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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크레이지> - 사랑, 하긴 한 걸까

처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미친 것만 같다.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지며 그 사람 생각만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사랑에 있어 미쳤다고 말하는 또 다른 순간이 있다. 흔히 연인들끼리의 대화 중 ‘자기 미쳤어?’라는 대사가 나올 때, 그 순간은 진심으로 사랑을 외쳤던 상대방이 자신에게 소홀해졌을 때 튀어나온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사랑의 두 순간을 잡아낸다. 밤새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애정이 넘쳐 미쳤던 순간, 재가 되어버린 아침처럼 차갑게 식어 미쳐버린 순간을 말이다.


영국인 애나와 미국인 제이콥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학생 비자가 끝난 애나가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그토록 찬란하게 타오르던 사랑이 시간과 공간으로 인해 서서히 꺼지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현실의 장애물에 빠져 있다. 그들은 누구 하나가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서 살 수도 있지만 사랑이 모든 일의 '우선'이 될 수 없는 현실이기에 그들은 장거리 연애를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서로 침대에서 떠나기 싫어하고 공항에서 울며 매달렸던 진한 사랑의 불꽃은 점점 꺼져만 간다. 오랜 비행이,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전화가, 내가 깨어있는 낮과 네가 깨어있는 밤이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각자의 삶속에서 상대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불거지면서 그들의 사랑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통제를 견뎌내지 못한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멜로영화는 어떤 ‘한계’를 통해 두 주인공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이 작품에서 그 한계는 개인의 꿈과 일상이다. 두 주인공은 이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사랑이란 게 그렇다. 일에 치이고 꿈을 생각하다 보면 ‘과연 이 감정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감정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수많은 사람들과 미치도록 사랑할 수 있고 또 미친놈처럼 그 감정이 식을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의심한다. 내가 사랑한 건 그 사람일까, 아니면 순간일까. 그 사람이었기에 사랑에 빠진 걸까, 그 순간이 아름다웠기에 사랑이라 착각한 걸까. 영화는 두 주인공에게 장애물을 주고 두 주인공은 이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여느 사랑이 그러하듯 그들은 불행에 빠지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사랑이 실패했을 뿐이다.


멜로영화에서의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이 가지는 연출의 장점은 음악과 장면이다. 그의 영화 속 음악들은 감정을 기폭시키는 역할을 너무나 충실히 이행한다. 이 음악이 더 힘을 받는 건 장면이 좋기 때문이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영화들은 대사가 주는 감동보다 장면이 주는 감동이 더 진하다.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눈빛, 서서히 사랑에 빠져드는 표정의 변화, 손짓 하나에도 가슴이 떨리는 느낌을 대사 없이, 음악과 장면을 통해 섬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물들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서서히 사랑에 빠져가는 순간부터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감정까지, 그 모든 것을 공간과 표정, 그리고 행동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상이 가진 미학을 보여주는 부분이 좋다. <이퀄스>, <우리가 사랑한 시간>, <뉴니스> 등 그가 구축한 멜로영화관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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