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해석과 감상

영화를 감상한 후 관객이 인터넷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찾아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해석의 측면이다. 다양성영화나 실험영화의 경우 몇 번 관람을 해도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에 숨겨진 의미나 장치가 전문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때로는 방향성에 있어 길을 찾기 힘들게 설정한 영화도 있다. 자기가 서 있는 길이 미로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작품마다 정치색을 보여준다. <박하사탕>에서는 전두환 정권을, <시>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버닝>에서는 이명박 정권을 다뤘다. 하지만 <박하사탕>을 제외하고는 그 의미를 단 번에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럴 때 해석이 곁들어진다면 장면이 지닌 의미가 정치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감상의 측면이다. 예술의 감상에는 감정적인 측면이 작용한다. 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특정한 감정을 얻게 된다. 이 감정을 혼자만 간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과 나누고 싶은 이들도 있다. 내가 이 감정을 어떻게 느끼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글로 표현해줄 사람을 찾게 되고 그 글에서 공감을 얻는다.     


어떤 영화를 보고 재미를 느꼈을 때, 왜 재미를 느꼈는지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주변에서 ‘그 영화 어때?’라고 물었을 때 ‘재밌어’라고 말하는 건 쉽지만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재밌어’라고 말하는 건 어렵다.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해주기 쉽지만 어떤 점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답변을 원할 때는 더더욱.     


내가 느낀 감정을 조리 있게 정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는 장면인데 말이나 글은 설명이다. 복합적인 시각의 인상을 하나하나 부분적으로 나눠 설명하는 작업은 복잡할뿐더러 상대에게 내가 느낀 만큼 이해를 시키지 못하면 의미 없는 고민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내 마음이란 일기장을 훔쳐본 듯한 글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독자설정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 전략은 제목에서 비롯된다. 해석이 필요한 영화는 해석 또는 호기심을 유도하는 제목을, 감상이 우선이 되는 영화는 공감을 살 만한 제목을 택하는 게 좋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를 보고 해석을 찾아보는 사람이 드물 듯 실험영화에서 공감을 찾는 사람도 드물다. 영화에 따라 글의 방향성을 다르게 잡을 필요가 있다.     


꿈과 환상, 현실의 경계가 옅고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작품들의 경우 리뷰 제목에 ‘해석’을 더해주면 더 높은 조회수를 얻을 수 있다. 틴에이지 로맨스 영화의 경우 ‘달달함’이나 ‘청량감’ 같은 감정적인 공감을 유도하는 단어를 제목에 더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배우가 유명한 영화는 배우 이름을 넣어주며 연기를 칭찬하는 것도 좋다.     


새로운 시도나 개념을 보여주는 영화,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영화일수록 해석을 필요로 한다. 이런 영화는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궁금증을 지니고 극장 밖을 나서게 만든다. 호불호의 영역에 도달하는 느낌표보다 물음표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풀어주는 리뷰가 유효하다.     


스스로를 못났다 여기는 뚱뚱한 여자가 자신이 날씬해졌다 착각하는 이야기를 다룬 <아이 필 프리티>는 공감을 유도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여성이 왜 자신이 날씬해졌다고 착각하는지를 뇌의 작용과 연관해 쓴다면 세상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란 시선을 얻을 것이다. 외모보다 내면의 당당함을 추구하는 이 영화에 같이 공감하는 글을 보고자 하지, 세세한 해석을 보여주는 글은 원하지 않는다.     


특정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영화는 그 감정을 다수의 관객이 느끼게 유도한다.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쾌감에 중점을 둔다. 때문에 내가 느낀 감정을 더 공감이 가게 정리한 글을 찾고자 한다. 최근 다양성 영화가 작품의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야구소녀>의 주수인럽, <69세>의 봄볕단 등 서포터즈는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들끼리 하나로 뭉쳐 영화에 대한 더 큰 공감을 얻게 된다.     


이런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솔직한 감상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이런 점 때문에 좋았다’라는 문장도 서슴없이 사용하는 게 좋다. 특별한 표현보다는 대중적인 표현을 택하는 게 더 마음을 울린다. <야구소녀>를 예로 들면 ‘최초의 여자 프로 야구선수를 꿈꾸는 주수인의 열정이 마음을 울렸다’ 같은 평범한 문구도 영화가 주는 감정으로 인해 감정을 자극한다. 영화에 어울리는 시나 노래 가사를 첨부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영화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필요하다.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파악하는 것만으로 글의 방향성은 정해진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 내가 흥미를 지니는 걸 남들도 똑같이 느낀다. 남과 다른 걸 찾기보다는 남들이 찾는 걸 어떻게 더 명확하게 해석하고 공감가게 표현할지 생각해 보자.     

이전 05화 모두가 평론가가 될 순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