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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항의, 아닌 건 아니라고 해라


층간소음 항의에 힘들어 하는 위층들이 많다. 이런 위층의 특징은 아래층의 부탁을 너무 다 들어주려고 하다 보니 자신이 스트레스 받는 유형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다. 층간소음을 내고 싶어서 내는 집은 없다. 생활패턴이나 발걸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고치는 게 쉽지 않다. 여기에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집 자체가 울림이 심한 구조라면 아무리 조심해도 층간소음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위층에 층간소음 문제를 항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장 큰 두 가지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뛰는 것이다. 이 기억은 여전히 정말 큰 악몽으로 남아있는데,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위층 남자아이가 계속 집안 곳곳을 뛰어다녔다. 자라고 해도 ‘싫어~ 안 잘 거야~’라며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밤새 들려 미치는 줄 알았다. 위층은 여전히 커다란 발소리를 내고 바닥에 무얼 떨구는 소리를 많이 내지만 이때처럼 집안 곳곳을 무법천지로 뛰어다니는 소음은 내지 않는다.     


두 번째는 게임 소리다. 아이들의 체력은 어른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전에는 게임이 혼자 조용히 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여러 명이 뭉쳐 무진장 시끄럽게 한다. 오전 11시에 게임을 시작한 애가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게임을 한다 생각해 봐라. 아래층에 그 떠드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말 그대로 미친다. 여전히 위층은 밤에 떠들고, 애들을 죽도록 때리기도 하지만 게임 소리는 세 번의 항의 끝에 밤새 들리지 않는다.     


위층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지나치다 여기는 두 가지에 대해서는 양보했다. 허나 앞서 언급했던 발소리나 바닥에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에 대해서는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하게 했다. 아래층이 확실하게 ‘어떤 소리가 문제다’라고 말하면 위층은 판단을 해야 한다.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면 자신의 일상 자체를 바꿔야 한다. 여기서 아래층에 의해 집안 구조 자체가 바뀐 아래층 사례를 들고자 한다.     


이 사람의 경우 아래층의 항의 때문에 층간소음 매트를 두 겹으로 깔았다고 한다. 그래도 항의가 들어 올까봐 두 딸과 함께 소파 위에서 조용히 영상을 보고 있다는 글에는 항의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층간소음은 꼭 위층에서만 들리는 게 아닐 수 있으며, 층간소음에 시달린 아래층은 환청이나 난청을 경험한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자그마한 소리도 크게 인식한다.     


이런 예민한 신경에 맞춰 살다 보면 위층은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은 닫으면 안 되니 다 열어둬야 하고, 씻는 것도 밤늦게는 씻지 못한다. 아래층 기분 맞추려다 자식들 기분을 못 맞춰 자식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소리는 차단하는 게 맞되, 일상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항의를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 더 고심해볼 필요가 있음을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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