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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을 담아낸 글

2018년 <블랙 팬서>가 개봉했을 당시, 이 영화의 아카데미 작품상 노미네이트를 두고 수많은 의견이 등장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흑인 히어로이자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며 다양성의 가치를 확연하게 담아냈단 점에서 찬성을 주장하는 글과, 히어로 영화가 지닌 영화적인 깊이의 한계를 지적하며 반대하는 글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주장을 담아낸 글은 영화 또는 영화와 관련된 주제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다.     


흔히 오피니언이라 말하는 이런 글을 쓸 때는 두 가지 점을 생각해야 한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주제로 글을 써야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거대 언론사에서 기사를 통해 화제를 이끌었다. 기자가 쓰는 기사 하나가 사회적인 논쟁을 가져온 것이다. 기자가 프레임을 만들고 조종할 수 있었다.     


반면 커뮤니티를 통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된 현재에는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으는 화두가 인기 있는 오피니언의 주제가 된다. 가수 비가 그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노래 ‘깡’을 통해 인기를 얻자 다수의 언론사들은 이와 연관된 새로운 열풍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비와 임수정이 주연을 맡았고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지만 관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가져와 ‘깡’처럼 놀이문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깡’은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놀이문화의 산물이다. 엄마가 던져주는 장난감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던져버리는 아기처럼, 네티즌들은 더는 기자가 짠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다. 자기들이 놀고 싶어 하는 문화를 찾고 커뮤니티라는 마감시간이 없는 놀이공원에서 끊임없이 의견을 생산하고 또 생산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네티즌의 이목이 집중된 영화나 사건을 찾아 의견을 제시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글을 읽는 독자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주장에 공감할 수 있다. 주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서두를 길게 가져갈 필요도 없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 아이 옆에 와 더 좋은 장난감을 준다며 갖고 놀던 걸 뺏기보다는 함께 흔들면서 좋아해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견에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 보면 오피니언을 몇 번이고 재생산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의견이 반박을 당하자 반박 또 반박을 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어떻게든 이겨 먹겠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가 반박한 내용을 다시 반박하고 했던 말을 되풀이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근거도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 당시에는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들었지만, 세월이 지난 후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거처럼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글은 다시 평가를 받는 시기가 온다. 내 글의 주장과 근거는 완벽하지만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대로 두는 게 좋다.     


리들리 스콧이 <블레이드 러너>를 평론가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며 알기 쉽게 영화를 새로 만들거나 하지 않았던 거처럼 언젠가 재평가 받을 생각으로 글을 내버려 두면 된다. 글은 남들에게 보여 지는 순간 자신의 것이 아니다.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내 주장과 의견에 내가 만족을 지니면 그만일 뿐, 남을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건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해가 지지 않는 소모전과 다를 바가 없다.     


오피니언은 실험적인 글이기도 하다. 분석이 아닌 생각이나 의견인 만큼 감독이나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이나 관객이 동조하기 힘든 주장을 펼칠 때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리뷰의 주관성과 비평의 객관성을 적절하게 혼합한 근거다. 주장은 주관의 영역이다.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 근거는 객관을 지녀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주장이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해도 근거가 뚜렷하다면 다시 재조명 받을 확률이 높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피니언의 주장도 달라진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경우가 생긴다. 확고한 자신만의 생각과 이에 따른 근거를 지니고 있으면 언젠가 재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터넷 공간에 남긴 글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새로운 가치를 지니는 순간을 맞이한다. 타인의 의견을 따라가거나 대립각을 세우는 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공고하게 다지는, 쓰러지지 않는 탑을 쌓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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