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므네모시네가 영화를 만들 때
미진은 병원을 찾았다. 감정은 전염된다. 민들레 홀씨가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듯 웃음은 상대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우울도 마찬가지다. 축 처진 눈과 굳게 다문 두 입, 초점 없는 눈동자는 고스란히 재연된다. 부정적인 감정과 맞서 싸우는 동안 몸은 지쳐버렸다. 작가들과의 상담은 점점 짧아졌고, 명지에게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아졌다. 진석이 밤새 들어오지 않은 다음 날, 지쳐버린 미진은 회의 내내 본승의 말이 거슬렸다.
-작가치고 전문성이 부족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작가라면 조금 더 상상력이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기는 작가가 쓴 거 치고는 표현이 좀 밋밋하게 느껴지죠?
작가, 작가, 작가, 그놈의 작가! 작가가 그리 대단한 건가. 왜 다들 작가만 되면 생각하고, 고민하고, 진중해지는 거야. 머리가 무거워 지니 심장이 버티지 못하고 우울증 따위에 굴복해버리는 거라고.
-작가치고 못쓰긴 하네요. 무명에 자기 돈으로 출판한 제 남편이 더 낫겠어요.
옆에서 듣던 명지가 은실한테 이르지 않았다면 넘어갔을 것이다. 대표는 미진을 부르더니 문제가 있으면 쉬거나 병원에 가라고 했다. 고객을 상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건 패를 보여주고 치는 포커라며 꼬집었다. 미진은 후자를 택했다.
-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에요. 남편 분 문제랑 연결되어 있으니 한 의사가 부부를 동시에 담당하는 게 더 유용하겠죠.
메주를 치우지 않고 환기를 시켜봐야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석이 남편으로 존재하는 한 미진의 감정은 뿌연 안개처럼 눈앞을 가릴 것이다. 혜진에게 함께 치료를 받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럼 다음 주에는 남편이랑 같이 올까요?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두 분 치료는 따로 진행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직 남편 분이랑 래포(rapport), 아니지, 래포는 무슨. 관계도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거든요. 환자랑 의사의 관계는 보통 세 가지로 나눠져요. 친밀하거나, 형식적이거나, 적대적이거나. 그런데 남편 분은 세 가지 다 해당하지 않아요. 툭하면 거짓말을 하거든요. 약을 안 먹고 먹었다고 하고, 키운 적도 없는 개를 키웠다고 말해요. 어찌나 허술하게 거짓말을 하는지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가 알아서 오류를 말해버려요. 동정을 구하고 싶으면 적대적으로 변해서 공감해 주는 의사로 바꾸면 되고, 빨리 치료를 받고 싶으면 친해지면 되는데 그러질 않아요. 목적이 있다면 형식적으로 시간만 보낼 텐데 그럴 이유는 없어 보이고요.
-선생님께서는 남편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보시는 군요.
-상담을 하다 보면 자기가 왜 우울한지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무의식에 원인이 있죠. 자기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감정을 분출하는 거예요. 정신분석학에서 흔히 말하는 방신의 일각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고요. 주로 과거의 가족문제와 연인문제, 타인에게 받은 큰 상처가 기억의 보호 작용 때문에 잔상만 남은 경우죠. 기억은 주체를 보고하고자 불리하거나 아픈 과거는 지우려고 해요. 다만 휴지로 닦은 얼룩은 흔적을 남기죠. 반면 이유를 아는 사람은 적당한 때를 노려요.
-말하는 것만으로 해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거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거나. 그 말씀인 거죠? 남편이 거짓말을 한다는 건 말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고요.
-뭐, 극단적인 경우에는 끝까지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인간은 신이 아니잖아요. 조물주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같은 조물이 도움이 될 거라 여길 순 없겠죠.
혜진이 텀블러에 담긴 물을 마시는 동안 미진은 이곳에서 상담을 받았을 남편의 모습을 상상한다. 한 편의 소설을 쓰듯 머리를 굴려 이야기를 창작하는 그의 얼굴은 이전의 행복과 다른 피로로 가득했을 것이다. 눈앞에 놓인 한 명의 독자마저 속이지 못할 만큼 무력해진 이야기꾼이 현재의 진석이다.
