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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론가가 될 순 없다

영화 글을 쓰는 사람은 크게 세 가지로 이름이 나눠진다. 리뷰어,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이중 평론가의 이름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평론’이라는 단어가 전문성을 지닌다는 점 때문에 많은 시네필이 평론가가 되길 희망한다. 매년 영화전문 잡지 씨네21에서 뽑는 영화평론가 공모에 많은 사람들이 응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평론가에 대한 로망은 스타 평론가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 보고 싶은 영화를 쉽게 구하기 힘들었던 90년대의 경우 정성일 같은 평론가가 라디오에서 소개해 주는 영화가 시네필이 꼭 봐야 할 영화의 기준점이 되었다. 씨네21의 평론가 평점과 프리뷰가 영화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었을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수익적인 측면에서 평론가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이동진 같은 스타 평론가는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객석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그 영화를 촬영한 감독이나 배우가 아니더라도 관객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평론가의 존재가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이런 GV의 경우 전문가가 아니라면 제의를 받기가 쉽지 않다.     


GV는 수익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 수익성은 팬에서 비롯된다. 팬은 돈을 쓰는 존재다. 돈은 내가 꼭 알고 싶은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블로거나 유튜버는 조회수가 많다 하더라도 내 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높은 시청률을 지닌 예능프로의 출연자가 팬미팅을 열었는데 막상 신청자는 터무니없이 적은 경우가 생기는 경우와 같다.     


평론가란 직함은 영화에 대해 더 전문적으로 알고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만든다. 한 평론가의 뚜렷한 정체성은 팬을 만들기도 한다. 황진미 평론가의 경우 이념과 젠더 이슈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이런 측면이 오히려 글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만들어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평론가의 명확한 색깔과 스타일은 팬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평론가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론가에게는 자신의 글을 실어줄 공간이 필요하다. 본인이 만든 공간이 아닌 남이 제공해주는 공간이 말이다. 이 공간의 측면이 바로 팬과 연결된다. 자신의 글로 맨 처음 사로잡은 팬이 잡지사 또는 신문사의 편집장이며 그 공간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걸 입증한다.     


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씨네21이나 영화제 등을 통해 평론가로의 등단을 꿈꾼다. 블로그나 SNS를 통해 자신만의 평가기준을 확보하고 비평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만 평론가가 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건 아니다. 영화는 문학과 달리 평론가의 길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꾸준히 비평을 이어가다 보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순간이 다가올 때가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를 비롯해 정성일, 이동진 평론가 모두 학부시절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고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기준과 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작게는 블로그부터 독자투고를 받는 오마이뉴스 등 진입장벽이 낮은 단계부터 꾸준히 도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공간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평론가란 거창한 명함을 얻지 못하더라도 일관성 있는 전개와 공감을 얻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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