다. 그녀는 내가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기도 전에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의 여권을 확인하자 역시나, Kil에 반응을 했다. 호스텔 무비룸에 영화 <Kill Bill>이 있으니 밤에 보라며. 이쯤 되면 포르투갈에 <Kill Bill>이 크게 유행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하필 또 꼭대기에 위치한 오두막 도미토리다. 그런데 분명 4인 혼성 도미토리를 예약(방의 정원이 네 명인데 우리가 네 명이니 한 방을 독차지하겠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했는데 아마 잘못 생각하고 예약을 한 거 같다. 올라가 보니 족히 12명은 함께 잘 수 있는 크기의 오두막이었다. 걸스카우트 캠핑을 가면 머무는 통나무집 다락방 같았달까. 더군다나 침대는 제각기 다른 위치로 배정받아서 서로의 잠자리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침대가 둘씩 혹은 넷씩 붙어있었기 때문에 얼굴 모르는 옆사람과는 거의 같이 자는 기분이었다. 땀이 마를새 없이 또 한바탕 혼란의 시간을 겪고, 결국은 체념했다. 각자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는 침대를 골라 짐을 풀고 리스본의 야경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포르투에 며칠 있었다고 리스본에서 돌아다니는 일은 순조로웠다. 서울의 면적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리스본 단기 여행자에게 이곳은 생각보다 크고, 드넓었다. 가고 싶은 곳이 굉장히 많아서 아무래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오늘은 코메르시우 광장 주변에서 야경을 보고, 내일은 호스텔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 위주로 본 후, 마지막 날에는 알파마 지구에 갔다가 LX factory 그리고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보는 걸로! 나는 신기하게도 시간적 제약이 있을수록 내 취향과 기호에 가까운 여정을 밟게 된다. 역사적 유적지나 건축물보다는 서점과 카페, 도서관, 미술관, LP바, 빈티지 가게 위주로 말이다. 지금껏 나의 여행법을 스스로 점검해본 결과, 나만의 공간을 찾고 현지의 문화를 향유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오래 머물고, 생각할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언급한 장소 또한 어느 정도 신뢰를 하고, 안 가보면 찝찝하기에 가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열에 일곱 번은 생각한 정도만큼 좋았고 나머지는 더 좋았거나 때론 나빴다. 그래서 내가 더욱 우연과 운명에 맡기는 여행을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는 여행. 그것이 내게는 '잘' 하는 여행이다.



 리스본의 태양이 유독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길이 꼬불꼬불한 데다, 경사가 급한 언덕을 연달아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도시의 전망을 아우르기 위해선 높이 올라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그 길을 등반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구경하고 싶게 생긴 작은 갤러리와 소품 상점이 가는 길마다 놓여 있고, 감각적인 그림이 허름한 벽을 도화지로 삼고 있어 한시도 지루하지 않았다. 마치 골목을 휩쓸고 다니며 탐험을 하는 개구쟁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확고한 개성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리스본에는 엇비슷하거나 통일된 디자인 혹은 스타일이 없었다. 제각각의 색이 짙어 이곳의 예술가는 그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창의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습 혹은 답습이라는 단어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무언가 빠르게 변화하고 소멸하고, 재창조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줄레주를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한 이탈리안 예술가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살아 있는 오아시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리스본 특유의 예술적 활기는 여행자에게도 신선한 활력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포르투, 오포르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