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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을 위한 희생

독창성은 ‘나만의 글’과 연관되어 있다. 가끔 글과 관련된 고민 상담을 이메일로 받는다. 그 중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꽤 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은 확고한데 자신이 없기에 상담을 하는 것이다. 왜 자신이 없을까? 스스로 내가 가는 길이 대중성과 거리가 멀다는 건 알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싶은 모순된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한다. 주변 지인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인정해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전문가란 명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대중성은 멀어도 독창성이 있다면 팬을 모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요소인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으면 가능성은 더 커진다. 개봉을 앞둔 영화가 리뷰 포스터를 따로 만드는 건 이렇게 많은 전문가가 이 영화를 인정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한 명의 전문가라도 내 글의 가능성에 대해 호평을 들려주길 원한다.     


다만 이 과정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전문가는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그런 교육의 틀 안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그들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증이 있지만 모든 변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하지 않는다. 백인 영화인의 잔치였던 아카데미가 흑인 영화, 지난 해 <기생충>의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까지 나아간 건 급진적인 변화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까지 연달아 남우주연상 수상에 실패했던 덴젤 워싱턴이나 퀴어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작품상 수상에 실패한 <브로크백 마운틴>,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흑인 배우와 영화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점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이 꾸준히 역사적으로 쌓이면서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순간에 접어들기 전까지 집단은 변화를 택하지 않는다. 영화리뷰나 비평에 있어 지금의 흐름이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면 새로움을 지향할 이유가 없다. 영화기자나 평론가는 일정한 교육을 받는다. 규격에 맞춰 글을 쓰는 방법을 알기에 어디서도 일할 수 있다. 교육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그만한 값어치를 하길 원한다. 대중과 평단의 취향에 맞춰 글 쓰는 방법을 배웠는데 자신들의 손으로 혁신을 이룰 필요는 없다 여긴다. 이는 모든 일과 직업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생각이다.     


이런 길을 택할 경우에는 타협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유명한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라면 모를까, 온전히 내 글과 생각을 받아주는 곳은 찾기 힘들다. 데스크가 개입을 하고 수정을 가한다. 이 수정은 독창성을 발휘한 지점을 향한다. 새로운 것이기에 거부감이 든다. 이 거부감을 안고 가려면 이해를 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꾸준해야 한다.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반응이 오지 않아도 내 스타일대로 계속 글을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누구나 영화 글을 쓰는 시대에 나를 향한 관심이 너무 늦게 올 수도 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이 요구된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결국 도착하기 마련이니까.   

  

다음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독창성은 대중적으로 영화를 보는 시점에서 벗어났을 때 형성된다. 대중의 경우 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 보지만, 평론가는 글의 깊이에 따라 한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하기도 한다. 남들이 찾지 못한 지점과 감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많게는 10번 넘게라도 관람할 수 있는 영화 관람을 즐기는 애정이 필수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열심히 하면 언젠가 남들이 내 글을 봐줄 거야’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다가는 좌절을 맛본다. 아무도 내 글을 안 읽을 수 있다, 그래도 내가 글 쓰는 게 재밌어서 쓴다는 마음이 있어야만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은 결국 타협을 택하게 만든다. 짝사랑이 실패하는 건 결국 상대의 마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쟤는 글로 돈을 번다’는 말을 들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고, 나보다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인기를 끌면 열등감이 피어나기 마련이다. 미래를 기다리는 마음은 내일도, 모레도 변화가 없으면 조급함을 부른다. 이럴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 영화리뷰가 아닌 일기를 쓴다는 생각이다.     


일기는 나만 읽는 글이다. 오늘 본 영화를 일기에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다 보면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나보다 남의 입장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든다. 혼자 글을 계속 써 나가는 이 고독한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 때, 나만의 글을 위한 희생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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