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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마주한 성벽 도시,
카르테헤나

- 콜롬비아

by Annie


카르테 헤나 공항의 택시 정류장 앞에는 택시 티켓 판매 창구가 있었다. 센트로에 간다고 했더니, 영수증에 13.2페소가 찍혀 나왔고, 대기 중이던 택시에 바로 오르라고 한다. 얼떨떨하다. 택시비가 정말 저렴한 데다 바가지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 좋은 시스템이다. 우리 돈으로 오천 원도 채 안 되는 가격이다.


깨끗하고 근사한 거리에 택시가 서더니, 그곳이 내 호스텔이라고 했다. 구석진 곳의 문으로 가려고 했더니, 그쪽이 아니라 열려있는 멋진 바 레스토랑을 통과하면, 그 안에 호스텔 데스크가 나온다고 했다.

‘호스텔 입구가 이렇게 근사한 거야?’


간단히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은 후, 호스텔을 나섰을 때는 5시 30분이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상점가를 지나 그 끝에 성벽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거리는 화려하고, 건물들의 이층에는 담쟁이넝쿨처럼 늘어뜨려진 색색의 꽃과 식물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곳은 분명 콜롬비아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쯤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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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걷다보니 골목이 뻥 뚫리며 그 앞으로 성벽 같은 것이 보이고, 그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대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그리 높지도 않은 그곳으로 올라갔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성벽을 따라 거대한 야외 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바에 앉아있거나 그 옆 성벽에 기대서서, 이제 막 노을이 지려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나도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바다를 향해 자리 잡고 섰다. 바람이 머리칼을 마구 흩트렸다. 옆에 서있던 한 중년 여자가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했다. 잘됐다. 나도 찍어 달래야지.

역광이라 몇 번 실패한 나는 내 폰과 그녀의 폰으로도 번갈아 찍어보았지만, 그녀의 폰으로 찍은 사진은 결국 잘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해가 떨어지고, 해가 진 후의 광경이 더 아름다울 거라 생각한 나는 조금 더 그곳에 머물렀다. 다른 쪽 성벽도 따라 걸어보았는데, 노을은 그때까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다시 오던 길을 거슬러, 그 거대한 야외 바로 갔다.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 잔 해야지 마음먹었다.


바에 빈자리는 없었지만, 난 두 여자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가서 의자만 한 개 쓰겠다고 청했다. 그리고는 의자를 바다 쪽으로 돌리고 앉았다. 내가 그 여자들과 일행인 줄 알았는지, 내게 메뉴를 들고 오는 웨이터도 없었다.

난 그렇게 그곳에 앉아 어둑해지는, 그러나 여전히 황금빛 노을이 짙게 남아있는 바다와, 라이브 트럼펫 연주와, 그 연주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왁자한 소리들을 한껏 즐겼다.

내일은 이곳에 와서 꼭 한 잔 하며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즐겨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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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따라 걸어가면, 멀리 아름답게 불이 밝혀진 성 지붕 같은 것이 보였다. 그곳을 향해 내려갔더니 광장이 나왔다. 광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몇 사람이 줄 서있는 빵 부스 앞에 나도 줄을 섰다.

3페소를 주고 사 먹은 갓 구운 빵은, 안에 들어있는 페타 치즈 같은 것이 밖으로 거의 넘쳐 나오고 있었다. 맛이 무척 좋았다.

오늘 저녁은 거리 음식을 찾아 먹어야겠다. 코코넛으로 만든 경단을 한 팩 샀는데, 한 개 남기고 다 먹었다가 새벽녘에 속이 쓰렸다.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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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들어섰더니, 아까 함께 노을을 보며 사진을 찍었던 그 레이디가 바에 앉아있었다. 우린 서로 반가워하며 합석했고 그녀는 모히또를, 나는 맥주를 한 병 시켜 마시며 저녁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작은 병맥주 하나를 마시는 동안 그녀는 세 잔의 모히또를 마셔서 기분 좋게 취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 몬트리올에서 왔기 때문에 역시 영어는 서툴렀다. 그녀는 스페인어도 할 줄 알았다. 현재 교사로 일한다고 했다. 우리는 페이스 북 친구를 맺고, 좀 전에 내 휴대폰으로 찍어서 더 잘 나온 그녀의 사진을 메신저로 공유했다.


여행하면서 비슷한 연배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심정적으로 좀 편안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특히 그런 사람들을 몇몇 만났다. 그러고 보니 모두 캐나다인들이었다. 캐나다의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해, 비교적 가깝고 물가도 싼 중남미를 여행하는 캐나다의 중년과 노년들. 내게도 싼 이곳의 물가가 캐나다 달러를 환전해 쓰는 그들에게는 얼마나 싸겠는가.


이곳 바에서는 모히또 한 잔에 20페소(7,000원)인데 그녀는 3잔이나, 거기에다 샌드위치까지 시켜서 먹는다. 그녀는 내 맥주 값까지 내주었다. 극구 사양하는 내게 그러면 멋진 사진 값이라 여기라며. 그녀는 100페소(35,000원)가 넘는 돈을 계산했는데, 마치 우리가 만 원 정도 쓰는 것과 같았을까?


우리는 쿠바에 대한 이야기, 남북한, 한국인들의 생활, 태국과 라오스 여행 등에 관한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나중에 그녀는 좀 취했다. 그녀는 한 30년 전에 쿠바에 갔었는데, 쿠바인들은 가난하기는 하나 교육 수준이 높았고,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었다고, 남미의 다른 나라에 가보면 그곳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그건 그렇다. 미국이 쿠바의 목을 그렇게 조르지 않는다면, 쿠바가 훨씬 나아질 텐데 하며 우린 안타까워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 못살게 들들 볶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격렬하게 공감했다.


루프 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녀가 졸린다고 먼저 들어가고 난 좀 더 있다 가겠다고 했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더니 얘기를 시작했다. 한 40분 정도를 혼자서, 그중 대부분을 마리화나의 의학적 효능에 대해서 쉼 없이 얘기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마리화나가 거의 전역에서 합법화되었다고, 어린 애나 젊은이들이 재미로 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중년을 넘어 허리나 다리 등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탁월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암세포를 죽이기도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생전 처음 들어본 얘기라 처음에는 좀 흥미로웠는데, 나중에는 지치고 피곤해졌다. 그러나 이제 내려가 봐야겠다고 말하려고 끊고 들어갈 틈도 없이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최악의 대화법이다.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기만 하는 것.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그의 말을 끊으며 그자리를 떠났다.


내 룸은 12개의 침대가 있는 도미토리였는데, 나중에 보니 그도 그 방의 입구 쪽을 쓰고 있었다. 이후로 난 그를 보면 슬슬 피해 다녔다. 그는 누구든 붙들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말이 고픈 사람 같았다.

저렇게 나이들지 말아야지 하는 또 하나의 표본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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