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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5. 2021

재스민을 찾아 세비야로

 

  

  날이 흐리다. 호텔 식당의 조식은 8유로라는데 음식이 아주 훌륭했다. 여러 가지 과일과 생 과일 주스, 다양한 빵과 디저트, 햄과 치즈, 맛 좋은 커피가 있어서 온종일 배와 에너지를 채워줄 만큼 잔뜩 먹었다. 심지어 커피도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를 각각 한 잔씩 마셨다. 그렇게 흡족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세비야행 버스를 탔다.

 세비야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까지는 도보로 10분밖에 안 걸렸다. 여기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유적지다. 도로에는 말이 끄는 마차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접이 부채를 하나 사서 양산 대용으로 얼굴을 가렸다. 





  대성당을 찾아갔는데 이미 입장 시간이 지나 오늘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정처 없이 걸었다. 세비야가 내게 스페인의 첫 도시였다면, 엄청 신기해하며 돌아다녔겠지만 이미 네 번째 도시였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모든 도시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관광객들로 붐벼서 그냥 사람들 사이를 밀려다니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시티 투어 버스를 타야 하나, 어떻게 하지 고민하면서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비야는 한 번 골목에 들어갔다 하면, 도무지 빠져나오기가 어려울 만큼 골목들이 길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골목들에 갇혀 헤매다가 겨우 빠져나와서는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재스민에게 연락을 했다. 5시가 넘었는데도 배가 하나도 안 고프다. 레몬주스 한 잔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재스민에게서는 답이 없다.     


  대도시인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스페인의 도시들, 그라나다, 말라가, 세비야는 모두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세 도시에 걸쳐서 계속되는 부활절 종교 행렬(procession)과 그로 인한 번잡함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특히 이곳 세비야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무래도 재스민의 말처럼 포르투갈로 여정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세비야에서는 뭐 하나 제대로 보는 것도 없이 헤매다가 골목들에 갇혀 길을 잃고 지쳐버린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 마냥 똑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다. 





  그래서 내일은 투어 버스를 타볼까 하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자신이 없었다. 강에서 크루즈를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강가에는 뭐 볼 게 없다. 마차로 시내를 돌아볼까 해서 물어봤더니 50유로나 된다.

  일단 재스민을 만나야 해서 와이파이가 되는대로 가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아무 식당이나 다 와이파이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들어온 곳이 여기 스타벅스다.    

 

  재스민이 동그라미 표시가 된 지도 사진을 보내며 25분 후에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넘게 나는 대성당 근처의 수많은 골목을 최소 두세 번씩은 되짚어가며, 대 여섯 번 길을 물어가며 헤맸다. 심지어 어느 구간까지는 경찰이 직접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재스민이 말한 그곳을 찾지 못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결국 포기하고, 일단 어느 레스토랑이든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 다시 재스민에게 연락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은 한 야외 바에서 와이파이 비번을 묻고 재스민에게 연락을 취하는 동안, 웨이터가 세 번 다녀가며 음료를 주문하라고 했다. 난 이게 급하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재스민과의 대화에 열중했다. 

  주변 사진을 보내라고 해서 보냈더니, 거의 다 온 것 같다고 이쪽 골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결국 난 와이파이만 따먹고 음료를 주문하지도 않은 채 줄행랑을 쳤다.    

 

  그렇게 힘들게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도 그곳에서 40분 넘게 나를 기다리는 동안 웨이터가 몇 번씩 다녀가서, 할 수 없이 주문하고 먹기 시작한 중이었다. 우린 서로 얼마나 외롭고 힘든 하루를 보냈는가에 대해, 마침내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에 대해 열렬하게 공감했다. 

  드디어 이 복잡하고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세비야 거리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스페인 음식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주문한 것마다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재스민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잘 알고 있었고 그것들은 맛도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2차는 바에 가기로 했다. 너무 작고 사람이 없는 바는 그냥 지나치며 적당한 곳을 찾다가, 눈에 띄는 한 곳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관광객들보다는 직장인들이 일 끝나고 찾는 곳인지, 정장 차림의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가 찾은 바



  재스민과 나는 우리의 탁월한 선택에 아주 만족하며 틴토 베라노를 마셨다. 내일은 아예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점심때쯤 만나서 함께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로 했다. 


  내가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우린 밤 10시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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