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아와 함께 하는 여행
꽤 좋은 호텔일 거라 기대했었는데, 뚝뚝이 큰길을 지나 한적한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좀 의아했다. 한참을 가서 내려 준 곳은 어둑한 비포장 도로였다. 비좁고 허름해 보이는 리셉션에서 안내를 받아, 자그마한 열대 나무들이 에워싼 수영장을 지나니, 조금 더 나아 보이는 비슷한 형태의 수영장이 또 하나 보인다. 사진에서 본 것과는 영 다르다.
먼저 도착해서 내게 문을 열어준 키아는 평소와 달리 많이 침착해 보였다. 보통 때 같으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안고 폴짝폴짝 뛰었을 텐데, 피곤했나?
3시 40분이면 씨엠립에 도착했을 텐데, 7시 넘어 호텔에 도착했다는 걸 보면, 사연이 긴 것 같다.
입국 수속을 하는데, 그곳 관리가 아주 무례한 태도로 “돈 있어요? 있음 보여줘 봐요”라고 했단다.
내가 왜 돈을 보여주어야 하느냐고, 너희 나라에 돈 쓰러 온 나를 왜 범죄자 취급하느냐고, 내가 이집트인이라서? 당신이 유럽이나 미국에 가보라고, 당신이 지금 내게 하는 것과 똑같이 그들이 당신에게 할 거라고.
키아는 그렇게 소리 지르며 그 앞에 돈을 던졌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범죄자처럼 바라보았다고, 아무도 자기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키아가 느꼈을 그 막막함과 수치심, 억울함 등이 그대로 느껴져서 우는 키아를 안아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 위로를 받아들일 여유도 없는 것 같았다.
평상시에도 키아는 국적으로 인해 부당한 차별을 받는 고통과 분노에 대해 자주 얘기했었지만, 매번 반복적으로 분통을 터뜨리는 그녀에 대해 조금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늘 이랬었구나 하는.
다른 사람 같으면, 규정이 그렇다니 분하고 속상해도 마음속으로 삭였겠지만, 키아는 그러지를 못한다. 그녀는 매번 폭발하고 매번 절망한다. 혁명기에 태어났다면 그녀는 최전선에 선 혁명가가 되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으러 밖에 나가 보았지만 여긴 번화가와는 떨어진 곳이라 그냥 돌아와, 키아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빵과 치즈로 대신했다. 그녀가 많이 우울해해서 내 마음이 좀 무거웠다. 호텔도 어쩐지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고, 세면대와 변기 물도 잘 내려가지 않아 개운치 않았다.
키아는 이 나라가 싫다고, 봐서 내일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면 그냥 라오스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도 맥이 풀렸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게 키아다. 기복이 심한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해서,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감정의 영향을 받게 한다.
사실 그 점은 내가 최근에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조금 힘들었던 부분 중의 하나다. 진폭이 큰 그녀의 감정 기복과 표현에 압도되어 버릴 때가 있다.
캄보디아 여행이 잘 풀릴 것 같지 않다.
우선 리셉션에 내일 일정을 위한 뚝뚝을 예약해 두었다. 오전에는 앙코르와트 주변의 어떤 사원을, 그리고 오후에는 똔레삽 호수의 썬셑을 보러 간다.
아침 8시쯤 뚝뚝을 타고 투어에 나섰다. 1시간 30분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 바람을 맞으며, 사방이 트인 뚝뚝을 타고 가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먼지바람이 거세게 얼굴을 때리고, 몸에 힘을 잔뜩 준 채 울퉁불퉁한 길을 오래 달리다 보니 춥고 지친다.
무너져 내린 건물의 돌덩어리들이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그 위로 엄청나게 큰 나무와 뿌리들이 그것들을 뒤덮고 있다. 돌들은, 그리고 건물의 무너진 뼈대들은 검게 퇴색되어 있고, 그 위로 푸른 이끼들이 내려앉아 있다.
우린 사진도 찍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도 좀 나누면서 오전 투어를 마쳤다.
사원을 나오니 과일 가게가 있어서 거기서 코코넛을 하나씩 먹었다. 즙이 500ml는 들어있는 것 같다. 즙을 다 마신 후에는 안의 육질을 파서 먹는다.
키아는 코코넛이 영양가가 높아서 라오스에서 매일 한 개씩 먹는다고 했다. 1달러밖에 안 한다.
아이들 셋이서 과일을 팔며 흥정을 했다. 키아는 이 어린아이들이 나와서 이렇게 호객을 하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에 또 분노했다. 아이들은 제 이름을 각기 알려 주면서 우리의 이름도 물었고, 한 아이는 캄보디아어로 자기 이름을 써서 보여주었다.
키아는 한쪽 팔을 내밀면서, 거기에 캄보디아어로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셋이 모두 다가와 한 마디씩 참견을 하면서, 키아의 팔에 이름을 썼다.
팔 위에 상형 문자 같은 것을 쓰니, 나름 멋스럽기도 하다.
키아는 그 아이들 중 똘똘해 보이던 여자애를 붙들고 말했다.
“넌 지금 이곳이 아니라 학교에 있어야 해. 여기서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 때가 아니라,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할 때야. 너희 부모님에게 그렇게 말해. 지금 내가 한 말을 꼭 기억해.”
그러자 그 소녀는 자기가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돈을 좀 달라고 했다. 키아는 실소를 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그 소녀가 키아의 말을 잊지 않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될 날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