-이럴 경우에는 일기장을 가져오라고 하거나 그림을 그려보라고 해요. 글이나 그림은 의식적으로 방패를 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남편 분이 만들었다는 영화를 모두 봐 봤어요. 아쉽게도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내 분이시니 무언가 발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두 분의 기억이나, 남편 분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던 말이 영화에 투영되어 있을지 모르죠. 뭐, 남편 분 영화니까 다 보셨겠지만, 아마 지금 보면 베일에 가려졌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공장을 향한 건 1년 만이다. 진석은 미진을 자주 회사로 불렀다. 결과물을 보여주는가 하면 함께 일할 배우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녀가 편집장으로 승진하면서 가끔 저녁회식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남편의 직장동료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입구부터 그녀를 반긴 택호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마른 체형에 살이 더 빠지니 여치처럼 보였다.
-어머어머, 내가 진짜 투자자들 설득하느라고 요즘 죽을 맛이라니까. 여기 사람들은 다 창작자라 행정관련 업무는 나 밖에 못해, 진짜. 제발 부탁인데 우리 감독님 좀 빨리 데려와 줘요. 플리즈~!!
건평은 작가였다. 실용서적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인천의 영화열정에 반해 그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예술가 두 사람이 뭉치니 자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투자자가 금방 떨어져 나가다 보니 저예산 영화 중심으로 촬영을 했다. 그러다 진석을 발견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그의 가능성을 본 인천이 제안을 준 것이다. 연출이라고는 배워본 적 없는 진석의 영화는 조잡했다. 평단과 관객에게 욕을 먹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상영 중간에 관객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막상 GV 자리에 남은 관객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심한 욕을 뱉기 싫어서인지 질문도 없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죠. 그런 녀석이 춘사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니 이제 어깨 좀 펴고 다닐 수 있겠다 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자, 여기 폴더에 담긴 게 영상 전부예요.
조그마한 편집실에서 미진과 인천은 함께 앉아 진석의 영화를 감상한다. 첫 번째 단편영화는 자살에 관한 이야기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여학생과 그런 여학생을 좋아하는 남학생. 남학생은 창밖으로 떨어지는 여학생을 잡으려 하지만 끝내 구해주지 못한다. 20분이 안 되는 짧은 런닝타임과 단순한 구성에도 어설픈 티가 많이 나서 당황했던 기억을 미진은 떠올린다.
두 번째 단편영화는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한 여대생이 실종되고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돈다. 그 범인으로 애증 관계에 있던 남자선배가 지목된다. 남자선배가 사고사를 위장한 살인을 당한 다음 날, 그 여대생은 돌아온다. 그냥 한 번쯤 사라지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끝나는 영화는 진석의 소원대로 정말 예쁜 여배우를 오디션으로 뽑아 만들었지만 긴장감이 부족한 전개와 허무한 결말로 미진부터 욕을 했다.
세 번째는 첫 장편영화였다. 장편이라고 해봐야 60분이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진석 본인이 쓴 단편소설을 각색했는데 장르는 범죄다. 한 외로운 여성이 살인목격자를 찾는 잘생긴 형사를 만난다. 그 형사에게 반한 여자는 증인인 척 행동한다. 사건이 진척되지 않으면서 형사가 만남을 줄이려는 기미를 보인다. 이에 여자는 스스로 살인범이 되기로 결정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후반부에 여자가 기르던 앵무새가 인간이 되어 여자를 죽이고, 형사 앞에서 형사의 모습으로 변하는 괴상한 작품이다. 결말부의 의미를 물었을 때 자신도 모르니 좋은 해석을 달아달라는 진석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미진이다.
네 번째 영화는 런닝타임이 80분으로 늘어난 공포영화다. 원룸에 혼자 사는 여대생이 밤마다 위층의 소음을 듣는다. 집주인에게도 말해보고, 위층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보지만 소음은 해결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본 방법으로 천장도 쳐보고 우퍼 스피커도 사지만 그럴수록 여자는 오히려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최종결론이 살인이라니. 이건 너무 극단적이잖아. 미진의 말을 진석은 반박했다. 정말 층간소음을 당해보면 세상에서 나 혼자 고통 받는 기분이라고. 살인은 어쩌면 값싼 복수일 수 있다는 말에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다섯 번째 영화는 꼴 보기 싫은 괴작 중의 괴작이다. 영화를 틀기 전 미진은 잠시 숨을 골랐다.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안달루시아의 개’를 오마주하고 싶었다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구토가 쏠린다. 아니, 왜 면도칼로 눈동자를 가르는 건데. 진석은 눈은 귀와 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준다고 말했다. 그 눈이 갈라지는 장면은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화를 할 때는 꼭 상대의 전신을 바라보세요, 미진 양.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답니다. 조롱조로 말하는 진석에게 이번 작품도 정말 졸작이라고 쏘아붙였다.
