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오전에 할 일 목록이다. 어제 예약한 탱고 쇼 티켓 찾아오기, 웨스턴 유니언 뱅크에 가서 한국에서 보낸 돈 찾아오기, 그리고 그쪽이 한국의 명동 같은 곳, 플로리다 스트리트라고 하니까 한 번 돌아보기, 또 그 은행가 근처에 알렉산더의 식당이 있으니 찾아가 보기.
이것들 모두 완수했다. 환율은 1달러 당 81페소, 한국 식당의 76페소나 거리의 73페소보다 좋다. 송금 수수료를 제하면 2-3만 원 정도 득을 봤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조차도 페소로 환산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어쨌든 수중에 돈이 두둑하다. 너무 많아 사실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그것이 골칫거리일 정도다. 다행히 지금 묵고 있는 호스텔은 무척 안전한 곳이다.
토요일에 알렉산더와 함께 돌아보았던 그 거리는 그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그때는 주말이라 은행과 상업 지구의 점포들이 모두 쉬기 때문에 인적도 없고 썰렁했었는데, 오늘 보니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의 식당도 그랬다. 쉬는 날에는 테이블에 의자도 뒤집어진 채 올려져 있고 마치 폐업한 가게 같았는데, 오늘 보니 불빛으로 휘황하고 넓고 사람들이 가득하여 생기가 넘쳤다.
한 여자 종업원이 내게 인사하고 말을 걸어서 얘기하고 있는데, 불쑥 알렉산더가 눈앞에 나타났다. 깜짝 놀란 나는 그와 서로 너무 반갑게 포옹 인사를 하고 나서 얼굴이 좀 붉어졌고,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 가슴에 잠시 손을 얹고 숨을 내쉬었다.
그가 점심으로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지만 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가벼운 걸 먹겠다고 했더니 샐러드 섹션으로 나를 데려갔다. 큰 플라스틱 팩에 든 다양한 샐러드 중 하나를 골랐는데 토마토와 올리브, 치즈와 상추가 가득했다. 난 토마토와 치즈를 집어먹으면서, 이 상추를 한인 식당에 갖고 가서 고추장 비빔밥에 넣어 비벼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렉산더는 주인이어서 여기저기 돌아보며 손님들을 응대하기도 했고, 또 그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싶기도 한 것 같았다. 난 오래 있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그는 나더러 어디 갈 거냐고, 또 나의 여행 일정을 묻기도 했다. 내일 다시 올 거냐고 물어서, 내일 엘 칼라파테에 갔다가 5일 후에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온다고 했다. 우린 서로 고맙다고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고맙지.
난 총총히 한인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며칠 동안 빵과 피자와 치즈로 느끼해진 위속에 매콤한 비빔밥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내 위는 아르헨티나에서 돌이킬 수 없이 커져버린 것 같다. 엊그제 내게 달러 환전을 해주었던 주인아줌마는 없었다. 그날 있었던 한국인 여종업원도 없고 낯선 얼굴들뿐이다.
비빔밥을 시켜 한 그릇을 뚝딱 맛있게,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메뉴판의 사진에 보이는 라면도 정말 먹고 싶었지만 이미 비빔밥의 양도 많았다. 지난번 왔을 때 아보카도를 올린 연어 장 비빔밥을 메뉴 사진에서 보고, 다음에는 꼭 저걸 먹어야지 했었는데, 오늘도 난 매콤한 비빔밥에 더 끌렸다. 지금껏 해외여행하면서 한국 음식에 끌려본 적이 없었던 나였는데 이상한 일이다.
호스텔에 돌아가서 저녁 8시 30분에 시작하는 탱고 쇼를 보러 가기 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내일 엘 칼라파테에 갈 짐도 챙기고 샤워 후 좀 누워 있다가 가야지.
미국 메인주에서 이틀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서, 내가 도착한 오후부터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내리 잠만 자던 여성은 오늘 떠났다. 내가 내일 가야 할 파타고니아로. 그녀의 나이는 64세. 허리까지 내려오는 굵은 웨이브 머리에 마른 체형이다. 그녀는 전직 교사였지만 근무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퇴직 후 연금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일을 하고 있으며 여행비도 넉넉하지 않아 절약하며 다닌다고 했다.
그래, 내가 안정적인 편이지. 이렇게 1년을 떠돌아다닌들 특별히 돈 걱정할 것도 없는 나다. 물론 이번 여행은 빚을 내서 온 거긴 하다. 그러나 이 여행을 연장한다 해도 장거리 비행이나 비싼 투어만 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처럼 생활비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아르헨티나 물가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싸다.
