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굉장히 특별하게 여겨졌던 사람이 사실 별 거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던 남자애가 그랬으며 대학교 2학년 때 만났던 여자애가 그랬다. 남들과 너무나 달랐기에 특별해 보였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뭔가에 특출 난 능력이 있었던 것도, 인격적으로 높은 수준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냥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했고,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런 몇 가지 무기로 그 사람을 굉장히 특별하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퀜틴은 어린 시절 이웃에 이사 온 마고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어린 시절 종종 어울리던 두 사람이었지만 마고는 모험을 좋아하는 반면 퀜틴은 그런 마고의 계획에 동참하지 못한다. 그에게 마고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마고는 종종 이상한 암호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가족들은 마고가 사라지면 ‘하, 또 사라졌네.......’ 할 뿐이다. 어느 날 마고가 퀜틴을 찾아온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데 또 다른 친구가 이를 비밀로 하고 있다는 복잡한 사연을 들먹이며 같이 복수를 하자는 마고. 퀜틴은 즐거워하며 그 계획에 동참한다. 항상 동경하던 그녀의 ‘계획’에 그가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마고는 사라진다. 슬슬 염증을 느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마고를 찾기로 결정한 퀜틴. 그는 친구들과 함께 마고가 남긴 암호들을 해독하고 그녀가 ‘페이퍼 타운’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마고를 찾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 퀜틴과 친구들. 하지만 페이퍼 타운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두 주인공이 참으로 공감이 가면서 동시에 짜증이 났다. 퀜틴은 전형적인 순정남이다. 그에게 마고는 동경의 대상이며 함께하고 싶은 미지의 존재다. 종종 학생들을 보면 그런 애들이 있다. 이 집단은 걔를 별로 좋아하고 잘 대해주지 않는데 어떻게든 그 무리에 섞이려고 애쓰는 애들. 이런 무조건적인 동경을 마고에게 보이는 게 퀜틴이다. 마고는 전형적인 어그로꾼이다. 그녀는 그 나이대 애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한다.(대표적인 예가 혼자 해변가로 여행을 떠나 며칠을 지내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사실 때문에 마고가 무언가 특별한 존재로 보인다.
마고를 어그로라고 칭하는 이유는 꼭 힌트를 남긴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가 혼자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다면 그건 자유로운 영혼이다. 힌트를 남긴 건 남들한테 ‘나 여기 있어!’라는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다. 그래서 퀜틴이 마고를 찾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가 보일 반응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퀜틴에게 호의적이며 함께 지내도 된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세상을 만들었고 그 세상으로 들어올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외로운 어그로녀. 난 이게 마고의 정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런 존재가 지독하게 순수한 순정남 퀜틴이 된 것이다. 만약 결말마저 마고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면 난 이 영화가 정말 싫었을 것이다.
결국 먼 길을 돌고 돌아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찾은 퀜틴.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마고의 어그로에 빠져서 그 오랜 시간을 차를 타고 달려간 너의 순정이 참으로 갸륵하나 넌 그저 어그로에 빠졌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마고의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만약 내가 사라져도 마고가 날 찾으러 와 줄까?’ 난 이 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고가 맺는 관계는 잘못되었다. 진정한 ‘친구’라면 곁에 있어줘야 하고 시험을 해서는 안 된다. 헌데 마고는 자신의 소통법이라며 어그로를 끌고 이를 즐긴다. 자신이 남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면서 남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길 바란다. 참으로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소통을 하는, 하, 참 좋아하기 힘든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