여섯 번째 영화는 납치극으로 진석의 영화 중 평점이 가장 낮다. 국회의원과 조직폭력배의 딸이 함께 납치를 당한다. 이들을 납치한 건 고등학생 찌질이 두 명으로 만화책을 보고 충동적으로 계획을 실행한다. 두 아버지는 각자의 방법으로 범인을 잡으려다 충돌을 반복한다. 아니, 왜 국회의원이랑 조직폭력배가 싸우는 건데. 애초에 상대가 될 리가 없잖아. 진석은 손가락을 흔들었다. 자기가 뭘 몰라서 그래. 돈? 권력? 명예? 그딴 거 다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휴지조각이야. 짐승 같은 힘이 모든 걸 대신한다고. 그래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만화책에서 본 어설픈 계획이 제대로 시행될 리가 없잖아. 대한민국은 CCTV 공화국이라고! 그건 영화적인 설정이라 치고 넘어가지. 진석의 말과 달리 평단과 관객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왜 결말에서 두 아버지는 범인들과 함께 딸들을 죽인 걸까. 미진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일곱 번째 영화가 그 유명한 춘사 영화제 수상작이다. 주말에 예능을 보며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던 진석은 시나리오를 다 썼다고 말했다. 뭐야, 이제는 하다하다 안 되니까 대충 하기로 결심한 거야? 아, 몰라. 그냥 대충 아는 영화 7개쯤 섞었어. 내일까지 시나리오 가져 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어쩌냐. 그러면 집중이라도 하던가. 이게 뭐야. 배역 이름도 강호동? 이수근? 지금 장난해? 아 몰라, 썅. 이상하면 이사님이 알아서 수정해주겠지. 혹시 아냐. 정성스런 수타면보다 아무 재료나 넣고 볶은 잡탕밥을 더 좋아할지.
-아, 탄생 비하인드가 그랬군요. 어쩐지. 진석이가 입버릇처럼 말했거든요. 내 아이들 중에 씨가 다른 놈이 하나 있다고.
-결과가 좋았기 망정이지, 참. 그이는 항상 그랬던 거 같아요. 100%로 끝낸다는 느낌이랄까. 남에게 잘 보이고 싶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더 많은 걸 뽑아내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자기가 만족하면 그만이었어요. 그래서 더 행복해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촬영장에서 볼 때마다 그 친구 얼굴이 항상 밝았어요. 자기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카메라로 찍히는 게 신기하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처음 상업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이 걱정이 되었어요. 상업영화는 타협을 봐야 하잖아요. 그 친구 스타일에 과연 상업영화가 맞을까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자 분들이 다 만족하셨어요. 그래서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줄 알았죠. 본인도 들떠 있었고요.
-정말 우울해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죠?
-가면을 잘 쓰는 친구도 아니잖아요.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이라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뭐, 잠수를 탈거라 생각도 못했죠.
심연을 바라본 잠수부는 더 깊은 고독을 갈망한다. 온전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세계로 다가가길 원한다. 설령 그 방법이 죽음일지라도. 진석은 심연이 양수와 같다고 했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태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거라며 부러워했다. 설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건 아닐까.
-이건 뭐예요?
미진은 제목이 적혀있지 않은 시나리오를 집어 든다.
-아, 이번 작품 초안 시나리오에요. 진석이가 처음에 제목을 정하지 않았거든요.
미진은 페이지를 넘긴다. 익숙한 이야기에 이질적인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여주인공 이름이 선아 아니었어요? 여긴 왜...
-아, 여주인공만 이름을 바꿨어요. 이사님이 입에 잘 안 달라붙는다고 해서요. 제수씨가 생각하기에도 도희보다는 선아가 더 어감이 좋지 않나요?
그것은 오래된 기억이다. 문학시상식 이후 뒤풀이 때 미진은 가족약속을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떴다. 1등을 했다며 축하해주는 선배들의 술잔이 부담이 되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진석이 보이지 않았다. 보나마나 삐쳐서 몇몇 후배들을 데리고 따로 술자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 여겼다. 호프집 문을 나서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도희 너무 좋지. 내가 도희 진짜 좋아하잖아. 아니, 사랑한다, 사랑해. 사랑한다, 도희야!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상장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그 얼굴은 진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