멘도사에서 알바로와 줄리아에게 저녁을 사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팬시 레스토랑이라 비용이 많이 나왔을 테고 여행자인 내게는 부담이 너무 큰 액수이긴 했을 테지만.
새로운 룸메이트는 브라질에서 여행 온 젊은 여성이다. 영어를 못하는 그녀가 나와 의사소통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귀엽다. 숱이 많고 굵은 웨이브 파마를 한 머리는 역시 허리까지 내려와 풍성하고 옷차림도 마치 자기 나라의 시내에, 파티에, 친구 만나러 멋 부리고 나온 것처럼 차려입는다. ‘여자에게 머리란?’ 나이를 막론하고 길면 분위기 있다.
호스텔 주변은 골동품 샵이 있는 상업지구라 밤에는 인적도 차도 없다. 더구나 비까지 조금 뿌려 겁이 났지만 아직은 초저녁이므로 용기 내어 걸었다. 탱고 바는 숙소에서 도보로 6분 거리라 가까웠다. 8시쯤 도착했더니 30분 후에 오픈이라고 근처의 바나 카페에 있다가 오라고 했다. 오는 길에 보아둔 창고처럼 크고 확 트인 바로 갔다. 흑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한국에 있는 이들과 카톡을 했다.
바 안 쪽에는 롤러보드를 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한 남자가 롤러보드를 타고 있는데 얼굴을 보니 머리가 꽤 희끗하다. ‘50대?’ 그래도 저렇게 보드를 타는구나 싶었다. 함께 있던 한 청년도 뒤를 이어 보드를 탄다. 청년의 실력이나 몸놀림이 훨씬 낫다.
다시금 나이 드는 것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느 선까지를 한계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와 무기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수위 조절은 하되 여전히 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전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탱고 바는 생각보다 공간이 훨씬 좁았다. 첫 무대는 칠팔십 대의 할아버지들이 나와서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고, 이어서 댄스 무대가 펼쳐졌다. 춤은 단순히 노련하고 현란한 몸동작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본 댄서들의 얼굴에는 곧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표정으로 섬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은 낡은 시대의 춤이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그 표현의 절절함을 보며 탱고의 전성기 시절이 궁금해졌다. 그 시대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저 춤을 통해 상상하는 그 시대와 사람들.
영화, ‘Midnight in Paris’에 등장하는, 1920년대의 재즈 시대를 사는 여인은 지나간 아름다운 시절, 파리의 ‘벨 에포크(1880~1914경)’시대를 동경한다. 정작 현대를 사는 영화의 주인공은 그녀가 살고 있는 재즈시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지나간 모든 것들은 다 그렇게 지나간 것이어서 아름답게 채색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이 주는 몇 가지의 상징성들에 상상의 고리를 연결하고 채우면서.
쇼는 노인 연주자들의 연주와 노래가 주를 이루었고 정작 탱고 댄스는 분량이 적었다. 그들이 나와서 공연하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고, 그 나이에 자기들이 즐기는 일을 하고 있어서 좋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감흥을 주지 못하는 그들의 공연을 몇 시간 동안 몰입한 듯 보면서 반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고역이었다. 관객을 가두는 작은 무대의 단점이기도 하다. 탱고도 시간이 흐를수록 의상만 갈아입었다 뿐이지 새로울 것은 없었다.
열 명 남짓한 관객은 놀랍게도 모두 한국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 공연의 관객이 거의 한국인이라고 한다. 도중에 들어왔다가 가수인 할아버지와 함께 잠깐 춤을 추며 즐기던 서양 여성 둘을 빼고는. 그 두 여성은 곧 자리를 떴다. 아직 공연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자정쯤에 나는 직원에게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했다.
들인 돈이 조금 아까운 느낌이었다. 쇼는 분위기가 자유로운 큰 곳에서 대형 쇼를 봐야 제 맛일 것 같다. 세비야의 소극장에서 본 플라멩코 쇼처럼, 이 탱고쇼도 나를 좀 졸리고 지루하게 했다. 내 룸메이트가 대형 극장에서 탱고쇼를 볼 거라는 것을 예약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그녀와 함께 그곳에 갔을 텐데. 밤늦은 시간에 혼자서 택시를 타고 멀리까지 오가는 것이 무서워서 가까운 이곳에 예약을 했던 것이 참 아쉬웠다. 쇼는 혼자보다는 동행과 함께 보는 것이 당연히 더 좋다.
내가 그룹톡에 탱고 쇼를 찍은 비디오를 보냈더니, 훈이가 답을 보냈다.
“여행이란 게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동행하지 않으면 처절한 외로움과 싸우며 견뎌야 하는 순례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너도 낯선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며 최면 걸고 있을지도 모르지. ‘안 외롭다.’하고.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 평생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늙어가는 친구들 생각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