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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 모양이 달라도 사랑은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마케팅 실수로 아쉽게 흥행에 실패한 작품을 뽑자면 <판의 미로>를 들 수 있다. 참 잘 만든 영화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처럼 마케팅을 했고 이 슬프고도 지독한 잔혹동화는 욕을 쳐 먹어야만 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스타일은 어둡다. 하지만 불쾌한 어둠이 아니다. 오히려 눈길을 사로잡는 어둠이다. 그림도 보면 기분만 나쁜 소위 ‘잡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잔혹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작품이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런 아름다움에 빠져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1960년대미국과 소련이 경쟁을 펼치던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당시 미국과 소련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로 지구를 양분한 건 물론 우주에서도 누가 먼저 나아가는지 경쟁을 펼쳤다극심한 경쟁은 인간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쓸모 있는 인간과 쓸모없는 인간사회 체제에 잘 맞아 떨어지고 자신들이 원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은 대접을 받으나 그렇지 않은 인간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무시당한다이 작품에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첫 번째는 괴생명체와 교감을 나누는 언어 장애인 청소부 엘라이자다그녀는 고아에 장애인이다이웃의 화가같은 청소부인 젤다와 서로를 보듬어 주지만 그녀는 말을 할 수 없기에 완벽한 공감을 이루지 못한다엘라이자와 교류하는 화가 자일스는 동성애자이며 친구인 청소부 젤다는 흑인이다이들은 좋게 말하면 사회의 소수자들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당시의 시선으로는배척당해야 될 존재들이다.



이들과 대비를 이루는 인물이 스트릭랜드다그는 실험실의 보안책임자이며 백인 우월주의자이다그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줄 알며 원하는 걸 해내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그리고 정체를 숨긴 채 이런 스트릭랜드와 대립을 이루는 인물이 있다바로 호프스테틀러(드미트리)이다그는 소련의 스파이나 미국인인 척 이 연구실에 잠입해 있는 연구자이다영화는 이 다섯 인물을 통해 형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냉전의 시대를 생각해 보라그 시대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형태 때문에 싸움을 반복했다이념과 사상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딘가 존재할 거라 여기는 간첩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간첩 또는 좌파로 몰려 숙청을 당했다이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으면서 사람들은 막상 눈에 보이는 인간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형태가 같은 인간임에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좋아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을 가했다.
  
가장 이성적인 영역이라는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거꾸로 인간의 사상과 사고는 가장 비이성적인 영역을 향하던 시대감독은 이 시대에 괴생명체 하나를 떨어뜨렸다이 생명체는 인간과 전혀 다른 생김새를 지녔지만 교감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처음 이 괴생명체가 만난 이는 스트릭랜드다스트릭랜드는 손가락 두 개가 잘리는데 이후 이 두 개의 손가락이 결합 했음에도 썩어 문드러지고 결국 스스로 이를 잘라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의 문제는 결국 결합되지 못하는썩어 문드러져 냄새가 풀풀 풍겨 서로 갈라서는 잘라내질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시선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여튼 백인 우월주의자인 이 남자에게 괴생명체가 반감을 표하는 반면 그와 엘라이자는 서로 교감한다앞서 이 괴생명체가 발견된 지역에서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다는 점에서 이 생명체는 어느 정도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생명체였을 거라고 추측한다그가 스트릭랜드를 공격한 이유는 스트릭랜드가 지닌 폭력성차별성에 대한 반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이 괴생명체는 형태를 바라볼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그게 엘라이자가 그에게 사랑을 느낀 이유다.

