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트래킹 가는 날, 큰길에서 픽업 차를 기다리는데 나처럼 차를 기다리는 한 커플이 있었다. 아마 체크 아웃을 했는지, 커다란 배낭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트렁크에 그들의 배낭을 실으려 보니, 좁은 그곳을 열 자루도 넘는 바나나가 꽉 채우고 있었다. 백 팩을 넣을 자리를 마련하다 보니 자꾸 바나나 자루들이 떨어졌다.
여자는 뒷자리에, 남자는 운전석 옆에 앉았다. 그는 가는 내내 기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여행에 대단히 적극적인 자세를 갖춘 남자였다.
차에 탈 때 보니 앞 좌석에 또 한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둘 모두 용모가 수려했다. 다음으로 중년의 프랑스인 커플이 탔는데 여자가 내 옆에 앉았다. 내 옆에 앉게 된 부인이 말수가 적은 것은 영어가 서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창백할 정도로 얼굴이 흰 청년이 탔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간 후에, 기사는 우리를 한 시장에 내려주면서 물이나 모기 스프레이 등의 트래킹에 필요한 준비물을 사라고 했다. 알고 보니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녀는 커플이 아니었다.
여자는 네덜란드인이고 이름이 유타인데, 몸집은 좀 있었지만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우린 잠시 얘기를 나누며 시장을 함께 돌아다녔다. 그녀가 뭔가를 사러 길을 건너갔을 때, 그녀 옆에 앉아있던 키 크고 잘생긴 청년은 혼자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물과 식사는 제공될 것이기 때문에 물은 사지 않고 모기 스프레이를 샀다. 프랑스인 부인과 시장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그녀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영어로 잘 설명을 못하더니, 그냥 나를 그쪽으로 데리고 가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내가 온 얼굴에 웃음을 담아 고맙다고 하니, 그녀도 환한 미소로 답했다.
시장을 돌아본 후 가이드는 우리를 2일과 3일 팀으로 분류해서 각기 다른 차에 태웠다. 내가 속한 2일 팀에는 아침에 유타 옆에 앉아있던 잘생긴 청년, 맨 마지막에 탔던 프랑스 청년, 두 명의 독일 걸, 40대 초반의 이태리 커플, 그리고 드러난 팔이 온통 문신으로 뒤덮인 프랑스 청년 그룹 3명이 함께 탔다.
내 앞에 앉게 된 그 잘생긴 청년도 프랑스인이었는데, 이 차의 멤버가 마음에 드는지 얼굴에 활짝 생기가 돌았다. 나중에 알게 된 그의 이름은 파블로였다. 그 옆 자리 청년은 클레멘트.
클레멘트는 파블로와 얘기를 시작하더니, 내내 입심 좋게 프랑스어로 자기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짐작하기로 여행담이었다.
처음에 좀 호응하던 파블로는 이내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다. 그는 나와 마주 앉아서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했다.
차는 한참을 달리다 멈추었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이미 도착해 있는 3일 팀과 합류했다. 유타와 폴란드에서 온 30대 초반의 남자, 그리고 아침에 내가 차에 탈 때 기다리고 있던 큰 배낭 커플이 그들이었다.
그곳에 도착해서야 물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 없이 이 땡볕에 트래킹을 한단 말이지.
그래도 한 동안은 걸을 만했고, 얼마 가지 않아서 작은 폭포가 나왔다. 가이드가 폭포를 향해 올라갔다. 폭포 안으로 길이 있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서 그냥 기다렸지만, 나는 가이드가 간 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폭포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 보니,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한참 사진과 셀카를 찍는 동안 파블로와 클레멘트가 지나갔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 내려가는 도중에 저쪽 길에서 나타난 파블로와 마주쳤다.
“이름이 뭐야?”
내가 묻자 그는 화들짝 반기면서 파블로라고 했다. 그도 내 이름을 물었다. 우리 둘이 내려가자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크!
한참을 가다 가이드가 사람들을 쉬게 하고, 칼로 나무를 얇게 깎더니 공기총을 만들어 쏘면서 몇몇 사람들에게 쏘아보도록 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가서 물가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파블로가 내 쪽으로 와서 앉았다. 점심은 볶음밥 같은 것이었는데, 바나나 잎에 쌓여 있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꽤 많은 양인데도 다 먹었다.
물이 없어서 어떡하나 했는데, 파인애플이 후식으로 나왔다. 밥을 먹으면서 내 앞쪽에 앉은 파블로에게 몇 마디 말을 붙였다. 그는 영어를 잘 못했다. 내가 무슨 말인가를 했더니, 잘 못 알아듣고는 알아들은 척, ‘칫’ 하는 게 귀여웠다.
그가 아주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생김새가 내 남동생과 비슷하다. 아랍계 프랑스인인가? 남동생 별명이 ‘아랍 왕자’인데, 그러고 보면 우리 가계도 그쪽 계통과 섞인 건가?
물 대신 파인애플을 양껏 먹고 다시 이동했다. 이후로 이어진 길은 상당히 힘든 코스였다. 지쳐서 더 못 가겠다 싶을 만할 때, 카렌 부족 마을에 도착했다. 별다를 건 없었다. 왜 그곳을 방문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실매듭과 목걸이 등이 든 상자를 들고 와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폴란드 남자가 목걸이 한 개를 샀고 대신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마치 그가 산 목걸이로 사진 찍을 권리를 얻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는 악의 없이 선량한 사람 같다. 그는 사진 찍는 동안 연신 ‘beautiful’을 외치며 그들의 모습에 경탄하기도 했다. 조금 푼수 기가 있다고 할까.
자기 대신 무거운 백 팩을 메고 와준 한 명의 가이드에게 맥주를 한 캔 사주고 자기는 물을 샀다. 물이 없던 나도 그곳에서 시원한 물을 사서 양껏 마셨다.
다시 이동했다. 막바지 언덕을 오르고 나서는 내리막이었다. 작은 폭포에 이르러 그곳에서 수영도 하고 쉬라고 했다. 그러나 막 뛰어들고 싶을 만큼 물이 맑지도 깊지도 않았다. 듣기로는 여기서 모두 수영을 즐긴다는데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 치앙마이 트래킹(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