엘라이자는 괴생명체가 자신을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모르는 눈빛이라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고 말한다첫 장면에서 보여준 물속에서의 자위어린 시절 그녀가 물가에서 발견된 고아라는 물 페티쉬(?)를 유발할 만한 요소는 논외로 치고 바라보자면 그녀는 순수한 교감을 느끼는 괴생명체에 마음을 빼앗겼다 볼 수 있다이 부분에서 두 사람이 처음 교감을 하게 되는 계란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계란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미국을 발견한 미국의 아버지 콜럼버스다콜럼버스의 신대륙(미국발견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첫 번째 차별을 가져왔다당시 미 대륙을 북아메리카 대륙을 향했던 백인들은 화합과 교감이 아닌 배척과 학살로 원주인민 인디언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했다그리고 인디언들은 제한된 구역에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차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그저 피부색과 문화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계란과 관련된 콜럼버스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그는 신대륙 발견그거 뭐 별것도 아니잖아먼저 발견했을 뿐이지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계란을 세워보라고 말했다사람들이 모두 실패하고 그는 계란 끝을 깨 계란을 세웠다. ‘이게 뭐야이렇게 하면 우리도 했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남이 하고 난 다음에 하는 건 쉽지만 처음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의 계란 일화는 정해진 틀과 규칙에 맞춰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 틀에서 벗어나라 말하고 있다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은 흑인이야’ ‘저 사람은 동성애자야’ ‘저 사람은 장애인이야라는 정해진 틀의 기준을 자꾸 들이대면 진전을 이룰 수 없고 차별과 멸시를 동반하게 된다마치 완전한 형태의 계란을 세워야 해라는 강박관념에 빠지는 것이다왜 사회는 인종과 종교사상과 기호의 차이로 사람들을 나누며 차별하려 드는 걸까그 이유는 사람들을 모두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제목인 물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 보자물에는 일정한 형태가 없다물의 형태는 물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하지만 동그란 그릇에 담겼다고 동그란 물이고 네모난 그릇에 담겼다고 네모난 물이 아니다다 같은 물이다사람 역시 마찬가지다피부색이라는 그릇에종교라는 그릇에 담기는 모양만 다를 뿐이지 다 같은 인간이다사랑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재산외모학력 등등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 아닌 마음이라는 본질적인 형태를 바라보라사랑의 형태란 결국 물처럼 어떠한 그릇에 담겨도 그 본질이 지워지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엘라이자는 괴생명체를 구하자는 자신의 말에 반대하는 자일스에게 말한다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라고이는 차별과 조롱멸시에 대해 같은 사람이라면 당하지 말고 저항하라는 감독의 강인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기예르모 델 토로는 물이 물이듯 인간 역시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있다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역시 어두운 영상은 기예르모 델 토로라는 점이다괴생물체가 인간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징그럽고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다그게 정상일 것이다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가 몸을 섞으니 말이다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아름답다특히 화장실을 물에 잠기게 한 뒤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근래 본 영화 속 장면들 중 손에 뽑을 만큼 잘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또 괴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아름답게 풀어내기 위한 텔링의 과정이 참 좋았다고 본다단순히 멜로의 구조였으면 지루해질 수 있었던 이야기를 사회 소수자인 각각의 인물들의 결합으로 단단하게 묶어낸 건 물론 호프스테틀러 박사가 스파이라는 점을 활용한 구조는 이야기에 흥미를 더해주었다.(개인적으로 이 캐릭터가 없었다면 정말 심심한 영화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긴박감과 카리스마를 보여준 마이클 섀넌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아쉬운 점은 너무 동화 같은 전개를 위해 상투적인 장면들이 등장한 점이다사실 작품에 동화적인 색깔을 입히려면 상투적인 색은 어쩔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동화에서 봤던 텔링이 등장해야 관객들이 이 작품은 동화의 느낌을 가지고 있구나하고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장면이 엘라이자가 괴생물체와 함께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상상하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전형적인 판타지 장면이라 아쉬움이 컸다특히 소재나 표현에 있어 굉장히 독특했던 작품이었기에 더욱 말이다아마 괴물과의 사랑이라는 점어두운 색체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강하고 진하며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그러면서 감성은 깊은 심연에 빠진 듯 전신을 적신다눈보다는 마음으로 더 크게 울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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